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을’이었다.
  • 김영화 기자
  • 승인 2014.11.2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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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군대, 직장. 한국사회에서 상하관계는 빼놓을 수 없는 굴레다. 학교에서 사회로 진출하는 길목에 선 대학생들은 군복무 중인 게 아니라면 상명하복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것 같다. 그러나 싼 임금에 단순노동을 하는 알바라는 이름 하에, 사회 초년생들보다 낮은 계급인 인턴이라는 직책으로, 학생들은 미래를 쥐고 있는 교수 아래서 각자의‘갑’을 향해‘경례!’하고 있는 것이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를 부여받은 이들은 인격마저 낮게 평가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입 뻥긋할 수 없는 상황에 늘 떨리는 입꼬리로 일관한다.

 

 

 

 

 

 

 

 

내 속이 울부짖고 있다
1주차- 모멸감 품은 대학사회
2주차-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을’이었다
3주차- 모멸사회를 똑바로 바라보는 방법

노동시장의 약자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모멸
일하면서, 일하고 싶어서 모욕과 굴욕을 참는다

사람의 일생에는 탄생부터 성인, 결혼 그리고 죽음까지 몇 가지 절목이 있다. 통과의례라 불리는 이 절목에서 우리는 지위상의 변화를 겪고 새로운 역할을 획득한다. 이 과정을 통과해야 다음 절목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에도 통과의례는 있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세상에서 사회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견뎌야 할 것들이다. 고통과 충동을 눌러 담는 법, 부당한 대우에 눈물이 나도 서러움을 삼키는 법을 알아간다. 갑이라 불리는 이들로부터 업신여김을 견디는 것이 을의 통과의례기 때문이다. 혹자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이 절목마다 모멸의 곰팡이로 피어나고 있었다.

  하급 신분으로 낙인찍힌 을의 처지

   “감사합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누구보다 공손해야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인정과 감사가 박한 사회에서 만만한 대상이 되기 쉽다. 마치 돈을 지불하면 서비스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격까지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일했던 김서윤 학생(가명?사과대)은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 빨리 좀 해요.’ 무턱대고 무시하고, 깔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건 물론, 음료가 늦게 나온다고 다짜고짜 화를 내는 손님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기다릴 여유도 없을 정도로 바쁘지만 나는 돈이 없으니 알바나 하고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지만 머리를 숙여야 하는 본인의 처지가 슬프기 그지없었다.

  뿐만 아니다. 손님들의 왕 행세는 반말에서 절정을 이룬다. 빵집에서 일했던 강서연 학생(가명?사과대)은 너무도 뻔뻔한 반말을 들을 때마다 모욕에 가까운 기분을 느꼈다. “쟁반이 바로 앞에 있는 게 빤히 보이는데도 ‘이거 줘’, ‘담아 줘’ 이런 말을 내뱉어요.” 여기저기서 감정의 찌끄레기를 배출하는 손님들 탓에 ‘갑질’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것은 오롯이 아르바이트생들의 역할이었다.

손님 감정이 곧 내 감정처럼
  경기장의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매표소 직원들의 얼굴도 뜨거워질 때가 많다. “시급이 센 편인데 욕먹는 값인 것 같아요.” 문혜림 학생(가명)은 삼 년째 야구장 매표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할 때마다 한두 명의 진상 관객들을 꼭 만난다. 인터넷 예매로 표가 매진될 때면 현장 구매를 하러 온 관객들의 분노가 그들을 향하기 때문이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심한 욕을 듣고는 벙 쪄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았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오롯이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는 그들 탓에 그는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표나 팔라’며 욕을 들을 때면 목이 턱하고 막힐 때가 많죠.”

  공연장에서 일했던 정소미씨(가명)도 감정노동 경험자였다.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하는 얘기들을 웃으면서 받아줄 때가 있는데 관객의 놀잇감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알바생들이 예쁘게 생겼다며 몇 십분 동안 옆자리를 떠나지 않고 히히덕댔던 것이다. 그는 당장이라도 불쾌함을 내색하고 싶었지만 같이 맞장구를 쳐줄 수밖에 없었다. “감정을 숨겨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속으로 화를 삭일 때가 많았죠.”  

  입장이 끝난 시간에 출입문을 강제로 열려는 사람들, 매표소 창문 사이로 손을 넣어 위협하는 사람들 등 민폐 관객들을 마주하다보면 악에 받치는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실제로 몇 달 간의 공연장 아르바이트는 정소미씨의 성격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주변사람들로부터 억세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기분이 불쾌해도 억지로 웃다보니 독을 품게 된 것 같아요.” 

사장의 갑질은 더 서럽다
  손님의 무례한 태도로 상처받은 가슴에 정작 기름을 붙는 것은 고용주일 때가 많다.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요구하는 손님이 ‘갑’, 손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고용주는 ‘을’이 되는 계급 구도가 설정되기 때문이다. 이 탓에 알바생들은 손님에 한 번, 고용주에 두 번 치인다. 이런 상황에서 ‘병’으로까지 전락한 이들의 모욕감은 한층 더 심화된다.  

  “아마 저희가 사장님, 사모님 자식뻘과 비슷한 또래일 텐데 전혀 그렇게 보시지 않는 것 같아요.” 빵집 알바생이었던 강서연 학생은 물 떠오기, 세탁소 갔다 오기 등과 같은 사장님의 잔심부름을 도맡았다. 가끔 실수를 하면 사모님이 ‘이 계집애야’, ‘이 가시내야’라며 다그치는 탓에 서러움이 북받칠 때도 여러 번.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일했어요. 고용했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엄청 부려먹어서 이젠 다른 알바는 고생도 아니에요.”

  계약으로 맺어진 고용관계 속에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다보면 사람들은 돈을 받겠다는 일념하나로 버티게 된다. 그러다보니 고생 끝에 낙이 아닌 악이 남는 경우도 있었다. 박민준 학생(가명?사과대)은 월급을 받는 순간까지도 모멸을 느꼈다. “한번은 사장이 ‘돈 주면 됐지? 너 돈 좋아하잖아’라는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돈으로 그간의 비인격적 대우를 정당화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 돈을 벌려고 그런 대우를 참고 있었던 걸까.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인데도 그는 께름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취직 앞에 모멸도 잊는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게 된다. 참을 수 없었던 모욕감, 서러움에 남몰래 흘린 눈물을 꾸역꾸역 눌러 담다 보면 어느새 악에 받친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온다. 이들에게 남은 건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악다구니 뿐. ‘다시는 이런 일을 하나봐라!’하고 문을 쾅 닫고 그곳을 빠져나오며 다짐을 한다. ‘얼른 취직해 이런 수모를 겪지 않겠노라.’

  그렇게 무개념 손님과 괴팍한 사장으로부터 도피했지만 이제 그들은 또 다른 갑을 만난다. ‘을’의 굴레는 그렇게 지속되는데 이번엔 도피도 쉽지 않다. 풍전등화, 취업의 매서운 바람 앞에 20대들은 자존감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직장 상사, 부모님, 사랑하는 애인이 물에 빠졌다면 누구를 구하겠냐.’, ‘내가 감기에 걸렸는데 병을 낫게 해 봐라.’, ‘나이가 많은 편인데….’

  박민준 학생은 면접을 준비하던 친형을 보며 취업과정의 시퍼런 냉기를 실감했다. 임기응변의 기지를 보기 위해 진행되는 일명 ‘압박면접’. 회사 입장에서는 인재를 파악하는 주요한 단서가 될 수 있지만, 궁지에 몰린 지원자 입장에서는 심장이 저릿하게 오그라든다. 어디까지가 능력검증이고 어디까지가 인신공격인지 모를 질문들 앞에서 이들의 존재가치가 부유하는 현실이다. “면접장 안에서는 취업이 달려있으니까 그것만 바라본다고 사실 정신이 없어요. 그런데 면접이 끝나고 나면 모멸감이 후폭풍으로 다가오죠.” ‘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까’ 그 상황을 다시 곱씹다보면 씁쓸함이 올라온다. 대답을 못한 내가 밉고, 부당한 질문을 한 면접관이 미워진다.

저급서비스의 선두주자
  인생은 게임의 연속이라 했던가. 매 스테이지를 성공할수록 새로운 도전과제가 나타난다. 그야말로 산 너머 산. 가까스로 맛본 합격의 기쁨도 잠시 다음 스테이지는 더 막강한 ‘갑’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

  “넌 뭘 얼마나 해봤길래 참견이냐.” 기업체 인턴을 시작한 김현석 학생(가명?사과대)에게도 한 층 더 어려워진 스테이지가 열렸다. 대학생들에게 인턴은 상위의 스펙일지 몰라도, 정작 회사에서는 저급 서비스의 선두주자가 되기 때문이다. 업무와 상관없는 궂은 일도 도맡아 하던 김현석 학생이 정작 서러웠던 것은 인턴에게 쏟아지는 횡포와 업신여김이었다. “허드렛일을 계속 하다 보니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상사 분께 말씀드렸더니 인턴이라고 무시하더라고요.” 물론 배우는 입장이지만 ‘인턴은 말을 말라’는 식의 태도에 의지는 꺾기고 자신감은 깎인다.

  때로는 모욕적인 언행을 온 몸으로 맞아야 할 때도 있었다. “윗분들의 요구를 전달했더니 ‘퇴근시간이니까 내 눈에 보이지 말라’, ‘짜증나게 하지마라’고 온갖 화를 내셨죠.” 취업을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통과의례라지만 상당히 쓰다. 다른 직원이 요구하자 이번에는 잡음 없이 상황이 해결되는 것을 보며 그의 무력함은 한층 더 격화됐다. 

  잘 하려고 안간힘을 써도 인정받기 힘든 판에 실수를 했다가는 정말 큰일이다. 박민준 학생은 인턴을 하면서 가장 모욕적이었던 순간을 생각하며 분노감을 표출했다. 서류 복사를 하던 그가 개수를 잘못 판단한 게 화근이었다. ‘똑바로 못하니.’ 채근과 함께 올라온 건 다름 아닌 상사의 손이었다. “볼을 꼬집더라고요. 그러고는 딱밤 때리듯이 머리를 쥐어박았죠. 인턴이라 저를 막 대하는 것 같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혼자 무시를 당했지만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질끈 삼켰다. 눈치 있는 을이라면 모멸감은 숨기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학교 안의 숨겨진 갑을

  아르바이트나 취업 준비를 하고 있지 않더라도 ‘을’의 지위를 벗어나긴 힘든 게 현실이다. 사실 더 가까운 갑을은 바로 학교 안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학생의 미래를 쥐고 있는 교수들의 경우 또 다른 갑이 될 수 있다.

  빌린 책을 반납하라는 교수의 말에 박민준 학생이 한 시간씩 걸리는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 번은 교수님께서 핸드폰을 바꾸고 싶다며 알아봐달라고 한 적도 있었죠. 흔쾌히 알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신경써야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어디까지가 공적인 업무인지 애매한 선상에서 말 못할 서러움과 혼란스러움이 교차한다.   

  만일 교수의 명을 어겨 갈등을 빚기라도 한다면 그 결과는 처참하다. 조규진 학생(가명?예대)은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본 적이 있었다. 실력이 괜찮다고 여겼던 한 친구가 교수의 눈에 어긋나게 되자 F를 받은 것이다. “사람의 인상이나 말투, 태도에 따라서 점수가 많이 갈리더라고요. 특히 예술계통은 범위가 좁아서 교수의 압력이 있으면 활동하기가 힘든 경우도 있죠.” 실제로 그의 친구는 그 일로 해당 교수를 피해 다른 분야로 작품을 내걸어야 했다. 학교에서조차 뜻을 제대로 펴기 힘든 학생들은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며 때로는 비위를 맞추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미래를 쥔 막강한 갑의 권력 앞에 초라함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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