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빛의 속도밖에 없다.질량도 시간도 상대적이기 때문에 왜곡된다. 시간 여행이 가능한 것도 이들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비극적인 일이다. 인간에게는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겪게 되는 태생적 비극이 있다. 남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삶, 그래서 제도화된 비교로 나타나는 ‘신분’은 명징하고 잔인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눈에 보이는 계급은 더 이상 없다. 귀족도 없고, 천민도 없다. 혈통은 더 이상 계급을 나누지 못한다. 대신 계약으로 맺어진 고용관계가 노동시장의 계급을 만든다. 고용주는 생계를 쥐고 있고, 면접관은 미래를 쥐고 있다. 젊은이들의 노동은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여있다.
 
일하면서 느끼는 모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이 느낄 수 있는 모멸의 정도는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명확하게 존재하는 노동의 계급은 ‘갑의 횡포’를 응당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돈을 벌기 위해서 20대는 ‘을’의 지위를 자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돈과 자존감은 등가 교환된다. 중대신문 심층기획부는 노동행위 전반에서 20대가 느끼는 모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중앙인 1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결과 ‘아르바이트와 같은 노동 시장의 갑을관계에서 모욕감 및 모멸감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81명 중 73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전체 응답자의 40%로 적지 않은 비율이다. 해당 학생들은 주로 고용주의 비인격적 태도(45%), 손님의 비인격적 태도(35%) 때문에 모멸감을 느낀 것으로 드러났다. 단순히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갑을관계뿐만 아니라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행위에서도 모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이 모욕을 느낀 대표적인 사례는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하대였다. ‘손님은 왕’이라는 한국 특유의 서비스제일주의 문화와 결합해 서비스시장의 노동자들은 시종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답변 중에는 반말과 부당한 요구에 대한 불만이 컸다. 설문에 참여한 김동언 학생(제주대 컴퓨터공학과)은 “종업원을 대할 때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이 부리는 사람이 많다”며 “‘이거 가져와’, ‘저거 가져와’ 하며 시종을 부리는 듯한 반말에 기분이 상한다”고 말했다. 
 
  고용주와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바생의 임금과 고용 등 경제적 실권을 지니고 있는 고용주가 알바생들을 함부로 다루는 것이다. 일부 응답자들은 ‘네가 다 책임질 거야?’라는 말부터 ‘멍청한 자식’등과 같이 인격을 훼손하는 언행에서 모멸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하고 싶어 느끼는 모멸
  노동시장의 경우 고용주가 알바생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모멸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면접 같은 경우 고용관계가 아닌 준비의 단계이기 때문에 모멸의 감정을 확연하게 느끼는 경우가 적었다. ‘취업 시장의 갑을관계에서 모욕감 및 모멸감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중 12%(21명)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구직자 입장에서는 ‘뽑아만 줘도 감사한 상황’에 모멸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자존감까지 생각할 여지가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면접 자리에서도 모멸을 심어주는 말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면접관들은 한 개인이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쥐고 있기 때문에 갑의 지위는 명백해진다. 이 탓에 면접 과정에서는 압박면접이라는 이름하에 지원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들이 많이 오가고 있었다. 업무와 관계없는 질문들로 지원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차별의 형태는 학력뿐만 아니라 외모와 성별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답변 중에는 ‘출신 학교를 비하하며 진행하는 압박면접에 기분이 나빴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 ‘면접이라고 불러놓고 넌 여자니까 안 돼’라며 배제하거나 ‘외모가 좋은 사람을 편애한다’ 등의 사례도 있었다.
 
표출할 수 없는 감정
  하지만 이러한 모멸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전체 설문대상자의 80%인 145명이 노동 및 취업과정에서의 모멸감을 당사자에게 표출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말해봤자 달라지는 것이 없어서’라는 의견이 35%(38명)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지만 ‘지위상의 불이익을 받을까 봐’라는 의견도 31%(34명)를 차지했다. 지난호 ‘모멸감 품은 대학사회’에서 다뤘던 일상 속 모멸의 경우 개인의 자존감 때문에 공공연한 감정의 표출이 어려웠다면 노동시장에서의 모멸은 계약과 제도에 의해 구분되는 계급이 감정의 표출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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