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볶은 원두를 갈며 강의를 준비하는 이재호 교수. 그래서 그런지 점심시간이 되면 그의 연구실은 커피 냄새로 가득해진다. 같은 층에 있는 자판기커피를 놔두고 연구실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이유가 궁금해 그의 연구실을 찾아가 보았다.

 

 

  잠이 올 때나 식사를 한 후 제일 먼저 찾는 것은 단연 커피다. 그만큼 현대인들에게 커피는 가까운 존재지만 그 원재료가 되는 커피의 씨앗은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재호 교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생두부터 찾는다. 초록색 원두를 볶아 갈색 커피가 되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볶을 때마다 달라지는 커피 맛에 홀딱 빠져 원두는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된 원두 볶기
  그가 원두를 볶게 된 계기는 미국 유학시절 만난 대만 친구 때문이었다. 어느날 그의 집에 놀러간 이재호 교수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원두를 볶는 기계부터 거대한 에스프레소 기계들까지로 완비된 친구의 집은 흡사 커피 전문점을 연상시켰다. “친구에게 집안에서 원두를 볶아 커피를 마시는 것은 갑부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죠. 그런데 의외로 쉬운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대만 친구는 그에게 값싼 팝콘기계로 원두를 볶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 후 이재호 교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인터넷에서 원두와 중고 팝콘기계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서툴 듯이 그 역시도 원두를 볶기 시작한 초반에는 어설펐다. 원두가 볶아질 때 나는 소리들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스팅은 퍼스트 크래킹과 세컨드 크래킹으로 구성되는데 각각 소리가 다르다. 처음에는 ‘탁탁’소리가 나지만 후에는 ‘피틱피틱’소리가 난다. 크래킹 되는 정해진 시간이 없어 소리로 구별해야 하지만 이재호 교수에게는 둘 다 비슷하게 들렸다. “미국에 있을 땐 많이 태웠죠. 소리를 구별하지 못해서 어느 정도 진행되는지를 알아채지 못했어요.”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원두가 내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게 되자 그 뒤 과정은 술술 풀렸다. 왜냐하면 볶은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 하는 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쭉 해오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일과 중 커피나 차 마시는 시간을 갖는 것이 저희 집안 내력이었어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중학생 때부터 볶은 원두를 이용해 커피를 제조할 수 있었죠.” 그는 어릴 때의 기억을 되살려 원두를 가는 것부터 커피를 추출하는 것 까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어진 못말리는 커피사랑
  유학을 마친 후 미국에서 사용하던 팝콘기계를 한국에 그대로 가져왔지만 전압이 맞지 않아 고물처럼 남게 됐다. 커피 볶는 기계를 하나 사야 되나 싶었지만 당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시간강사였던 그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값이 꽤 나갔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결과 뚝배기로 원두를 볶는 법을 알게 됐다. “한 인터넷 글에서 뚝배기로 원두를 볶는 것도 괜찮다 하더라고요. 이거다 싶어 그때부터 뚝배기로 원두를 볶기 시작했죠.”

  밑에서 열풍이 나오는 로스터기와 달리 뚝배기 로스팅법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볶는 방법이다. 바닥에 바로 닿는 면은 세게 가열되는 반면 닿지 않는 면은 열이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골고루 열기가 전달되도록 계속 저어도 모든 원두를 균질하게 볶는 것은 어렵다. “뚝배기로 볶은 원두들은 각각의 로스팅 정도가 다 달라요. 그래서 신맛부터 쓴맛까지 다양한 맛이 공존하는 커피가 될 수 있죠.” 균질하지 않게 볶아지기 때문에 일명 ‘뚝배기 커피’만이 낼 수 있는 맛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주방에서 볶다 보니 집안이 연기로 자욱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베란다에서 뚝배기로 원두를 볶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뚝배기를 사용하면 계속 원두를 저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있던 찰나에 저렴한 로스터기를 하나 장만하기로 결심했다. 이재호 교수는 로스터기로 한층 편리하게 또,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원두를 볶을 수 있었다.

▲ 이재호 교수가 채를 이용해 볶은 원두를 식히고 있다. 사진 최원종 기자

그가 셀프 로스팅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집에서 커피를 볶아 먹으면 항상 신선한 커피를 먹을 수 있어요.” 일반 커피전문점의 커피는 본사에서 이미 볶아져서 나온 원두를 사용한다. 볶아진 원두는 하루 이틀만 지나도 산화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과 향이 점점 떨어진다. 공장에서 아무리 진공포장을 한다 하더라도 완전히 산화를 막을 수 없어 질 좋은 커피를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원두를 소량씩만 볶아 일주일 내로 다 마시는 이재호 교수는 항상 높은 수준의 커피를 마신다.

  가정에서 커피를 볶아 먹을 때 생기는 또 다른 이점은 가성비가 높다는 것이다. 초기 투자비용만 들인다면 원두 값 3~4만 원으로 세 달 동안 커피를 매일 마실 수 있다. “보통 커피 전문점의 커피는 3000원 정도 하는데 3개월 간 마시면 27만 원이 나오죠. 그런데 저는 3만 원으로 세 달치 커피를 뽑을 수 있어요.” 로스터기 15만 원, 그라인더 3만 원, 모카포트 3만 원 등 총 24만 원의 초기 투자비용만 감수한다면 약 9배 정도 차이가 나는 커피 값을 절약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가 커피를 집에서 볶아 먹는 것이 가성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두를 볶는 과정에서 커피의 맛과 향이 결정되는데 바로 그 점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로스팅할 때 어떤 맛이 나올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흥미진진하죠. 이번에 어떤 맛이 나올지를 기대하면서 원두를 볶을 때 가장 즐거워요.” 그는 같은 종류의 원두라도 늘 설레는 마음으로 원두를 볶는다. 

커피에 철학이 담기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가치와 믿음들은 상당히 많이 충돌해요. 어긋난 믿음들을 최대한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 철학이죠. 그런데 커피도 마판가지에요.” 철학과 교수답게 그는 커피에 대한 물음도 철학으로 답했다. “커피에도 신맛, 단맛, 쓴맛 등 여러 맛들이 있어요. 제가 추구하는 커피는 그 맛들이 잘 어울려져 있는 것이에요. 최적의 조화를 찾는 점에서 제가 생각하는 철학과 굉장히 유사하죠.” 그는 쓴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커피를 찾아가는 과정이 상반된 믿음들을 조화롭게 하는 철학의 과정과 비슷하다 본 것이다.

  이재호 교수에게 직접 커피를 만드는 것은 일종의 의례행위이다. 그는 이 의례행위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매일 아침 그는 주말에 볶아둔 원두를 갈아 모카포트로 커피를 추출한다. 추출된 커피에 우유를 넣어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연구실에서도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항시 챙겨놓은 볶은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 하여 마신다. “저에게 커피는 일상이에요.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죠.” 

이재호 교수의 커피 제조법

원두 고르기
  이재호 교수는 여러 원두 중 ‘에티오피아 예가체프’와 ‘콜롬비아’라는 생두를 주로 사용한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는 뒷맛이 깔끔하며 볶았을 때 과일 향이 난다. 콜롬비아는 신맛과 감칠맛이 적절히 섞인 무난한 원두이다. 두 원두 모두 부담스럽지 않은 맛을 내 일반인도 쉽게 즐길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500g에 2만 원 정도로 비싸지 않은 편이다.

원두 볶기
  로스팅은 생두를 볶는 것을 말한다. 이재호 교수는 가정용 열풍식 로스터기를 이용한다. 기계 밑에서 나오는 열풍으로 원두를 볶는 것이 그 원리다. 열로 생두의 수분이 증발되고 이산화탄소가 방출된다. 이때 생두의 부피가 커져 갈라지는데 색깔이 갈색으로 변한다. 로스팅할 때 열의 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약하게 볶으면 신맛이 나지만 세게 볶을수록 쓴맛이 난다. 

볶은 원두 갈기
  그라인더는 볶은 원두를 가는 기계다. 원통형의 용기에 먹을 만치의 볶은 원두를 넣은 후 갈면 된다. 쉽게 말해 그라인더는 원통으로 된 맷돌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할 때는 제일 곱게 갈고 핸드드립으로 추출할 때는 제일 굵게 갈아야 한다. 모카포트로 추출할 경우는 이 둘의 중간으로 갈면 된다.

커피 추출하기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도 원두의 종류만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재호 교수는 모카포트와 핸드드립 방식을 사용한다. 모카포트의 경우 물을 넣은 포트 위에 갈은 원두를 채운 깔대기를 올린다. 그 후 플러그를 꽂아 물이 끓여지면 깔대기를 통과하여 분수처럼 커피가 추출되는 것이다. 한편 핸드드립은 갈은 원두를 넣은 깔대기에 끓인 물을 천천히 부으면 커피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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