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뚜껑 없는 박물관
 
  도심 속에서 시골장터의 면모를 아직까지 간직한 황학동. 이곳엔 서울중앙시장을 중심으로 골목시장들이 가지처럼 퍼져 있다. 마장동에서 공급된 부산물들로 가장 신선한 곱창을 맛볼 수 있는 곱창골목이 유명하며 보리밥골목, 칼국수골목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의 중심, 서울‘가운데’시장은 예술을 덧입어 추운 겨울 데이트 코스로도 이색적이다.
 
쇠퇴를 맞던 서울중앙시장
예술로 시장을 부흥시키며
상인들의 마음을 녹이다
 
  여행을 가거든 그 지역의 시장을 가보라는 말이 있다. 만일 시간여행을 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서울 중구 황학동의 서울중앙시장을 들러야 할 것이다. 
 
  서울중앙시장의 탄생은 조선시대로 돌아간다. 뚝섬 도처에 널린 밭에서 자란 무와 배추, 왕십리에서 자란 야채는 황학동으로 몰려 들었고, 사대문 안 사람들의 밥상에 올랐다. 황학동의 시장이 모습을 점차 갖춰가면서 인정과 생기도 싹트기 시작했다. “황학동 저잣거리에서 만나세!” 조선시대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황학동 시장은 6.25전쟁 속에서도 되살아나 본격적으로 시장의 구실을 하게 됐다. 1962년 서울중앙시장으로 정식 개설을 알렸고 1970~80년대에 최대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시장 밑을 지나는 지하상가는 1971년 만들어졌으며, 2010년 중반부터는 예술가와 작가들의 창작 공간인 신당창작아케이드가 들어섰다. 시간여행에서 돌아와 지금의 서울중앙시장으로 들어가 본다.
 
서울의 가운데 시장, 서울중앙시장
▲ 황금색 튀김옷을 입은 통닭이 진열돼 있다.
  신당역 2번 출구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난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서울중앙시장에서 실려 오는 것이다. 시장 초입부터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호떡과 통닭이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일단은 먹거리에 이끌려 들어왔지만 이곳엔 과일과 채소, 해산물, 육류 등 없는 게 없다. 서울중앙시장은 직선으로 된 중앙통로 좌우로 넓게 펼쳐있어 시장을 처음 찾는 사람도 길을 헤맬 걱정이 없다.
 
  중앙통로 주변으로 보이는 것이 서울중앙시장의 전부는 아니다. 황학동 409번지 일대에 개설된 주방골목, 가구골목, 문짝골목 등 재래시장을 통칭하여 이르는 말이며, 전체 점포수는 노점을 포함하여 627개소에 달하고 시장인원은 1,568명, 연간 이용객수는 48만 명에 이른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울 3대 전통시장이다.
 
▲ 서울중앙시장에서 주최하는 시장투어 프로그램인 황학동 신기방기 깨비투어.
  서울중앙시장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황학동 시장의 살아있는 역사인 ‘상인’의 존재다. 여전히 한 자리에서 장사하는 그들의 터전엔 치열한 삶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전쟁중에 떠밀려 짐을 풀고 난전을 시작했던 그들의 절박함이 시장을 찾는 서민들의 삶 속에도 어려 있는 듯하다. “기다림으로 연상되는 상인의 면면이 흐려진다면 전통시장은 더 이상 시장으로서의 정신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대형마트와 시장의 다른 점은 시설이 아니라 기억되는 상인의 존재인 것이죠.” 서울중앙시장 임명진 매니저의 말이다. 그는 유통환경의 변화와 대형마트의 공세로부터 예전의 명성을 탈환하기 위해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의 서울중앙시장은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차다. “아이고 이놈의 물고기가!” 수조에서 펄쩍 뛰어나온 장어에 지나가던 손님이 놀라고 말았다. 저녁 장사를 준비하던 횟집 주인은 대수롭지 않아 하며 묵묵히 일을 계속했다. 건너편 싸전에선 물건 값을 깎아 달라며 실랑이를 벌이는 손님과 주인이 있었다. 이에 대신 덤을 얹어주는 싸전 주인의 인심이 푸근하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을 찾은 아이들, 신당동 떡볶이 맛을 보러 온 커플들도 보인다.
 
▲ 서울중앙시장 중앙통로 천장에는 상인들의 염원을 담은 색색의 앞치마가 널려 있다.
  시장 천장에 걸려있는 색색의 앞치마도 시장을 한층 화사한 분위기로 물들였다. 한성자동차가 후원하는 미술 관련 장학생들과 서울중앙시장 지하에 입주한 예술가들이 합심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들은 서울문화재단의 중재로 이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시장상인들의 꿈을 담아 시장 꼭대기에 앞치마를 걸어올리게 됐다.
 
노후된 지하상가에서 예술촌으로
  문화와 경제의 합성어로, 문화로 경제를 부흥시킨다는 뜻의 컬쳐노믹스(cultureno-mics). 서울문화재단은 야심찬 뜻을 품고 신당창작아케이드라는 이름으로 서울중앙시장 지하에 터전을 잡았다. 
 
▲ 지하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원래 지하쇼핑센터로 쓰이던 곳이었지만 1996년 IMF 이후 상인들이 떠나자 이곳은 빈 공간으로 남게 됐다. 이에 2009년 52개 빈 점포를 40개의 방으로 리모델링하여 공예 중심의 공방을 조성했다. 몇몇 이불집이나 횟집 등은 그대로 남아 계속 영업 중이며 이를 제외한 빈 공간만 작업실로 사용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동기 3명과 캐릭터 상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게 되어 출시를 앞두고 있죠.” 이곳은 돈 없는 젊은 작가들에겐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한 달에 5천 원이라는 아주 저렴한 비용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이다. 계약기간은 1년 단위이며 연장도 가능하다. 실제로 브랜드를 런칭 하거나 개인 작업에 몰두하는 꿈 많은 작가들이 입주해있다. 현재 41개 공방이 이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입주작가들은 1년에 한두 번 축제를 열어 시장 상인들과의 교류도 가지고 있다. 지난 1일에 열린 황학동별곡이 그 사례다. ‘상인이 즐거운 시장’이라는 취지로 열린 올해 축제엔 400개의 앞치마를 중앙시장 천장에 걸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지난해 축제에선 지하 신당창작아케이드와 지상의 서울중앙시장을 잇는 가래떡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 젊은 감성이 돋보이는 인테리어의 횟집.
 “여기 입주한 작가들이 횟집 인테리어에 힘써줬어요. 작가 분들이 종종 회를 먹으러 오면 반갑지요.” 세심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횟집 종업원의 말이다. 가게 바깥으로 걸린 튜브모양 등과 내부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횟집이 영업을 마치고 밤사이 작가들이 와서 작업해 놓고 갔다고 한다. 시장 사람들과 예술가들은 상생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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