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시>에서는 약을 이용해 인간의 뇌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서관에는 약이 아니라 엉덩이로 학습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각자의 꿈을 마취제 삼아 전력질주를 한다. 경찰공무원과 부사관 시험에 모든 걸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꿈을 위한 각고의 노력
값진 선물로 돌아오다

 

  열매를 맺기 위해 1년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 도서관에서 1년 간 붙박이 생활을 한 사람이 있다. 푸른 잎이 낙엽으로 변해 떨어지고 365번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도서관을 지킨 그는 인고에 대한 보답으로 경찰 배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 학교를 방문해 아이스티와 함께한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그를 만났다.


-아이스티를 좋아하나 보다.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이스티에 얽힌 추억이 있어서 다시 찾게 됐다.”
-추억이라니.
“중앙도서관에서 1년 정도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말 그대로 도서관에 ‘박혀서’ 공부만 했는데 힘들 때면 아이스티를 마시며 산책한 뒤 들어가곤 했다. 하루에 내가 유일하게 허락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똑같이 아이스티를 마시는 건가.
“예전부터 아이스티를 사서 알앤디 쪽을 지날 때마다 의자에 평화롭게 앉아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오늘은 나도 한번 마음 편하게 앉아보고 싶어 이렇게 나왔다.”
-시험은 어떻게 됐는지.
“다행히 붙었다. 최종 합격은 아니지만 필기시험에 여유있게 합격해서 남은 체력검정이나 면접은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합격을 앞둔 소감이 어떤가.
“원래는 슬슬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지만 진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 후련한 마음이 든다. 가채점하기 전에는 합격을 예상도 못했다. 망한 줄 알았는데 채점을 해보니 이전에 받아본 적 없던 높은 점수가 나왔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큰 성취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힘든 적도 있었을 텐데.
“혼자 공부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노량진, 신림에 있는 학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기 마련이다. 고독을 씹으며 1년 동안 거의 혼자인 채로 지내니 성격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매사에 예민하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이 났다.”
-여유로운 요즘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아르바이트도 하고 교양 수업만 들으면서 마지막 학기를 널널하게 즐기고 있다. 낮에 실컷 놀고 집에 가서는 남들이 많이 본다던 예능프로그램 <마녀사냥>을 정주행한다. 뒤늦게라도 사회 트렌드를 쫓아가야 하지 않겠나. 마치 중간·기말시험이 끝난 바로 그 다음날이 매일 지속되는 기분이다.(웃음)”
-상당히 행복해 보인다.
“모든 점이 좋은 건 아니다. 같은 시험을 준비하던 형들이 이번에 다 떨어졌다. 그들은 2년 넘게 준비를 했는데 나만 덜컥 합격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몰라 아직 연락을 못했다.”
-도서관과 관련된 추억이 많나.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다 보니 도서관의 1년 생리가 보인다. ‘요즘에는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느라 사람이 많겠다’하는 것들 말이다. 또한 오랫동안 공부하는 사람들을 계속 보니까 누구는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지 안면이 트이게 된다.”
-아는 사람이 생겼는지.
“저기 앉아있는 여자 두 명이 보이나. 둘 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이다. 오며가며 책상에 놓인 책을 보고 눈치 챘다.”
-친구를 사귈 수도 있을 것 같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간에는 미묘한 감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1년 동안 사람을 안 만나다보면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게 두려워진다. 공부에 방해가 되는 건 둘째 치고 말 걸었을 때 괜히 실수하는 건 아닐까 하는 나답지 않은 생각이 들더라.”
-미묘한 감정이라고.
“유대감과 경쟁심이다. 같은 열람실에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항상 그 남자가 나보다 먼저 도서관에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뜨거운 호승심이 일었다. 그 사람이 집에 가지 않으면 억지로 버티곤 해서 새벽까지 공부한 적도 많았다.”
-서로 아는 척을 하진 않나.
“어느 날 집에 가려고 사물함에서 짐을 챙기고 있었다. 대뜸 그 남자가 내 뒤에 대고 ‘뭐 공부하세요’라며 말을 걸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그 남자도 나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었다. 7급 감사직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는데 시험 전날 ‘내일부터는 도서관에서 절대 보지 말자’는 인상적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사람은 합격했는지.
“그 뒤로 도서관에서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공부하는 건가 싶기도 한데 합격했다고 믿기로 했다.(웃음)”
-도서관이 사랑의 성지란 말도 있던데.
“도서관은 은근히 로맨틱한 곳이다. 나도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 반 년 정도 지켜보다가 쪽지를 남긴 적이 있었다. 짧은 편지와 함께 그녀가 자주 먹던 가나초콜렛과 우유를 몰래 놓고 재빨리 사라졌다.”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여자의 촉은 무섭다더니 쪽지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바로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다른 열람실로 이동해버렸다. 혹시나 해서 그녀가 있는 열람실로 따라갔지만 다음날 또 그녀는 다른 열람실로 옮기더라. 그래도 포기는 이르다고 생각해 그녀가 집에 갈 때 쫓아가 마음을 고백했다.”
-성공했나.
“시원하게 차였다. 남자는 외모보단 자신감이라는 헛소문에 현혹되지 말았어야 했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공부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일종의 강력한 원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공부가 아니라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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