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다닐 때, 기부자가 희사한 연구장학금(fellowship)을 받은 적이 있다. 지도교수와 나는 조찬에 초대받으며, 일찍 일어나시는 노인으로 예상했으나, 삼대째 의사집안의 젊은 의사였다. 대학에서 물리나 화학을 배우면서 매력과 중요성을 알았지만 자신은 의사가 되었고, 가족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어 모교 대학원생들을 지원한다고 했다. 내가 취지에 부합한 사람이었는지는 자신이 없다. 닥터 맥커믹은 세 시간을 운전해서 우리와 조찬을 하러 왔다. 그는 장학금을 만든 동기를 설명하고, 내 연구에 대해 물었고, 학교 직원은 과거 수혜자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언급했다. 조찬은 한 시간에 끝나고, 의사 선생님은 서둘러 일하러 떠났다.

  미국사회에 대한 근사한 기억 한 편이다. 무엇보다 조교 월급만으로 근근이 살던 내게 절실한 돈이 생겼기 때문이겠지만, 자신의 장학금을 받는 학생을 만나 격려 한 마디를 해주러 새벽부터 달려온 그 의사의 성의, 장학금을 주고 싶어 했던 동기는, 그 이후 내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학교관계자가 기부자에게 표현하는 존경과 감사, 기부금을 소중히 잘 사용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학교가 나보다 더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자리에 권위나 생색, 설득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올해, 물리학과가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동문초청행사도 벌렸고, 이를 계기로 동문들로부터 장학금도 기부받았다. 여러 가지 우려를 들으며 시작되었지만, 초기 기부의사를 밝힌 이들의 참여의지가 확고했고, 나의 경험도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기부자의 동기와 모금자의 역할을 목격한 경험 말이다. 내 스스로 명분을 묻고, 동문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가장 오래 걸렸다. 취합한 부정확한 우편 또는 이메일 주소였지만, 동문의 입장에서 백 번 생각하고 세 번의 글을 써서 보냈다. 정확히 누가 받게 될지도 모르면서 보낸 것 같다. 봄·여름이 지나고, 행사도, 장학기금의 모금도 잘 마무리되었다.

  행사에 90학번은 다섯 명이 왔다. 세월의 흔적과 함께 본 얼굴들이 반가웠지만,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내가 보낸 이메일을 보고 알게 되었다는 말은 더 반가웠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이 사십대들이 보따리 하나를 풀어 놓았다. 동기 몇 명이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위해 매달 적립하여 몇 년간 모은 돈이 있는데, 이 기회에 함께 맡기려 한다고 했다. 액수에 잠시 놀랐지만, 이견 없이 긴 시간 함께 했다는 그들의 연대가 더 놀라웠고 부러웠다.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사람과 사회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후배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꿈을 이루기를 바란다는 말은,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할 때 진정성이 있다. 닥터 맥커믹의 덕담은 그 자신의 신념이었고, 자신들과 가치를 공유하는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 어떤 이들의꿈일 수도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자연의 이치만큼 인간의 마음도 알고 싶어진다.

 

김시연 교수

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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