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레이 도화지 위에 

예술의 색을 칠해 내부의 멋을 표현하다
 
중앙대병원 1층에 있는 영상의학과 로비를 지나다보면 마릴린 먼로 대신 해골로 구성된 팝아트를 발견할 수 있다. 단순한 해골도 엑스레이의 힘을 빌리면 작품이 된다. 엑스선을 쬔 물체들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보기 위해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 곽병국 교수가 촬영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들고 있다
 
우리 몸의 질병을 진단하는 방법 중 하나인 엑스레이 촬영. 신체적 고통은 없지만 엑스레이 촬영기와 마주치면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된다. 커다란 몸체가 주는 중압감에 사람들은 엑스레이 앞에서 건강을 심판받는 기분도 든다. 하지만 곽병국 교수는 엑스레이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엑스레이가 투과된 자전거와 카메라는 야경 사진과 포개지면서 하나의 별자리로 나타난다. 
 
엑스레이 아트와의 첫 만남
영상 의학을 전공하는 그는 환자의 몸을 의료 영상 기기로 찍어 그것을 바탕으로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그는 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엑스레이, CT, MRI 사진 등 의료 영상 자료를 환자나 일반인에게 친근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들은 보통 이러한 사진을 의학 서적에서나 볼 법한 전문적인 자료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곽병국 교수는 의학 목적으로 쓰이는 영상 자료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평소 사진에 흥미가 있던 그는 엑스레이 아트를 발견한 후, 무수한 사진예술과 경쟁할 수 있는 분야라 확신했다. 엑스레이 아트는 엑스레이 촬영기 없이 작업을 진행할 수 없어 일반 사진가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는 직업상 엑스레이 촬영기를 쉽게 다룰 수 있죠. 촬영기만 있으면 엑스레이가 투과된 그림자 자체로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어 이를 이용한 분야는 조금만 해도 쉽게 눈에 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엑스레이가 예술로 탄생하기까지
 
엑스레이 아트의 기본적인 정의는 엑스레이 촬영기를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의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엑스레이로 어떤 대상을 비추면 물체 반대편에 상이 맺히는 것이 그 원리다. “까만 바탕 위 엑스레이가 투과되어 나온 하얀 선들을 보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워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는 다른 묘미죠. 바로 이것이 엑스레이가 하나의 아트가 될 수 있는 이유에요.” 엑스레이가 투사되면 핸드폰과 핸드백도 하나의 작품이 된다. 
 
엑스레이 아트를 위해 처음으로 그의 시선을 끈 것은 사람의 몸이었다. 곽병국 교수에게 몸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신비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사람의 몸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고심 끝에 나온 첫 작품은 ‘세월’이다. 질병이 없는 정상인의 몸을 엑스레이로 찍어 적게는 17세부터 많게는 71세까지 나열 한 것이다.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엑스레이로 나타내고자 했다. 엑스레이로 찍은 17세 소년의 사진을 보면 혈관도 탱탱하고 뼈도 깨끗하지만 71세 노인의 엑스레이 사진은 꼬불꼬불한 혈관에 뼈는 구멍이 송송 나있다. 한 사진으로 세월을 나타내고자 했던 그는 점점 엑스레이 아트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사진에 메시지를 담다
환자를 대상으로 엑스레이를 찍다 보니 암이 있거나 질병이 있는 사진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사람의 몸에 이상이 있는 사진을 볼 때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사진을 볼 때 좋은 느낌을 중시하는 그에게 질병을 앓는 신체는 아름답지 못했다. “사진을 봤는데 암이 있거나 혈관이 꽉 막혀 썩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져요. 우울하게 만드는 사진은 좋은 사진이 될 수 없죠.” 그러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연이나 사물을 선호하게 됐다. 
 
하지만 단순히 대상을 엑스레이로 찍는 1차 작업은 그의 구미를 맞추지 못했다. “1차 작업으로 끝낸 사진은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 작품의 맛이 없죠. 저만의 특징이 드러나는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그는 한발짝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2차 작업을 진행했다. 2차 작업은 엑스레이로 찍은 사진 위에 실제로 그림을 그리거나 포토샵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곽병국 교수는 자신이 평소에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던 일반 사진 위에 엑스레이 사진을 합성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여기서 창작의 고통이 나타난다. “2차 작업엔 그 사람의 개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죠. 개성이라 함은 누가 먼저 도전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것이죠.” 창의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2차 작업은 그의 머리를 쥐어짜게 한다.
 
그만의 의미를 부여한 첫 작품이 바로 ‘자전거 자리’다. 평소 그는 천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하늘을 보면 별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엑스레이를 통해 하늘의 별자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하늘에 별이 없으면 제가 만들면 되죠. 엑스레이로 사라진 별들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자전거 자리로 단순히 사라진 별자리를 표현하려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별을 통해 꿈을 표현하고자 했다. 각박한 사회에서 별뿐만 아니라 사람의 꿈도 같이 없어졌다고 본 것이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없어진 꿈들이 다시 나타나기를 희망하는 그의 소원이 담긴 작품이다. “공기가 오염돼 하늘에 별이 안 보이듯 사람의 꿈도 삭막한 사회에 의해 가려져 있어요. 이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 마음속에 사라졌던 꿈들을 다시 떠올려보면 좋겠네요.”
 
꿈에 그리던 전시회를 개최하다
작품을 여러 개 만들다 보니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곽병국 교수는 포토샵을 다룰 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사진을 인화하는 법도 액자를 만드는 법도 알지 못했다. 그러던 그는 2006년 첨단영상대학원 하동환 교수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중앙대병원 내에서 사진전을 개최할 수 있었다. ‘혈관영상과학사진전’이라는 이름으로 약 50개의 작품이 선보여졌다. 당시 그는 엑스레이 아트에 관심 있었던 다른 중앙대 영상의학과 교수들과 방사선사들과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공통으로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작업을 해서 기분이 좋았죠.” 
 
하지만 첨단영상대학원의 도움이 사라지자 곽병국 교수는 곤란에 빠졌다. 작업이 진척되지 않자 전시회를 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는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전시회도 가보며 몰랐던 부분들을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전시회는 열지 않았지만 그동안 그는 전시회를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2011년, 그는 병원에서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바자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바로 참석하기로 했다. 바자회에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봉사도 할 수 있었다. 2012년엔 세계 원자력 및 방사선 엑스포에서 곽병국 교수의 엑스레이 아트 작품을 전시해도 되겠냐는 의뢰가 들어왔다. 엄청난 제의에 그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고 바로 작업을 진행했다. 곽병국 교수에게 이 전시회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저는 사람들이 제 작품에 관심을 가져 줄 때가 가장 기뻐요. 외부에서 의뢰까지 오니 원내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제 작품을 전시할 수 있어 뿌듯했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는 엑스레이 아트
그는 답답한 느낌을 엑스레이 아트를 통해 푼다. 그는 평소 엑스레이 아트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가 아이디어를 구현해 낼 때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밀린 업무에 심신이 지칠 때면, 한밤중이라도 사진기와 삼각대를 바리바리 챙겨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따라 달린다. 한강 상류에 이르러 탁 트인 밤하늘 보면 갑갑한 감정이 사그라지고 동시에 엑스레이 작품을 위한 영감이 되살아난다. 곽병국 교수는 한강을 자주 찾아가 사진을 찍곤 한다.
 
후에 작업실에서 엑스레이 사진과 겹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면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시원한 기분이 든다. “누구든 힘든 시기에 느꼈던 억압된 감정들이 있잖아요. 엑스레이 아트를 위한 사진을 찍으면 억압된 감정들이 분출되면서 갑갑한 삶을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쌍안경 자리’다. 한강에서 찍은 밤하늘에 엑스레이가 투과된 쌍안경 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성한 것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쌍안경은 억눌린 감정이 멀리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느낌을 줘요. 자유에 대한 갈망을 광활한 밤하늘에 쌍안경 엑스레이 이미지와 겹침으로써 사진으로나마 표현한 것이죠.” 그에게 엑스레이 아트는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되는 존재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