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안녕하세요?”
“어, 잘 지내지?”
“저…방금 교수님 수업 듣고 나오는 건데요.”
“어…미안….”

  우리는 이처럼 예기치 않게 미안한 상황을 만나게 되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일을 할 때가 있다. 학교의 일상 속에서 이러한 상황과 마주할 때,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예의바르고 유쾌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는데 칼럼을 통해 잠깐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무례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수업이 시작했는데 앞문으로 들어가기(뒷문이 있음에도)/교수님께 이메일을 내용 없이 파일만 첨부해서 보내기/길을 가다 교수님을 보았으나 인사 없이 지나치기/24시간 아무 때나 전화나, 문자, 카톡으로 연락하기.

  이러한 상황은 사실상 화가 나기도 하지만 어떻게 이 상황을 학생들에게 인식시킬까 고민되는 부분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학생들이 행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뒷문으로 들어가도 방해되는 건 마찬가지잖아/어차피 파일이 중요한 것이니 쓸 데 없는 내용 줄줄이 쓰는 것보다 효율적이지 않나?/교수님이 날 잘 모르실 거야/교수님이 날 못 보셨을 거야/어차피 주무신다면 못 받으실 거 아니겠어?

  이런 생각을 했다면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의도가 무엇이었건 상대에게 불쾌한 감정을 유발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아니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성공하는 사회생활에 대해 안내하는 다양한 책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상대를 존중하라는 것. 이것은 누구나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내 위주의 결정이 아니라 결정권을 상대에게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추운데 창문 좀 닫아줘” 보다는 “추운데 창문 좀 닫아 줄 수 있겠니?”가 그리고 “혹시 춥지 않니?”가 더 공손한 이유는 화자 판단의 양을 줄여 청자 중심의 메시지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앞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24시간 연락을 취하는 행동은 상대가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 욕구를 더 강하게 나타내는 것이기에 무례하다. 이메일의 효율성이나, 자신에 대한 발견 여부를 예단하는 것은 이 메시지에 대한 상대의 참여 부분을 상실시킨 것이라 무례하다.

  사람에 따라 배려를 느끼는 정도가 모두 다르기에 배려가 있는 소통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상대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어려운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 돋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유미 교수

교양학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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