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작성으로 밤을 지새고
세상에 출사표를 던지다


  펜으로 자웅을 겨루는 진검승부에 한창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작은 A4용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기 위해 언어의 마술사가 되기도 하고 평생의 기억을 되짚는 명상가가 되기도 한다. 종이 한 장이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가 남다른 만큼 취업준비생들은 머리를 쥐어짜는 고역을 치른다. 3주 동안 자기소개서(자소서) 50개를 썼다는 남자를 만났다. 며칠 밤을 하얗게 지새운 그는 피곤한 모습으로 해방광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자소서를 쓰는 시즌이라 한창 바쁘다. 어제만 해도 학교에서 밤새 3개를 썼다. 집에 가서 잠깐 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왔다. 오늘 또 써야 한다.”
-어떤 식으로 자소서를 작성하나.
“회사마다 원하는 형식이 다르다.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의 특성이나 비전에 맞게 내 이야기를 끼워 맞추는 거다. 합격, 불합격의 기준이 회사마다 달라 참 애매하다.”
-지원하는 데도 신중함이 요구될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군데 써서 보낸다. 적어도 50개는 써서 보내야 된다고 하더라. 한 개를 완성해 놓고 복사, 붙혀넣기하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지금까지 대기업 위주로 14개의 자소서를 썼다. 이렇게 밤을 새가면서 다음주까지 자소서를 써나간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합격한 곳이 있는지.
“현재 두 곳에서 발표가 났지만 모두 낙방했다. 하나는 되겠지 싶었는데 아쉬웠다. 그래도 그중 한 군데는 서류전형에라도 합격해서 위안이 된다. 비록 인적성 검사에서 탈락했으나 실낱같은 희망이 보여 마음이 놓였다.”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가.
“이제 시작이니까 좌절은 하지 않는다. 많이 떨어져봐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다고 들었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지금 도서관에는 자소서를 쓰고 있는 학생이 빼곡하다. 나만 뒤쳐질 수 없다.”
-스스로 스펙이 어떻다고 보나.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10점 만점에 7~8점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취업의 벽은 높다. 괴물 스펙을 가진 취업준비생들이 생각보다 많다. 토익 만점에 학점 4.2가 넘는 사람도 간간히 있었다.”
-자소서를 작성하는 요령이 있다면.
“기억을 되짚는 것부터 시작한다. 기억을 연 단위나 월 단위로 나눠서 되살려보면 자잘한 경험들도 자소서에 녹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온갖 이야기가 다 들어간다. 이야기들을 좀 더 재밌고 특별한 사연으로 가공하다보면 이게 내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다. 자소설이라고 하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다.(웃음)”
-강조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나.
“기자단 활동이나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등 다양한 대외활동을 많이 했다. 1학년 때 10개월 간 세계일주 한 경험도 있어 인사 담당자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세계일주의 경험을 기입했는지.
“여행을 하면서 느낀점을 자소서에 녹여 썼다. 이집트에서 3개월 정도 있는 동안 스킨스쿠버를 가르쳐준 강사님과 친해졌다. 그 분과 인상 깊은 일이 있었다. 강사님이 억울한 사건에 휩쓸려 감옥에 갇혔다가 2년 후에 무죄로 풀려난 사건이었다.”
-그 사건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그 강사님은 굉장히 억울해할 법도 한데 너무나 밝게 생활을 하시더라.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모습에 많은 교훈을 얻었다. 실제로 느낀 부분들을 자소서에 쓰니까 자연스럽게 글이 나왔다.”
-자소서를 쓰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간혹 정말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실태를 사자성어로 제시하고 그 이유를 쓰라’는 문제나 ‘현재 우리 회사의 문제점을 짚고 해결책을 제시하시오’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 이런 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알면 직접 회사를 차리지.”
-원하는 회사에 붙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끔찍하지만 1년 더 해야 한다. 보통 하반기 취업시장이 활발하니까 떨어진다면 내년 말까지는 지금 하는 것처럼 생활해야 한다. 그래도 선배들이 말하기를 몇 번 자소서를 쓰다보면 거진 다 붙는다고 했다.”
-그동안 꾸준히 취업을 준비했던 건지.
“평소에는 학점에만 조금 신경을 쓰고 취업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았다. 토익 점수도 한 달 전에 급하게 공부해서 간신히 점수를 맞췄다. 조금 후회는 된다.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취업 준비를 했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요즘 취업을 준비하며 어떤 생각을 하나.
“자소서를 쓰다보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지긋지긋한 자소서지만 그 과정에서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되니까 느끼는 것이 많다. 평가하자면 그동안 무언가를 위해 열정을 쏟아붓는 인생을 살지 않은 것 같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추진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안일했던 나 자신이 보여 씁쓸하더라.”
-삶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의 포부도 담은 것이 자소서 아닌가.
“꿈이 따로 없었다. 한 때는 개인 사업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을 그려본 적도 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에 취직하지 않고 사는 것은 큰 위험을 떠안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일단은 어디든 들어가서 몸 비빌 곳을 찾을 생각이다. 회사에 들어가서 경력을 쌓은 후에 기회가 되면 나만의 일을 시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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