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수험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족집게 과외도, 밤을 새는 마지막 고군분투도 아닌, 수많은 선배들이 이야기해주는 컨디션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이 만들어낸 여러분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들어갈 대학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요행과 대박을 바란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고 비양심적인 것이다.

  우리는 공부 잘하는 친구를 시샘해왔고 여전히 그러하고 있다. 수능을 준비하는 친구뿐만이 아니라 대학에서도, 더 나아가 사회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을 시샘하고 질투한다. 분명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공부를 하고 열심히 연구하는데 왜 저 친구는 나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일까?

이 질문은 꽤나 쉬운 정답을 해답으로 가지고 있다.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이미 여러분의 대학과 학점은 정해져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이라는 그룹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대학에 와서도 성적 장학금은 매번 받는 친구들만 받아가는 이유는 바로 이 글의 제목이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지겹게도 들었던 저 사실은 심지어 취업 전선에서도,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의 방향 - 인생 설계와 자아 정체성, 적성 탐구, 전공에 대한 고민을 포함한 소위 자기 계발 - 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이 어떠한 교육 방식을 거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시샘의 객체로서 수많은 경험을 해왔을 것이다. ‘산 경험이야 말로 가장 좋은 선생이다’라는 격언처럼 그들은 그들의 삶을 2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들보다 치열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단순히 고등학교 3학년, 매 학기의 학점, 그리고 1년의 취업 준비를 위한 벼락치기는 통할 리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안다. 하지만 모른 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잘난 체 하네’로 대변되는 인정하지 않는 자세로 여전히 우리 자신을 급히 변호하고 있을 뿐이다. 

시샘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 차이에 대한 피로를 단기적으로 만회하려는 시도 - 에 대한 대안으로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의 키워드를 제안한다. 그는 ‘사색’과 ‘분노’를 내어놓는다. 사색은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능동적으로 어떤 자극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분노는 현재 일을 중단하고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여 새로운 상황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이 사색과 분노를 통해 개인의 소진을 막을 수 있지만 이를 선택한 사람은 지금의 무한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고 만다. 방학의 학교를 보아라. 우리는 쉬지 않는다. 전부 스펙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시대가 되었다. 단편적인 예시지만 이런 임시방편으로는 절대적 총량의 간극을 좁힐 수 없다. 또 다른 의문, 그렇다면 절대적으로 쌓인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만회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그 시작을 인정과 행동이라 정의하고 싶다. 

우리가 시간과 경험이 부족한 상태라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자람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절반이라는 격언처럼 준비단계는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인정만 하는 자세는 일차원적인 발전밖에, 절반의 성공이라는 아쉬움이 따른다. 벼락치기와 같은 임시방편과 구체적인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사색과 분노 - 인정에서 그친다면 변화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사실은 늦지 않았다’는 헛소리가 먹히지 않는 이 절대적 시간과 경험은 우리의 부족함을 만회하기 위한 절대적 시간과 경험을 위한 우리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한 뼈저린 후회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다시 쌓아 올라갈 발판을 만들어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맞이한 절대적 시간과 경험이 부족한 비참한 현실이다.

빈승률 학생

건축학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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