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세세한 표정 변화를 포착해내는 데 도사인 웹툰작가가 있다. 그는 대사를 많이 넣지 않아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깔끔한 만화를 추구한다. 그가 표현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독자는 만화 속 주인공의 상황에 절로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기에 스릴러만화를 더 잘 그리게 됐다고 미소 짓는 황준호 동문(시각디자인학과 03학번)을 만나봤다.

▲ 사진 박가현 기자
  황준호 동문은 싸이코패스와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로 만화계에 데뷔했다. 균일하지 않은 주름, 어긋난 얼굴형, 퀭한 눈동자는 모니터 건너편에서 독자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인물의 균형이 파괴될수록 섬뜩함은 배가 되어 부풀어 올랐다. 웹툰 <악연>에서 시작해 <공부하기 좋은 날>, <인간의 숲> 등으로 한국 웹툰의 역사에 스릴러만화란 한 획을 그은 그의 만화 인생을 들여다봤다.
-차기작 소식이 들린다.
“<병신로봇 또라이몽>이라는 가제를 붙인 개그만화를 준비하고 있어요.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에요. 만화 속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빵 심부름을 시키는 일진을 비난하지 않아요. 오히려 100원을 받았는데도 심부름을 제대로 못한다며 주인공을 욕하죠. 폭력에 익숙해진 자신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거예요. 미래 세계의 로봇 또라이몽이 주인공을 구하러 오지만 결국 로봇도 사회에 찌들어 주인공에게 멀쩡한 발명품을 주는 법이 없죠.”
-학교를 배경으로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학교생활을 빌어 보여주고 싶었어요. 학교가 사실 사회의 축소판이잖아요. 제가 사회에 원망 비슷한 것이 있어요. 우리는 약자에게 가혹하고 강자에게 유리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부조리를 두 가지 방법으로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이야기 속에 가볍게 녹여서 보여주면 개그물이 되는 것이고 직설적으로 보여주면 스릴러물이 되는 거죠.”
-개그만화에 자신이 있나.
“많이 망설여지기는 해요. 스릴러만화를 계속 그리다보니 괴로워 2011년 웹툰 <잉잉잉>으로 개그만화에 도전한 적이 있거든요. 크게 말아먹었죠. 하지만 개그만화 말고는 딱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어요. 개그만화는 옴니버스로 연재하는 것이라 바로 담당자에게 보여줄 수 있어 연재 여부도 빨리 결정나죠. 스릴러풍의 드라마도 구상하긴 했는데 스릴러만화는 공부해야 할 양이 많아서 준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요. 신속한 복귀와 더불어 스릴러만화를 준비할 시간도 벌 수 있으니 개그만화에 다시 도전해보려고요.”
-스릴러만화를 공부하는 방법이 있는지.
“책이나 영화를 찾아봐요. 옛날에는 좋아해서 공포영화나 스릴러영화를 봤지만 지금은 참고하려고 보죠. 최근에는 <컨저링>을 재미있게 봤어요. 그래도 요새 호러영화가 대체적으로 무서운 약발이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아쉽더라고요.”
-어떤 성향의 만화를 추구하나.
“하루키의 팔레스타인 관련 연설문 중 ‘언제나 약자의 편에서’란 글이 있어요. 그 글에서처럼 벽에 던져지는 계란이 되고 싶었어요. 계란을 던진다고 해서 벽이 깨지지는 않지만 미약한 시도일지라고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관습에 도전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요.”
-영감은 보통 어떻게 얻나.
“다른 작품들을 통해 영감을 받곤 해요. 제가 일본 괴기만화의 대가인 이토 준지를 좋아해요. 재미있는 작가잖아요. 한 때는 이토준지와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요즘엔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영화감독에게 나름대로 가르침을 받고 있죠. 참고할 일이 있으면 만화보다는 영화를 보는 쪽이에요. 만화를 그릴 때도 영감이 필요한데 비슷한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한다면 표절이 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만화나 소설은 참고하기를 꺼리죠.”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이야기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상상하며 놀았죠.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도구가 만화였어요. 덕분에 학교에서 저는 만화 그리는 친구로 통했어요. 친구들이 제 만화를 재미있다고 말해주니까 만화가를 꿈꾸게 됐고요.”
-시각디자인학과 진학은 만화를 공부하기 위한 흐름이었나.
“만화와 비슷해 보이는 캐릭터 디자인이라도 배우고 싶어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한 거예요. 입시 미술로 석고소묘를 배웠기 때문에 만화 관련 학과에 진학하기 애매했을 뿐 아니라 IMF가 터지면서 한국 만화산업이 완전히 망가졌거든요. 불법 다운로드가 판을 쳤어요. 현실적으로 만화과에 지원할 연유가 없었죠.”
-대학에서 원하던 분야를 배우게 되었는가.
“웬걸요. 시각디자인학과 커리큘럼이 광고영상 위주로 구성돼 있더라고요. 학교 도서관을 찾아가도 캐릭터 디자인에 관한 책이라고는 낡디 낡은 책 한 권이 다였어요. 만화와 점점 멀어지면서 술과 동무가 되었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나.
“군대를 다녀오고 1년간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광고 회사도 다녀봤지만 결국 만화를 그리는 생활로 돌아왔어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죠. 사실 저는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처럼 한탕해서 놀고먹을 수 있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생각해보니 제가 만화를 끝까지 완성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작정하고 만화에 집중해보기로 다짐을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작품이 제 첫 데뷔작인 <악연>이에요.”
-<악연> 정식 연재에 성공한 사연은.
“2009년 10월 31일이 <악연>을 정식으로 연재한 날이에요. 메일 한 통이 저를 살렸어요. <악연>을 비공식 연재한 지 2달이 지났는데 제 만화보다 별로인 것들도 베스트 게시판으로 옮겨가는 거예요. 제가 진심을 담아 그린 <악연>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데 말이죠. 고민하다가 웹툰 상담팀에 메일을 보냈어요. <악연>을 정식 연재시켜 달라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악연>을 많이 봐주었으면 좋겠다고요. 베스트 게시판에 오르지 못하면 다른 게시물에 묻혀버리기 십상이거든요. 그런데 황당하게도 ‘연재하라’고 답장이 왔어요.”
-어두운 분위기의 만화를 즐겨 그리는 이유가 있다면.
“그림실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어두운 만화를 그리게 된다고 할까요. 호러만화는 인체의 균형이 어긋나도 괜찮거든요. 그래야 더 섬뜩한 느낌이 살죠.(웃음) 제가 사건을 이해하는 시각이 비딱하다보니까 <병신로봇 또라이몽>처럼 비딱한 주제의 만화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림 철학이 궁금한데.
“미니멀(Minimal)스러운 것을 지향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깔끔하게 표현하도록 힘쓰고 있어요. 메시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메시지가 없는 만화에나 자질구레한 장식이나 디테일이 들어가는 거예요. 만화를 완성하고 보면 예쁘긴 한데 뭔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쓸데없는 대사를 넣지 않도록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나.
“메시지가 있는 만화를 추구하지만 독자에게 메시지를 이해해달라고 요구하진 않아요. 독자들은 만화의 메시지를 알아서 자기의 것으로 소화시키거든요. 제가 나설 필요가 없는 거죠. 메시지 전달에 비중을 뒀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집착을 버렸어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애증의 장소에요. 미워하기도 참 많이 미워했죠. 대학에 입학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으니까요. 요즘 대학은 대학이라기보다 취업을 위한 준비시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 꽃다웠던 20대 시절을 보낸 장소인 만큼 잊을 수 없는 추억도 많죠. 모든 첫사랑이 그렇듯 실연의 아픔을 겪기도 했고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사나이들의 우정을 느끼기도 했어요.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들도 마음껏 읽었고요. 중·고등학생 때 워낙 해본 게 없는 사람이라 인큐베이터에 막 나온 아기처럼 대학에서 경험한 모든 일들이 새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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