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명탐정 코난’이라는 만화영화를 즐겨 봤습니다. 주인공 코난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 그리고 오늘날이 되어 기자는 생각합니다. 과연 진실은 언제나 하나일까 하고 말입니다. 

  기자는 이번에 굵직한 기사를 하나 맡게 되었습니다. 예술대운영위원회(예운위)의 동아리 지원비 향방에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증액된 동아리 지원비 1,200만 원의 출처와 그 쓰임새의 재정비를 의논하는 자리에 참석했고 사건의 경과를 면밀히 파악했죠. 기자의 시선으로 본 진실은 단순했고 뚜렷했기에 기자는 이 기사를 쉽게 쓸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기사를 쓰게 되자 빈 화면에서 채 세 줄을 넘기지 못했죠. 많은 자료가 있었고, 기자 나름대로 이해한 사건의 전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팩트는 계속 모호했습니다. 취재된 자료는 어디에서부터가 의견이고 어디에서부터가 사실인지 파악이 어려웠고 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이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진실에의 판단을 내려놓고, 기자는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반복됐습니다. 저는 분명 ‘같은’ 사건에 대해 물었는데 만나 본 사람들마다 말하는 바가 달랐습니다. 사건의 굵직한 면이 다르기보다는 사건에 대한 경위가 달랐지요. 예를 들어, A측에서는 문제가 됐던 동아리에 대한 안건을 그동안 계속 논의해온 바가 있다고 말했다면 B측에서는 논의되어 온 바가 전혀 없으며 동아리에 대한 안건이 갑작스럽게 추진되었다고 말하는 식이었지요. 또한 취재원들에 따라 그들이 언급하는 인물에 대해 연상되는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듣고 보면 경솔해 보이던 이도 운 없는 피해자 같았고 믿음직해 보이던 이도 어쩐지 허술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들의 ‘진실’을 토로하는 취재원들은 모두 어딘가 절박하고 확고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태도였죠. 거짓말이나 자신을 포장하는 태도가 섞여있을 수도 있지만 기자는 그보다 그것이 취재원들의 눈에 보이는 ‘진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위치에서, 입장에서 바라본 사실이 어느 누구에게는 진실이 아닐지라도 그들에게는 확고한 ‘진실’이었다는 것이죠. 그런 경험을 하면서 기자는 사실 진실이란 무수한 개인적 의견의 공방일 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진실이 언제나 하나고 그 하나의 진실이 뚜렷하게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자가 바라본 진실은 이해관계라는 실로 잔뜩 엮여 있어 하나인지 두 개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그 많은 이들의 이야기에 담긴 진실을 더욱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죠. 여러 개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하나의 진실을 추구하려 애쓰는 것. 다양한 진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지향해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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