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좋아 시작한 다이빙
중력과 부력의 가운데서 수중산책을 하다
 
  연구실에서 공부만 할 것 같은 법학과 김성천 교수는 틈이 날 땐 다이버가 되어 바다로 떠난다. 그의 스쿠버다이빙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으나 날이 추워져 이번 해에는 국내에서 더 이상 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대신 찾은 그의 연구실에서 생생한 다이빙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낯선 바다 속에서 물고기와 함께 헤엄치는 상상은 어렸을 적 누구나 해보았을 만하다. 하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깊은 물 밑 세계를 가늠하기란 쉽지가 않다. 잠수함을 타더라도 유리창이라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김성천 교수는 이러한 꿈을 현실로 가져왔다. 그는 10여 년 전 스쿠버다이빙을 만난 후 새로운 세계의 탐험가가 될 수 있었다.


  독일 유학 시절 물과의 만남
 
  김성천 교수는 1978년 중앙대 법학과로 입학하게 됐고 법이라는 학문은 그를 교수의 길로 이끌었다. “법이 좋았고, 그 중에서도 형법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누구에게 가르쳐 주는 일도 적성에 맞았던 거죠.” 전공 역시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그가 여가 시간에 즐기는 일은 따로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취미로 갖고 있는 등산이었다. 여유가 있을 땐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서 지리산, 설악산 등반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석사과정을 마친 후 독일로 유학을 갔던 그는 더 이상 등산을 즐길 수 없었다. “독일 북쪽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 쪽에는 산이 거의 없어요. 가장 높은 곳도 300m 밖에 안 되기 때문에 등산이라고 하기가 힘들었죠.”
 
  즐겨왔던 취미가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또 다른 것은 없을까 해서 찾아낸 것이 ‘스킨다이빙’이었다. 당시 빌레펠트 대학 내에서 무료로 수강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 중 하나였기에 부담 없이 배우게 됐다. 
 
  수많은 강좌 중에서도 그가 스킨다이빙을 선택한 이유는 물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원래 물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했어요. 수영은 잘 못했지만요.(웃음)” 스킨다이빙 강의의 마지막 시간, 강사들은 스쿠버 장비들을 가져왔다. “물속에서 호흡하는 것을 처음으로 해보게 됐어요. 숨을 쉴 수 있으니까 너무나도 편하게 느껴졌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친숙하게 느껴졌던 물속 체험을 잊지 못해 본격적으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김성천 교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스쿠버다이빙 동호회를 찾는 것이었다. 여러 동호회 중에서도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곳에 가입해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그와 함께했다. “아내와 딸, 아들도 다 같이 자격증을 땄어요.” 5일 정도의 교육을 받고 필기시험과 해양 실습이라는 관문을 거치고 나니 손에 스쿠버다이빙 면허증이 쥐어졌다. 
 
  “요즘엔 가족들이랑 다 같이 즐기지는 못해요. 시간도 시간이지만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많이 가서….”(웃음) 그래서 그는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러 나간다고 한다. “스쿠버다이빙은 혼자 즐길 수 없는 레포츠에요. 물속으로 두 명씩 함께 짝을 지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죠.”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기는 스포츠
 
  스쿠버다이빙은 수심 깊은 물속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격렬하고 어려운 스포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정의 하에 스쿠버다이빙은 스포츠라기보다는 그저 ‘산책’에 불과했다. “처음 잠수했을 때에는 몸의 균형을 맞추고 호흡을 조절하는 게 어려워서 많이 헤맸죠. 움직임도 많았고 여러모로 힘들었기 때문에 운동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잠수가 익숙해지고 점점 편해져서 운동이 될까 의심이 될 정도네요.” 그는 스쿠버다이빙이 나이가 들어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쉬운 스포츠라고 말한다.
 
  또한 정해진 규정만 잘 지킨다면 위험할 일이 전혀 없다고 한다. 많은 규정 중에서도 가장 우선으로 지켜야 할 것은 ‘물속에서 천천히 올라오기’다. “사람의 몸에도 ‘베이퍼 락(vapor lock)’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요. 높은 수압에서 호흡하면 산소통 안에 있는 질소를 많이 들이마시게 돼요. 그러다 갑자기 수면으로 올라오면 급격히 낮아진 압력 때문에 혈액 안의 질소가 기포가 되어버리죠. 결국 혈액이 흐르지 못해서 몸에 이상이 생겨요.” 10년 동안 스쿠버다이빙을 해오면서 단 한 번도 위험했던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남모를 자부심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100깡
 
  김성천 교수는 연구실 한 쪽에서 커다란 가방을 가져왔다. 그는 가방 속에서 스쿠버다이빙 장비들을 하나씩 꺼내 보였다. 핀, 수트, 마스크, 부력 조절기 등 무거운 가방 속에는 크고 작은 갖가지 장비들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한 권의 노트였다.
 
  바로 그가 처음 다이빙을 시작했을 때부터의 일들이 모두 담긴 ‘로그북’이다. 로그북이란 다이빙을 한 날의 조건이나 고쳐야 할 점 등을 기록하는 잠수일지다. 그의 로그북 첫 페이지에는 2000년 8월 6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주문진에서의 세세한 일들이 쓰여 있었다. 두꺼운 노트 한 권에 모인 14년간의 다이빙 기록은 하나의 작은 역사가 되었다. 
 
  스쿠버다이빙의 기록은 공기통으로 세기도 한다. “한 번 들어갈 때마다 공기통 하나를 쓰는데 그걸 한 깡(통)을 했다고 말을 해요. 깡 수가 늘어날수록 물이랑 친해지는 거죠. 저는 지금껏 100깡 정도를 했어요.” 
 
  그는 하루에 많게는 4깡까지도 한다. 100깡이라는 말이 쉽사리 와 닿지 않지만,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제한되어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껏 부지런히 달려온 대단한 결과다. “100깡을 달성했을 때 정말 뿌듯했어요. 아, 내가 물에 이만큼 많이 들어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바다 세계 산책하기
 
  김성천 교수는 국내에서 동해와 남해, 제주도와 울릉도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즐긴다. 추운 겨울이 되면 적도 근처의 아름다운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도 한다. 수많은 바다 가운데에서도 그는 필리핀의 바다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동해 바다에는 모래가 많이 깔려있는데, 필리핀 바다는 꽃이 피어있는 정원 같아요.” 
 
  하지만 추운 겨울 날씨에 국내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자격증의 고급 단계에서 배울 수 있는 드라이수트를 입으면 된다. 드라이수트란 일반 수트와 다르게 몸이 젖지 않기 때문에 몸을 더 따뜻하게 보호해주는 잠수복이다. 김성천 교수는 중급 단계의 자격증을 갖고 있어서 아직 드라이수트 과정을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앞으로 꼭 배우고 싶어요. 그래서 겨울에도 우리나라 바다 속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에게 스쿠버다이빙은 물속 세계에서 날아다니는 비행과 같다. 바다 속에서 중력과 부력이 동일해질 때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좋다고 하는 김성천 교수. 오늘도 그는 깊은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숨소리를 들으며 물속을 유유자적하게 떠다니는 상상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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