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기보단 혼자 가는 게 쉽게 느껴지는 현실
조별과제가 넘치는 대학에서 우리는 서로의 골칫거리가 된다
 
 TV 프로그램 ‘미생’에서는 주인공 장그래(임시완)가 팀 프로젝트 중 자신의 파트너인 한석율(변요한)이 홀연히 출장을 떠나자 분노를 한다. 혼자 모든 부분을 도맡아 일을 진행하던 장그래는 ‘좀 더 섹시하게 아이템을 구성하라’는 한석율의 적반하장에 폭발하고야 만다. 결국 그는 한석율을 제외하고 단독으로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한다. 어딜 가나 피곤함을 유발하는 한석율 같은 인물, 어딘가 모르게 친숙함이 느껴진다. 바로 대학 내 조별과제에서 한 번쯤은 마주친 프리라이더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학생들이 조별과제를 꺼려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조별과제 속 가벼워지기만 하는 책임감
 조별과제 앞에서는 대학생활의 낭만을 잠시 접어둬야 했다. 토론을 통해 협동의 힘을 배양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눈치와 불신 속에 인내심이 싹트는 장이었다. 실제로 조별과제 시스템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전체 5점 중 불만족에 해당하는 1,2점이 각각 16%(24명), 33%(51명)로 49%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조별과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이상현 학생(사회학과 2)은 “조별과제는 모이는 것부터 스트레스다”며 “학습적으로 배우는 것도 없어 남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기반에는 ‘무책임한 프리라이더’가 한몫했다. ‘일하는 20%가 노는 개미 80%를 먹여 살린다’는 파레토의 법칙처럼 집단 내에서 개인의 책임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책임소재가 불명확한 조별과제 내에서는 이러한 일이 빈번해진다. 이민하 학생(가명·사회대)역시 조별과제보다는 대외활동이 시급한 문제로 다가왔다. “대외활동은 제가 없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지만, 조별과제에서는 사실 뚜렷한 역할이 없다고 느껴서 조모임에 불참하게 됐죠.” 결국 열을 내서 과제를 주도하는 사람은 ‘사서 고생’하는 격이 되는 상황인 것이다.
 
프리라이더 양성소로 전락한 조별과제
 결국 이렇게 타인을 고생시키는 무책임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자질을 탓했다. 하지만 프리라이더는 단순히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조별과제 시스템에서는 누구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 있다. 많으면 한 학기에 대여섯 개씩 쌓여있는 조별과제는 학생들의 버거움에 한몫한다. 이지섭 학생(경영학과 1)에겐 한 주에 4개나 되는 조별과제 약속이 그랬다. 주어진 일정에 비해 조별과제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 팀플도 하고 저 팀플도 하다보면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많아요. 참여를 하지 못해 팀원들과 불화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었죠.”
 
 뿐만 아니다. 때로는 강제적으로 프리라이더가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생과 고학년생이 한 반을 꾸릴 수 없듯 조별과제에서도 실력차이로 인해 배제되는 이들이 있었다. 배제가 되는 대부분의 대상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유학생이나 경험이 적은 신입생들이었다. 배대송 학생(사회학과 4)은 조별과제 구조상 실력이 뒤쳐진 구성원을 모두 끌고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팀플 제도 자체가 개개인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니까 효율을 위해서는 같이 가기보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울 제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생들은 조별과제를 통해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기보다 오히려 개개인으로 분리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상현 학생은 “팀원들이 제한된 시간 내에 과제를 급하게 진행 하다 보니 피드백 없이 각각 피상적인 분석에 머무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류가 잘 되지 않으니 결국 개인들의 책임감은 더 낮아지고, 소통의 벽이 생기자 프리라이더가 양산되는 악순환을 경험하는 것이다. 
 
팀보다는 차라리 솔로가 낫다
 그래서 일부 교수들은 조별과제를 진행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하는 사람만 하는 이른바 ‘쏠림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다. 정준희 교수(신문방송학부)는 “프리라이더라 불리며 묻어가는 사람들을 통제할 만한 방법이 따로 없다”며 조별과제의 모순성에 대해 말했다. 사람들은 조별과제를 통해 협업과 집단지성의 발현을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한두 사람에 의해 압도되는 경우가 훨씬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원들의 능력이나 관심사에 큰 차이가 있는데 짧은 시간 안에 이를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이는 조별과제에 맡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즉 일의 진행에 도움이 되는 방향은 협동보단 오히려 소수의 주도라는 것이다.
 
 대신에 교수들은 개인과제로 대체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교양학부의 한 교수는 “조별과제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불만이 있었으나 개인과제로 대체하면서 그 불만이 사라졌다”며 학생들에게 부담만 주는 조별과제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협업이 가능한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굳이 무차별적으로 조별과제를 낼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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