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하민정씨.

 

  정체성은 한국인
  국적은 대만인
  주변인에서 탈피하고파

  한국 사람 같은 얼굴. 세련된 스타일. 자연스러운 서울 말투.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처럼 보이는 남자가 자신을 대만 국적을 가진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R&D센터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던 그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왔지만 가끔 외국인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불편하다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친구들이 대만 사람이라고 하던데.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혼혈인지.
“부모님이 모두 대만 사람이기 때문에 내 안에는 대만인의 피가 흐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한국인이나 다름없다.”
-부모님이 대만에서 한국으로 온 건가.
“처음 한국에 온 것은 조부모님이었다. 나처럼 부모님도 한국에서 태어났다.”
-정확히 국적이 어떻게 되나.
“엄연히 따지자면 대만인이다. 대만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영주권을 갖고 있다.”
-영주권은 국적과 어떤 점이 다른가.
“국적은 그 나라의 국민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영주권은 해당 나라의 국민은 아니지만 거주는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생활면에선 한국인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고민도 하는지.
“사실 평소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2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아왔는데 내가 아니면 누가 한국 사람이겠나.”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나.
“비록 국적은 대만이지만 삶 자체는 한국인이라고 본다. 청국장이나 국밥 같은 토종 음식을 하도 좋아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인’같다는 농담을 듣곤 한다.(웃음)”
-국적에 관한 농담을 자주 듣는지.
“친한 친구들과는 농담을 주고받는 편이다. 그러나 웬만하면 내 국적에 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귀찮기도 하지만 대만인이라고 말하면 무엇보다 상대방이 거리감을 느낄 것 같다. 한국 사람은 태생과 출신에 예민한 부분이 있다.”
-국적을 고백해야 하는 상황이 있나.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하릴없이 국적을 밝힐 수밖에 없다. 나는 군대에 가지 않기 때문에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대화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군대를 안 간다고 말하면 처음에는 ‘신의 아들이다. 2년을 벌었다’고 부러워하지만 군대라는 관점에서 나는 철저하게 외국인일 뿐이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십중팔구 군대 경험담이다. 군대와 관련된 대화에 평생 낄 수 없으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친구들과 있으면 정체성의 혼란을 종종 느끼는지.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문득 상기시켜 줄 때가 있다. 한국과 대만이 야구 경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친구 녀석이 어느 팀을 응원하는지 진지하게 물었다.”
-뭐라고 답했나.
“당연히 한국팀을 응원한다고 대꾸했다. 대답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국적은 대만이니까 대만을 응원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불편한 점이 있는지 궁금한데.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려고 하면 외국인 주민등록번호로는 가입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번거로운 상황이 생겨 상당히 짜증이 난다.”
-대만 국적이라서 장점도 있나.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안다. 조부모님이 주로 중국어로 대화하셔서 어렸을 때 익힐 수 있었다. 요새는 한국어만 사용해서 예전만큼 중국어를 잘하지 못한다.”
-대만인 친구들은 많나.
“또래 대만인들과 거의 교류가 없는 편이다. 화교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대만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하지만 나랑은 잘 맞지 않아서 어울리기를 피했다. 오히려 한국인들과 더 잘 지내고 있다.”
-사춘기 시절에 고민도 많았겠다.
“셀 수 없을 정도다. 국적이 대만이라는 것에 불만을 갖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내 마음에 확신이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대만 국경일을 맞아 국기를 계양한 적이 있었다. 중국 대사관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계양을 저지했는데 괜스레 마음이 울컥했다.”
-본인에게 대만은 어떤 의미인가.
“어쩔 수 없는 뿌리 아니겠나. 어렸을 때는 대만이 내 모국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종종 대만으로 여행도 다녀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온 인생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은 어땠나.
“복잡 미묘하면서 동시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살 수도 있었던 나라라고 생각하니 여행이 더 뜻깊었다. 외할머니와 친척들도 뵙고 돌아왔다. 가족이지만 지금까지 3번밖에 뵙지 못한 분들이다. 대만의 가족들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낯설 법도 한 나를 기억해주시고 매번 환영해주셔서 감사했다.”
-앞으로 어디에 정착할 건가.
“한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 사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대만에는 여행으로 자주 가고 싶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귀화를 하고 직업을 얻어 한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싶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