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 기타 그리고 낭만에 취하다
  • 정석호 기자
  • 승인 2014.11.0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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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쌀한 캠퍼스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있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친구들과 함께일 땐 마냥 즐거운 그들이지만 인터뷰를 통해 만난 학생들은 사뭇 진지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잊혀진 대학생활의 낭만을 그리워하는 2명의 음악가들과 한국에서 태어난 자신을 외국인으로 만드는 국적이 야속하다는 청년을 마주했다.

 일러스트 하민정씨.


  7년을 바친 음악 동아리
  낭만 없는 후배들이 아쉬워

  밤사이 내린 비가 채 마르지 않은 고즈넉한 새벽, 아무도 없는 중앙마루에서 행인들의 발걸음을 끄는 기타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곳엔 술과 음악을 곁들여 풍류를 즐기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살짝 술에 오른 가을밤의 로맨티스트들과 이 시대의 낭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다.


-분위기가 남다르다.
A 고맙다. 하지만 이렇게 폼을 잡은 건 절대 의도해서가 아니다. 어쩌다보니 만들어진 그림일 뿐이다.
B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괜히 싱숭생숭해서 자리를 만들어봤다. 백수들의 발악이라고나 할까.
-와인과 기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데.
A 술 한 잔 걸치고 노래방을 갔다 오는 길에 헤어지기 아쉬워 자리를 잡았다.
B 음악 이야기나 나눠볼까 하고 이 친구 집에서 술과 기타를 들고 나왔다.
-원래 와인을 애호하나.
B 내 취향은 아니다. 맛이 밍숭맹숭한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A 원래는 소주를 마신다. 사실 이미 소주 5병을 흡수하고 온 상태다. 왠지 오늘이 날이다 싶어 선물로 받은 와인을 개봉하게 됐다. 기자도 앉은 김에 같이 마시자.
-음악을 하는지.
A 우리 둘 다 음악 동아리를 한다. 20살부터 시작했으니까 연차로 한 7년, 군대를 빼면 한 4~5년 됐겠다.
-상당히 오래전 아닌가.
A 고학번 축에 속해서 이제 할아버지나 다름없다. 올해 동아리에 들어온 신입생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학번일 것이다.
B 우리끼리 이렇게 노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웃음)
-앞으로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할건지.
A 음악은 취미로 즐기는 거다. 건축 회사에 취직하려고 준비 중이다.
B 음악이 아닌 법이 내 진로다. 이래봬도 고시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평소 이렇게 예술적인 취향을 발산하는 스타일인가.
A 예술적이라고 하면 부끄럽다. 그냥 놀기 좋아한다고 하면 될 것 같다.
B 요즘은 뜸하지만 음악에 한창 열중할 때는 중앙마루에서 조그만 공연을 자주 하곤 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겠다.
B 재미있을 뿐 아니라 공연을 하다가 다양한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A 기타를 치면 외국인이 그렇게 관심을 보인다. 처음에는 관심이 반가웠지만 그들과 대화하려면 자꾸 영어를 써야 하니까 부담스러웠다. 어느새 자리를 피하게 되더라.(웃음)
-기억나는 친구들이 있나.
A 한번은 자전거를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부르고 있었는데 덩치가 산만한 남학생 두 명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었다. 시끄러워서 그러나 싶어 소리를 작게 불렀다. 그런데 뜬금없이 친해지고 싶다며 말을 걸더라. 지금은 꽤 친해졌다.
B 알고 보니 음악에 관심이 있는 체육교육과 친구들이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마음이 맞아 친해졌다. 음악으로 사람을 사귀는 감회가 색달랐다.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는지.
A 버스커버스커를 좋아한다. 기타를 치면서 동시에 노래하는 포크 장르를 좋아하다 보니 딱 내 취향이었다.
B 개인적으로 피아노를 기반으로 하는 밴드를 좋아한다. 영국의 미카(MIKA)와 킨(KEANE)의 열렬한 팬이다.
-취업 준비로 동아리 활동이 뜸해질 것 같은데.
A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됐다.
B 우리야 때가 돼서 떠나는 거지만 사실 요새 동아리 문화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다.
-동아리 활동이 예전과 다른가.
A 7년 동안 지켜본 결과 가입 회원도 많이 줄었고 예전만큼 자주 공연을 열지 않는다. 해가 지날수록 동아리가 작아져 가슴이 아프다.
B 무엇보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변했다. 예전에는 대학생활의 여유를 만끽하는 낭만이 있었는데 10학번 이후부터는 경직된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열정을 찾기 어렵다.
-아무래도 요새 취직 부담이 크지 않나.
A 그래서인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려는 것 같다. 동아리 활동 도중에도 공부해야 한다며 토익 학원에 가버리니까 허탈했다.
B 물론 취업 준비와 학업도 중요하다. 하지만 놀 줄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어떤 점에서 문제인지.
A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놀 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놓치게 된다고 본다. 예전에 MBC 대학가요제에 나간 적이 있다. 죽도록 연습해서 당당히 5위를 차지했다. 그 후에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하고 라디오 방송도 출연했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경험이었다.
B 무아지경에 빠져 정신없이 즐기다보면 공부할 때보다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가장 즐겁게 놀았을 때는 언제인가.
A 2학년 때 중앙대 축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성적도 좋았거니와 잊을 수 없는 추억도 많이 쌓았다.
B 아마 그때가 우리 동아리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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