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대학 이야기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프랑스의 대학 이야기이다.
 
  대학(라틴어의 universitas)은 원래 교수와 학생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11세기 말에 생기기 시작한 대학은 1000년이 넘는 역사 동안 말 뜻 그대로 교수와 학생들이 합의하면서 운영하는 자율적 공동체의 모습을 유지하여 왔다. 대학의 지식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에 교회나 국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후원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19세기의 프랑스에서는 이런 대학이 사라졌었다.
 
  프랑스 혁명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쿠데타를 통하여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교수와 학생들의 자치로 운영되던 당시의 프랑스 대학이 강력한 프랑스 국가 체제를 위하여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여 대학 개혁을 추진한다. 그는 우선 당시 유럽의 최고 명문대였던 파리 대학을 비롯하여 프랑스 대부분의 대학을 폐쇄한다. 대학이 없어진 자리에 관료, 장교, 교사, 엔지니어 등 국가에 직접 이바지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인 그랑제콜(grandes ecoles)이 세워진다. 교수와 학생들은 국가 권력이 시키는 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다. 고등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연구와 교육은 국가 체제를 위한 것이어야 했다. 교수와 학생은 전문 직업 훈련소의 교관과 훈련생이 되어버렸다. 
 
  학문의 기본인 철학을 비롯하여 인문학 전반이 전문직 교육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되었다. 인문학은 대학에서 쫓겨났다. 대학에서 쫓겨난 인문학은 대중들을 위한 교양을 담당하는 수준으로만 유지되었다. 
19세기 초에 시작된 나폴레옹식 대학 개혁은 19세기 말까지 100 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는 내세울 만한 학문적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18세기 유럽의 계몽운동을 이끌었던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와 같은 사상가도 나올 수 없었고 18세기에 물체의 운동 원리를 발견하였던 달랑베르와 같은 과학자 역시 나올 수 없었다. 19세기 프랑스는 학문의 불모지였다. 
 
  나폴레옹식 대학 개혁이 프랑스를 위해서도 그리고 학문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무시되었다. 이런 상황이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다. 결국 100여 년의 공백이 지난 1896년 파리대학이 복원된다. 다른 대학들도 복원되거나 새로 설립되면서 프랑스에서는 정상적인 대학 체제가 다시 수립되고 학문 역시 정상적으로 복원되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난 이후에야 프랑스는 17세기의 데카르트와 같은 학문의 거장들을 20세기 후반기부터 다시 배출하기 시작한다. 알튀세, 라캉,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 현대 학문의 거장들이 바로 그들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은 개혁의 소용돌이 안에 있다. 그 개혁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는 100년이 지난 다음에나 확인이 될까? 
 
고부응 교수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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