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시절, 기자는 사춘기 이후로 부모님과 제2의 갈등을 맞이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정 12시라는 짧디 짧은 통금시간 때문이었습니다. 밤새 클럽에서 놀고 싶어서도 술을 진탕 마시고 길거리를 배회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11시 이후 친구들과의 뒤풀이가 절정에 다다른 ‘황금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서였죠.


 하지만 야속하게도 통금시간을 단 1분도 넘겨선 안 된다는 부모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전 1시간 반이라는 통학거리 덕분에 10시를 조금 넘겨서 술자리를 빠져 나와야만 했죠. 통금의 벽을 넘기 위해서 아버지와 다투는 날이 늘어만 갔습니다.
 

 신기하게도 대학보도부 정기자가 된 이후, 기자는 매주 흑석의 새벽 밤을 꿋꿋이 지키고 있습니다. 기사를 마감하는 토요일 새벽이면 기자는 어김없이 신문사에 남아 부장님과 편집장님의 승인을 기다립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 불이 환히 켜진 신문사에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가득하고 신문사 사람들 모두가 기사 마감에 여념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일찍부터 취재를 끝내놓으려고 시도해 봤습니다. 하지만 대학보도부 특성상 기사가 엎어지거나 새로운 취재가 생기는 변수들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취재원과의 인터뷰 일정도 제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는 법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목요일에서 금요일이 됐을 때 취재가 마무리되어 그제야 기사를 쓰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단단하고 아득하게만 보였던 12시의 벽이 이토록 쉽게 허물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의 노력을 인정해주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소한 일 하나에도 어리광을 부리며 징징대던 딸이 눈코 뜰 새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여간 신기했던 게 아닌가봅니다.
 

 물론 학교에 남아 기사에 투자하는 시간이 기사의 질에 비례하진 않습니다. 그동안 대학원 구조개편부터 수강신청 시스템 문제, 전공책 도난 사건까지 다양한 취재를 맡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오랜 시간 고민하더라도 항상 기사에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취재가 불가능해져 자료가 부족한 상황도 있었고 취재원의 말에 동화된 후 기사 방향을 잃어 취재한 자료들을 멍하니 바라만 본 적도 있죠. 그만큼 아직은 사안에 대한 유연함과 냉철한 판단 능력이 미숙한 초보 기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사에 대해 고민하고 취재원들과 갈등하며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들이 모여 더 나은 기자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동분서주해야겠죠.
 

 통금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황금시간은 절대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겐 또 다른 의미의 황금시간이 남았습니다. 아직은 써야 할 많은 기사가 남아있고 깨달아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 마감의 끝을 달리는 토요일 새벽, 편집국에서 보내는 이 시간은 저에게 무엇보다도 값진 황금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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