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죽음
  • 중대신문
  • 승인 2014.10.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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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기 전에는 내 글이 나를 변명하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내가 쓴 글을 읽을 때는 내 글속에 비친 내 모습이 좋은 사람이 아니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진실된 글이라고 믿으니까. 왜 갑자기 친구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건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부채감을 떨쳐내고 싶어서는 아닌지. 결국 나를 위해 쓰는 글이 아닌지. 하나부터 열까지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다짐으로 글을 시작하려한다. ‘쉽게 쓰지는 않겠다고, 아프게 쓰겠다고.’
 
  친구가 있었다. 영어를 잘하고 조금 다혈질이고 아주 친하다고 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누군가 친하냐고 물어봤을 때 “아니”라고 대답하면 서로가 서운할,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원을 다닌, 그렇지만 같은 고등학교에는 갈 수 없었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영어 학원을 마치고 그 친구와 학원 버스를 타고 가던 날이, 조금의 슬픔도 느낄 수 없었던 친구의 표정이 기억나는, 내 평생의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반갑지 않은 토요일이었다. 그날이었다. 월요일에 보자는 마지막 말을 한 그날이었다. 몇 시간 뒤 몇 층의 집에서 새처럼 날아간 내 친구. 
 
 그날 그렇게 집에 보내지 않았으면, PC방이라도 가자고 했으면, 밥이라도 사준다고 했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를 그 죽음을 평생의 업보로 짊어지기로 한 그날이었다. 절대 잊지 않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친구가 몇 없어서 기억이 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고향 친구들을 만나면 난 항상 그 친구 이야기를 했다. 술자리가 숙연해지던지 말던지 입에 올렸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곤 했다.
 
  지난 겨울이었다. 그 친구와 가장 친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된 날이. 창가 쪽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나를 보고 술집으로 들어와 반갑게 인사하던, 다 잊은 것 같았던 그 친구를 보면서 내가 짊어진 그 부채감을 조금 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속물처럼 위안을 느낀 그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텨내지 못했을 반가운 친구를 보고 부채감을 먼저 떠올린 내가 싫어서 그날 술을 참 많이 마셨다.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순간들이 이렇듯 찾아오곤 한다. 그리고 나의 친구처럼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잊어야 할 순간들도 찾아온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 역시 그 친구를 마음속에서 비워주어야 할 그런 날도 언젠가는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각자의 슬픔의 크기뿐만 아니라 그 슬픔이 잊혀지고 이겨내는 시간조차도 다르다는 것이다. 먼저 잊은 친구에게 ‘너는 어떻게 벌써 잊었냐’고 비난할 수 없듯이 먼저 잊은 친구가 ‘너는 왜 아직도 그 일을 품고 사냐고’ 나를 비난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잊으라고 강요한다. 10년을 친구로 지내지 못한 사람을 보내는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하물며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을 잊으라고 이제 그만하라고 비난하는 우리 사회에 가끔은 심줄이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 그만하라고 비난하는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백번 양보해서 그 주장들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잊으라는 강요나 질타를 할 자격이 우리에겐 없다. 

  중간고사를 핑계로 도서관만 지키던 나는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나서야 단원고 합동분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늘도 흐렸으며 나 따위가 쉽게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의 슬픔이 가득찬 분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고 나는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같은 말만 되내일 뿐이었다. ‘늦게 와서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우리들의 눈물이 억울한 삶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그 수많은 사람들이 흘려주던 눈물이.’ 불과 100일이 채 지나지 않아 그만하라며 자신의 부모를 벌레라고 비난하는 그들을 보면서 170일 전 출발한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그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김지웅 학생

경영학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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