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인문학 공동체
함께 숨쉬며 고민을 나눈다

인문학 공부에는 휴일도 없다
사회와 소통하는 인문학 동아리
 
▲ 에피는 누구나 쉽게 찾아가 강연을 듣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최원종 기자
 
  최근 한 초등학교 운동회의 달리기 사진이 화제가 됐다. 사진 속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은 모두 손을 잡고 나란히 결승선을 향한다. 언뜻 보면 의아한 광경이다. 0.1초라도 남들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경주의 목적 아닌가.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경쟁의 섭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몸이 불편한 한 아이를 배려해 함께 달린다. 결과는? 한 명의 패배자도 낙오자도 없이 모두가 1등이다. 
 
  이 아름다운 사례 속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타인을 경쟁의 상대로 인식하고 1등만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선택한다. 반면 아이들은 내 옆에 있는 타인을 친구로 인식해 모두가 승리하는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삶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하는 인문학의 근본적 물음은 실제로 구름 위가 아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실재했다.
 
  아타락시아를 추구하는 인문학 정원
  하지만 인문학을 접해볼 기회가 없던 개인이 일상 속에서 이러한 인문학적 통찰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도움을 주고자 2011년 누구나 차별 없이 공부하고 삶을 고민할 수 있는 인문학 공동체, ‘에피쿠로스’가 만들어졌다. 에피쿠로스 곽원효 대표는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계를 꿈꿨다”며 “그런 사회를 만들고 인문학을 삶에서 실천하자는 생각으로 인문학 공동체인 에피쿠로스를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존재자와 존재의 개념은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두 눈을 빛낸다. 소규모 강의실에 둘러앉아 진행되는 『철학vs철학』(그린비 펴냄) 강독 수업. 강독은 강연자가 바로 옆에서 같이 호흡하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이때, 실내를 배회하던 강아지도 강의실에 들어와 참가자의 품에 안겨 수업을 경청한다.
 
  수업에 따로 정해진 룰도 없다. 삶의 고민을 털어놓고 공유하며 인문학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유일한 룰이라면 룰. 때로는 질문과 토론으로, 때로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상담으로 수업시간을 채운다. “이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 “저라면 이렇게 행동할 것 같아요.”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격의 없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다. 곽원효 대표는 “수업을 소규모로 진행하다 보니 시간 활용이 자유롭죠”라며 “한번은 질문에 답하는데 강의 시간을 전부 쓴 적도 있어요”하고 웃는다. 
 
  강독에 참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책과 열정, 그리고 음료 및 공간 이용료 5천 원이 전부다. 수업 중에는 떡, 과자, 음료 등 다양한 간식이 제공된다. 이처럼 강독 참가비가 저렴한 이유는 곽원효 대표가 직접 강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곽원효 대표는 “에피쿠로스는 순수하게 인문학을 공부하는 모임이니까 당연히 참가비가 저렴해야 한다”며 “외부 강사를 초빙하는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참가비가 올라가지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저렴하게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신념을 밝혔다.
 
  에피쿠로스의 활동공간인 ‘에피’에서는 각종 인문학 강좌, 북콘서트, 독서토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특히 북콘서트는 에피쿠로스의 공동대표이자 가수인 정현 대표가 직접 진행하며 중간중간 공연을 해 관객들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정현 대표는 “인문학의 ‘人’자는 사람이 두 발로 꿋꿋이 서 있는 모습”이라며 “인문학을 통해 사람들이 당당하게 서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독(古讀)하고 있는 대학생들  
  “여러분들은 욕망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생각하는 욕망이란…” 일요일의 고요한 대학교 강의실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인문학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연합동아리 ‘고독인’이다. 고독인은 고전을 독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으로 2012년 9월 1기로 시작해 현재는 5기가 활동하고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대학생들은 그들에게 익숙한 동아리라는 형태로 인문학 공동체를 구성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던가. 고전을 붙잡고 혼자서 끙끙대기보다는 함께 토론하며 답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 고독인의 문을 두드렸다. 고독인 신강우 학생(신문방송학부 3)은 “혼자 책을 읽고 정리하다 보니 한계가 있더라”며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류하고 싶어 고독인을 찾았다”고 말했다. 고독인 임철수 학생(UNIST 기계공학 트랙 2) 또한 “혼자 읽다 보면 내가 맞게 읽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며 이에 동의했다.
 
  고독인은 한 기수마다 6개월간의 활동기간을 두고 2주마다 한 권씩 인문학 고전을 독파해 나간다. 또한 선정된 고전에서 주제를 정해 매주 일요일 토론을 벌인다. 신강우 학생은 고독인의 토론방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토론해요. 그러다 보니 혼자서는 보지 못하던 시각으로 고전을 바라볼 수 있죠.” 
 
  인문학 고전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한다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임철수 학생은 고독인은 초보자가 접근하기에도 무리가 없는 단체라고 말한다. “공대생인 저도 고독인에 가입하기 전까진 인문학 고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노력을 조금만 기울이면 얼마든지 적응하고 공부할 수 있죠.” 실제로 고독인 지원자 중에는 인문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려는 초보자들이 많다. 신강우 학생은 “선발할 때도 인문학에 능통한지보다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지, 지속적으로 참여할 열정이 있는지를 주로 봐요”라며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함께 공부한 것을 토대로 사회에 봉사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고독인은 현재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하는 ‘함성소리’란 프로그램을 통해 매주 토요일마다 중학생들에게 인문학 고전을 소개하고 이야기 나누는 교육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랑, 행복, 꿈 등의 주제를 아이들에게 소개해 줄 예정이에요.” 신강우 학생의 밝은 목소리에서 인문학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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