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烈風)’.  말 그대로 뜨거운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한류 열풍’, ‘SNS 열풍’, ‘몸짱 열풍’ 등 매우 세차게 일어나는 기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죠. 바람이 휙- 불고 가버리듯, 지금의 뜨거운 열기가 언젠가는 식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인문학 열풍도 언젠가는 ‘한 때의 바람’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온기를 오래도록 품어야 한다는 것이죠. 서서히 꺼져가는 불씨를 호호 불고, 부채질을 살살 하면서 인문학의 불빛을 모든 곳에서 밝힐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인문학 3주차, 불씨를 지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난 3일 홍대의 한 카페에서‘민들레 예술문학상’의 국민시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가수 하림의 기타소리가 콘서트를 채우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냄비의 열기는 언제 식을지 몰라
인문학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소비자보다는 생산자가 돼야
경험 넓힐 인문학적 환경 필요
 
 
“누구나 그렇듯,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죠. 노숙인들은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움직일 마음의 힘이 부족해요. 문학과 예술이 밥 먹는 문제를 해결해줄 순 없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죠.”
  지난 3일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노숙인을 위한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행사를 담당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부 정대훈 차장은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빵’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는 보통의 후원 행사와 달리, 이날 열린 토크콘서트는 노숙인들의 시, 소설 작품을 시상하는 ‘민들레 예술문학상’의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민들레 예술문학상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예술나무가 진행하고 있는 노숙인 자활 지원 프로젝트로서,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연을 열고 이를 바탕으로 노숙인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써 표현하도록 돕고 있다.
 
  정대훈 차장은 “이들에게 인문학은 잃어버린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이러한 과정은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성찰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설령 빵이, 돈이, 잠자리가 더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인문학적 고민이 무엇보다 절실한 이유다. 노숙인에게도 그렇듯,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의 기본물음은 자칫 차선의 문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남녀노소, 지위여하를 막론한 모두의 문제다.
 
  현 지점에서 열풍처럼 떠오른 인문학의 역할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의 인문학 열풍이 과연 ‘모두’에게 해당되고 있는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전문가들은 비관적인 관측을 내어놓았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더좋은책)의 저자 주현성 작가는 “열풍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며 “지금은 냄비가 팔팔 끓고 있지만 이 열기가 언제 식을 지 모른다”고 말했다. 
 
  인문학 열풍에 대한 진단은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모두를 위한 인문학을 위해서 ‘지금 이대로는 옳지 않다’는 것에 입을 모았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건 어쩌면 한순간. 대중 인문학의 열기를 지속시키기 위한 방안들이 강구돼야 할 시점이다.  
 
 
 
  김연아보다는 소녀시대를 볼 때처럼
『인문학으로 스펙하라』(티핑포인트)의 저자 인문경영연구소 신동기 대표는 현재 인문학의 모습을 대중스타에 비유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의 대중 인문학은 김연아를 보고 열광하는 행태와 비슷하다. 즉, 강연자의 얘기를 듣고, 놀라고, 경외를 느끼지만 그저 그뿐이다. “일시적이고 수동적인 인문학 소비행태는 지양돼야 해요. 아무런 변화나 실천 없이 하나의 볼거리로 그친다면 인문학은 한 때의 바람으로 끝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이 불씨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살리느냐의 문제다. 신동기 대표는 김연아식 인문학이 아닌 소녀시대식 인문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소녀시대를 보면서 따라하는 것처럼 인문학 역시 직접 경험해 보고 내 것으로 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즉 단순한 소비나 가십거리가 아닌 적극적인 체화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진행되는 다수의 인문학 프로그램들이 단발적인 행사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계간<문화/과학>의 편집위원인 최철웅 박사는 “대중들이 인문학을 받아들이는 데 여전히 거리낌이 있기에 주최 측은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행사 형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짧은 호흡의 인문학 강연들을 통해서는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보고 열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보다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적 경험을 지속시켜가야 한다고  말한다. 
 
 
 
  박지성보단 조기축구회가 돼야 한다
  축구로 비유하자면, 박지성 선수의 경기를 보는 것과 직접 축구를 해 보는 것은 그 경험의 수준부터 다르다는 것. 인문학은 결국 ‘내’가 공을 차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까운 동네에 누구나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잔디밭이 깔리는 게 중요하다. 
 
  인문학 열풍에 대해 심광현 교수(한예종 영상이론과)는 현재 우리 사회에 잔디밭을 만들어주는 시스템이 미비하다 지적했다. 그는 “철학은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질문을 던지는 학문인데 지금은 인기강사의 마이크만 향해 있다”며 “대학의 비정규직 강사를 포함해 다양한 전문가들이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기강사만 조명을 받다보면 나머지 생태계가 위축되고 머지않아 열풍도 끝나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누구에게나 스며들 수 있도록 인문학 열풍이 더 폭넓게, 더 오래, 더 깊이 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최철웅 박사는 “대중들이 인문학을 접하고 참여하는 것은 좋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을 계기로 심화된 공부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생적인 인문학 모임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들이 인문학적 사유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열풍으로 발아된 씨앗이 제대로 움트기 위해서 필요한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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