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모피코트'

주가 폭락, 환율 급상승, 취업 대란 등 매일 아침 주파수를 타고 나오는 TV,
라디오 뉴스와 각 일간지는 경제위기를 알리는 기사로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환율 급등으로 외환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는 가운데서도 `환치기' 수법으
로 거액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해외 원정 도박을 벌인 유흥업소 대표가 무더
기로 검찰에 적발되었다. 또한, 모백화점의 몇천만원하는 보석품과 모피코트
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한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둘러싼 논의는 분분하다. 위기의 여부는 일단 제쳐놓
고 불과 2년 전 경기과열이 우려되던 때와 비교해 보더라도 사회경제적 분위
기가 급변한 것만은 사실이다.그래서인지 몰라도 현재 한국경제가 위기상황
에 처해 있는지에서부터 무엇이 한국경제의 문제인지, 나아가서는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가닥조차 제대로 잡
히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 동안 이에 대한 논의와 주장들을 보면 하나같이 `자기중심적'이라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먼저, 정부는 "어려운 것은 사실이되 위기는 아니
다"라며 `모범답안'(?)같은 말을 하지만 결국은 책임회피를 위한 `정치적인' 답
을 제시한다.

재계, 특히 재벌집단의 상황인식과 대응은 현상황을 위기로 파악하고 한편으
로는 `자본파업'의 위협을 통하여 정부로 하여금 특단의 조치를 취하도록 강력
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편, 노동계는 수세적 입장에서 위기론을 애써 부인하고 있다. 위기론의 `의
도적' 증폭이 사회 전반의 보수화를 부추기고 노동부문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
질 것을 우려해 위기론의 반박에 골몰하는 한편, 구조개혁을 통한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개선을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기를 부인하면서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이들은 상황인식과 대응 사이에 괴리
를 보이며 수세적 처지에 몰린 나머지 구조개혁의 내용과 범위에 있어서 자기
방어적 발상을 크게 넘어서고 있지않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현상황에서 이러
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할 뿐이다.

한국경제를 보고 있으면, 취업자들은 오히려 더 가난해지고 불행해진다는 `노
동의 종말' 저자 리프킨의 지적이 정확한 것 같다. 그동안 정부는 농민, 노동자,
도시빈민, 장애자 등 경제적 약자를 정책적으로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복지요구에 대해 최근까지도 정치적 억압으로 대응해왔고 사회복지는 개선될
여지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지금 한국경제는 물가상승과 금리폭락, 주가폭락
에 더불어 고용대폭감소와 임금동결 또는 오히려 하락은 성실히 살아가고자
하는 서민들을 더욱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만 가고 있다.

한국경제 위기를 주도한 부유층들은 `경제위기'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사치와
과소비를 서슴치 않고 있다.

결국, `경제위기'의 책임을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떠안기면서도 꿀먹은 벙어리
행세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경제는 확실히`위기'다.이제
정부는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를 극복하자는 해묵은 호소는 더이
상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경제위기를 부추기는 과소비 억제, 책
임지는 풍토 등이 조성되지 않는 한 `동참'에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결자해지
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권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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