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어 시작한 나비 수집

시들했던 인생으로 날아와 꽃을 피우다

  서울캠 중앙도서관 1층을 지나다 보면 나비로 수놓아진 CAU라는 글자를 마주치게 된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조윤호 교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국내에서 많아야 서른 명 즈음 되는 나비 수집가 중 한 명이다. 공학도인 그가 보기 드문 취미를 가지게 된 까닭이 궁금했다.
 
 
  조윤호 교수의 연구실, 한쪽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서랍장을 하나씩 열자 추억을 머금은 나비들이 끌려 나온다. 유리판 아래로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나비들은 모양도, 색도 모두 달랐다. 한국에 있는 약 200여종의 나비들은 물론이거니와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남방계 나비들도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제각기 고향은 다르지만 3000점의 나비는 그렇게 함께 모였다.
 
나비를 잊고 살다
  그가 나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때는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생물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는 생물반에 가입했죠. 파충부, 조류부 등 많은 부서 중에서도 나비의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껴 나비부에 들었습니다.” 그의 고등학교 시절은 나비부 써클활동으로 채워졌다. 평소에는 벽제나 천마산 등 가까운 곳으로 나비를 채집하러 갔지만 방학이 오면 장기채집을 위해 남해안으로 멀리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그가 가르치고 있는 전공은 어릴 적 꿈과 꽤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제가 토목과에 진학하게 된 것은 정말 단순한 이유에서였어요. 대학교를 진학할 당시엔 생물교육과가 있는 대학을 두 곳밖에 알지 못했는데 한 곳은 성적이 너무 높았고, 한 곳은 너무 멀었죠.” 그러자 그의 선생님은 생물과 비슷한 전공이라며 토목과를 추천해줬다고 한다. “제 전공이 환경을 덜 파괴하는 쪽으로 개발하는 학문이라는 건 대학에 들어와서 알았죠.” 
 
  한동안 방황하던 그는 다른 학교로 편입도 준비해봤다. 그러던 중에 만난 교육학은 그의 방황을 멈추게 했다. “교생실습까지 나가면서 결국 토목학 관련 선생님의 꿈을 갖게 됐어요.” 그렇게 교수직을 얻고 안정된 생활을 해나가던 그는 문득 삶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밋밋한 삶에 날개를 붙이다
 
  조윤호 교수는 지난날을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생각의 끝에 고등학생 때 제가 정말로 좋아했던 나비를 되찾았어요.” 오롯이 즐거움만을 가져다주는 일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윤택해지기 마련이다. 그는 나비 덕분에 자칫 무의미하게 흘러갈 뻔 했던 그의 중년을 한층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진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물음엔 취미는 취미로만 남겨둔 것이 잘 된 선택이었다고 답했다. “나비와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힘이 들까요. 나비가 돈으로 보이는 거잖아요.” 
 
우리나라 나비의 역사를 찾아서
 
  나비를 채집하기 전에는 나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파악해야한다. “나비마다 피크 때가 있어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침에 날지 않고 있다가 저녁이 되면 산 정상으로 올라가기도 하고요.” 나비를 잡기 위해서는 시간과 때가 중요하다. “우리나라 1급 보호종인 산꼬리부전나비는 6월 초에 저녁 4~5시에 가야 잡을 수 있어요. 녹색부전나비는 새벽 일찍 5시쯤 가야 볼 수 있죠. 성실함과 부지런함은 필수입니다.”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떠나더라도 운이 따라줘야 나비채집에 성공할 수 있다. “1박 2일 일정이면 갈 수 있는 몽골의 홉스콜이라는 호수가 있어요. 그런데 가이드가 길을 잘못 들어버렸죠.” 결국 드넓은 몽골의 한복판에서 밤을 꼬박 새워 비박을 해야 했다. 게다가 2박 3일의 일정을 보내면서도 그가 원하던 나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비박하면서 바라봤던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은 잊을 수 없어요. 비록 허탈한 일도 많지만 그 자체에 만족해야죠. 또 이런 일에서 인생을 배웁니다.(웃음) 간절히 원하던 것이라도 놓칠 때가 있는 법이죠.” 
 
  그는 책꽂이에 있던 책 한 권을 가져와 펼쳤다. 몽골나비도감이었다. 조윤호 교수는 몽골나비를 깊게 연구한 후에 그로부터 우리나라 나비 역사를 파헤치고 싶다고 전했다. “특히 몽골나비에 관심이 많아요. 몽골로부터 중국, 북한, 한국에 이르는 나비들의 유전학적 변이를 연구하면 북방계통 나비의 변천사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아버지가 보내준 선물
 
  그는 오로지 나비를 위한 해외 원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화려한 날개를 지닌 남방계 나비들을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지에서 직접 채집해 오기도 했다. 어렵사리 수집한 수많은 나비들 중에서도 그의 마음속으로 깃든 나비는 따로 있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단아한 황토빛깔 날개를 지닌 자그마한 나비가 있었다. 다른 나비들에 비해 더 아름답지도, 독특하지도 않았다. 
 
  그 나비의 이름은 ‘다목부전나비’. “아버지의 선물과 같아요.” 그는 강원도 인제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들렸다가 우연히 이 나비를 발견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발견될 만큼 희귀했던 나비였기에 그 날갯짓이 유독 반가웠다. 그는 나비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다목부전나비의 최대 개체지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는 지금도 나비를 보기 위해, 아버지를 보기 위해 인제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하여
 
  조윤호 교수는 처음 나비를 수집했던 이유에 대해 ‘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어서’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이유가 생겼다고 한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채집했던 나비들이 이젠 더 이상 그곳에 살지 않아요. 가장 큰 원인은 ‘식, 주’의 변화죠.” 한 예로 우리나라의 1급 보호종인 붉은점모시나비는 나무가 없는 곳에서 자라는 ‘기린초’라는 풀이 주식이다. 하지만 산림녹화를 위해 나무를 심다보니 기린초가 자취를 감췄고 나비 역시 사라지게 되었다. 
 
  그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어떠한 임무를 남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집한 나비들을 학교에 기증하거나 박물관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해서 사라져가는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과 경각심을 갖게 만들고 싶습니다.”
 
나비는 이렇게 수집합니다
 
  우리나라는 대개 5월과 6월이 ‘나비철’이다. 각 나비마다 서식지가 다르고 활동하는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패턴에 맞춰 채집을 떠나면 된다. 
 
  나비를 발견하면 촘촘하고 큰 포충망을 들고 접근한다. 가까이 다가가 그 주변을  감싼 후 앉아있는 나비를 잡는다. 그리곤 나비의 심부를 살짝 눌러준다. 우리는 나비보다 몇십 배 큰 몸집을 갖고 있기에 아주 살짝만 눌러줘도 나비는 기절하게 된다. 그 후 날개가 상하지 않게 한 마리씩 조심스레 비닐에 넣는다.
 
  채집이 끝난 후 비닐에 싸 온 나비들을 가져와 냉장보관을 한다. 그 후 틈이 날 때마다 나비들을 한 마리씩 피는 작업을 해나간다. 박제시키는 것인데, 날개가 대칭으로 아름답게 펼쳐지게 만들어 핀셋으로 중심부를 꽂으면 된다. 조심스레 날개를 펴주는 작업이 끝난 후 이틀 정도 그늘에서 말리면 박제가 완성된다. 
 
  하지만 그 상태로 둔다면 표본이 완성됐다고 볼 수 없다. 나비 수집은 마지막까지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작은 종이에 각 나비에 맞는 분류를 써주는 작업도 필수다. 나비들의 명칭, 번호와 장소, 채집지와 같은 정보를 기록해 나비 옆에 붙이면 비로소 수집의 전 과정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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