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뚜껑 없는 박물관

6.25전쟁 통에 서서 잔술을 후루룩 먹어치우는 문화가 생겨난 후 63년 동안 그대로 지켜져 온 집이 있다. 연남서서갈비는 처음엔 대폿집으로 시작됐으나 이제는 서서갈비라는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전국적으로 서서갈비를 내걸고 나온 가게가 200곳이 넘지만 그들의 원조는 다름 아닌 신촌에 있었다. 이 집에선 서서 소갈비를 연탄불에 구워 먹는다. 
 
맛도 먹는 법도 색다른 갈비계의 대명사 서서갈비

추종자들의 사칭에도 63년을 고고하게 지켜왔다
 
  간장 양념이 살짝 밴 갈비를 연탄불에 구워 먹는다, 서서. 갈비계의 대명사로 굳어진 서서갈비를 먹는 방법이다. 손님들은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테이블에 둘러 서서 갈비가 익기만을 기다린다. 편히 앉아서 담소를 나눌 수도 없어 애피타이저로 나온 고추만 오물거릴 뿐이다. 신촌에서 6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남서서갈비의 연탄불들은 몇 십 년째 꺼지지도 않고 있다.
 
▲ 개업시간인 12시부터 손님들이 몰려와 가게 안은 북새통이다.
 
  연남서서갈비가 문을 연 건 6.25전쟁이 끝나기 전 어느해 겨울이었다. 연남서서갈비의 2대 사장인 이대현 대표가 10살 무렵, 그땐 지금처럼 갈비집이 아니라 소주나 막걸리를 잔술로 팔던 대폿집이었다. 왕소금구이나 간단한 튀김 안주를 팔았다. 전란의 시기에 노동자들은 진득이 앉아서 먹을 시간이 없어 서서 먹었다. “실은 아직도 저는 대폿집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소갈비를 팔고 있지만.” 이대현 대표는 고희를 넘긴 연세에도 이른 아침 가게로 출근해 늘 그래왔듯 손수 영업 준비를 한다. 매일 700인분 내외의 갈비를 준비하고 연탄을 정리한다.
 
  서서먹는 것도 이색적인데 갈비 맛도 남다르다. 두루마리 모양의 갈비는 손님상에 오르기 2~3시간 전부터 간장에 몸을 담근다. “다른 음식점에서나 어머니들은 하루 정도 갈비를 양념에 재워 두는데 우리는 이렇게 해요.” 겉은 살짝 양념이 뱄지만 속은 양념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빨간 생고기 그대로다. 소고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대현 대표가 고집하는 방법이다.
 
▲ 양념된 소갈비가 맛있는 연기를 내며 연탄불에 익고 있다.
 
  갈비를 구울 때 연탄불 위로 얇게 썬 마늘과 파 등이 한데 섞인 간장 종지도 함께 올라간다. 이윽고 갈비가 불맛을 한껏 입으면 갈비를 익은 마늘과 함께 먹는 것이다. 연남서서갈비에선 다들 이렇게 먹는다.
 
  특이한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남서서갈비엔 상추는커녕 김치나 밥, 된장찌개도 없다. 오직 갈비에만 주력하고 있다. 애피타이저용 고추와 고추장, 간장이 전부다. 정말 김치와 밥이 먹고 싶다면 가게 바로 옆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사와서 먹어도 된다. 어떤 가족은 아예 밥과 김치를 통에 싸와서 펼쳐 놓고 먹고 있었다. 동호회 회식에서 이곳에 처음 왔었다는 한 남성은 가족을 데리고 다시 찾았다. “전에 간혹 김치와 밥을 싸오는 사람을 봤는데 오늘은 저도 한번 싸와봤어요.”
 
  연남서서갈비의 영업시간은 점심 12시부터다. 얼마 되지 않아 손님들이 가게 안으로 꽉 들어찼고 줄까지 길게 늘어섰다. 서서먹는 덕분에 줄은 빨리 빠지는 편이다. 
 
  연남서서갈비가 63년을 버텨오면서 가게와 세월을 같이 한 단골손님도 있을 테지만 그들은 줄을 기다리는 것을 싫어해 이젠 잘 오지 않는다. 대신 자식 세대들에게 연남서서갈비를 ‘상속’했다. 젊은 자식 세대들은 기꺼이 줄을 서서 갈비 한 대 뜯고 간다. 마침 2세대를 아우른 가족이 가게로 들어온다. 백발의 사내는 “이 가게를 40년 동안 다녔는데 맛있으니까 계속 오게 되네요. 오늘은 아들 생일이라 아들 내외랑 같이 왔어요”라고 말했다.
 
  준비된 갈비가 다 팔리면 다음날의 장사를 위해 과감히 문을 닫는다. 저녁 8시면 모두 팔린다. “제가 한창 사춘기 때부터 가게 일을 했단 말이죠. 그 시절 술을 먹고 진상을 피우는 남자들에 대해 인상이 좋지 않았어요. 지금도 밤늦게 까지 술은 안 팔려고요.” 
 
▲ 연남서서갈비는 신촌 대로변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 위치해 있다.
  가게 한켠엔 ‘연남서서갈비는 분점 및 프랜차이즈를 운영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연남서서갈비를 찾아 가는 길목에만 해도 서서갈비 간판을 내건 음식점이 있지만 이는 연남서서갈비와는 상관없는 곳이란다. “가게 문을 왜 이렇게 일찍 닫냐는 손님을 옆 서서갈비집으로 안내했더니 도리어 맛없는 집을 소개했다며 성을 내더라고요.”
 
  서서갈비라는 이름을 내건 집은 전국적으로 200개 정도 있다고 한다. 서서갈비는 한국 안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가게 안은 한국 손님 반에 일본이나 중국, 홍콩 등 외국손님이 반이다. 이대현 대표는 “얼마 전엔 영국 방송 BBC에서도 찍어 갔어요. 연말 특집으로 나온대요”라며 자랑한다. 그는 매번 1년만 더 하고 그만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방송국 관계자들이 찾아와 촬영해야 된다며 없애지 말라고 하니 가게를 그만 둘 수가 없다.
 
  연남서서갈비를 이을 3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에 이대현 대표는 서서갈비를 일반화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일부러 서서갈비의 상표특허를 내지 않았다. 1대 사장인 아버지 이성칠 대표도 절실히 동감하는 바였다. 앞으로 부자의 염원대로 연남서서갈비는 서서먹는 갈비의 대명사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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