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앞에 ‘극성엄마’된 사회

진짜 인문학은 남아나질 않고 있어

점점 맛있어 지는 인문학 레시피
본연의 ‘쓴’ 맛은 잃고 있다
 
 
▲ 자기계발서, 힐링 열풍을 잇는 현재 출판계 트렌드는 '인문학'이다. 사진 안지연 기자
 
“꿈은 이루고 봐라.” 철학박사 강신주가 강연 중 이 시대 청년들에게 던진 멘트다.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의 말이 마치 정답이라도 되듯 고개를 끄덕이며 강연을 듣는다. 그렇지만 애당초 인문학은 의문을 제기하며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학문이었다. 고대 소크라테스가 문답식 대화를 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고대나 지금이나 같은 인문학이지만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국가와 기업은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고 언론에서는 스타 인문학자들이 뜨고 있으며 시장에서도 인문학 도서들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고 있다. 기업과 국가, 언론, 출판시장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인문학 바람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 탓에 사회는 인문학 바람에 이는 먼지에 콜록대고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인문학 벼락치기 중 
  올해 8월에 대학을 졸업한 김주일씨(가명)는 취직준비를 목표로 취업스터디를 만들었다.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추세에 맞게 인문학 서적을 읽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면접관 앞에 설 본인의 모습을 생각하니 방금 읽었던 그 문장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입사시험을 위한 인문학 서적은 꼼꼼히 읽어야 하는 교과서 같은 존재에요. 면접관이 질문할 것을 대비해 밑줄까지 그으면서 외우고 있죠.”
 
  기업에서 더 이상의 가치창출이 불가해지자 창의성의 근원을 인문학에서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업은 인문학 자체가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할 뿐이다. 비판적인 인문학자들은 기업이 단기성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인문학을 수단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성만 교수(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는 “인문학은 본래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학문”이라며 “기업이 인문학의 본성을 무시한 채 창의성의 수단으로만 보고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자 인문학과는 거리가 먼 공대학생들에까지 먼지 바람이 불었다. 김솔아 학생(전기전자공학부 4)은 역사를 공부하고 있지만 기업의 인문학적 소양 평가방식에 의심이 든다. “기업에서 사람들을 뽑을 때 비슷비슷하니까 누구 하나 걸러보자는 식으로 인문학 문항을 추가하는 것 같아요.” 
 
  대중보다 더 인문학에 열성인 기업과 국가
  기업과 함께 국가에서도 ‘문화융성’의 근간을 인문학으로 설정하는 등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인문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주도로 이루어지는 ‘위로부터의 압박’이라는 것이다. 계간<문화/과학>의 편집위원인 최철웅 박사는 “국가의 창조경제 정책은 정권 차원에서 인문학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현재 대중 인문학은 그 갈피가 모호하다. 최성만 교수는 “현재 구체적인 방향 제시 없이 국가와 기업에서 인문학이라는 언어만을 운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의 문화융성이 추구해야 할 결과물로 아이폰을 지목하는 발상부터 인문학의 가능성을 과소평가 한 것이라며 전문가들은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임태훈 문학평론가는 “아이폰과 같은 혁신적인 상품을 만드는 것은 인문학의 부차적인 효과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가벼운 인문학은 몸에 해롭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했던가. 그런 말이라면 인문학은 일종의 ‘쓴’ 학문이다. 즉, 인문학 공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인문학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심오하고 어려운 내용은 버리고 달고 맛있는 형태로 변했다. 때로는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의 형태로, 때로는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의 형태로 인문학은 대중들의 욕구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심광현 교수(한예종 영상이론과)는 이에 대해 “현재 인문학 열풍은 2008년의 자기계발과 2009년의 힐링열풍의 뒤를 잇는 하나의 트렌드로 전락한 것”이라 분석했다. 고전읽기가 유행하는 이유도 ‘수신제가(修身齊家)’라는 논리가 자기계발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갔지만 전혀 그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대중 인문학 강연은 기업과 방송국이 주최하는 대규모 강연으로서 지명도가 높은 베스트셀러 작가들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심광현 교수는 “한 명사가 수천명의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 봤자 그 사람이 진정한 나를 대변해 줄 수 없다”며 “이런 식의 인문학은 획일화의 문제를 떠안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능동적으로 질문하고 토론을 하며 깨달아야 하는 인문학의 본질이 떠먹여주기 식의 오락거리로 변질되고 있었다.
 
  이윤창출이 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은 사고 팔리는 ‘소비재’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그들은 현재 대중 인문학은 대중들에게 결코 이롭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의 대중 인문학은 힐링과 자기계발과 맞물려 본연의 비판적인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권경우 문화평론가는 “인문학은 손톱 밑의 가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인문학은 문제제기와 같은 본래의 역할을 상실한 채 하나의 상품으로 구매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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