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존재 이유 혹은 기능은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취업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을 제대로 취업시키지 못하는 대학은 그만큼 존재할 이유가 줄어든다. 하지만 어떤 취업이냐가 문제다. 대학의 참된 역할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대학은 대학 평가도 높고 취업률도 높지만 반드시 이 둘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취업률의 허와 실이 있다.

  어제 공인노무사 1차 시험에 합격한 학생을 만났다. 졸업논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 찾아온 것이었다. 이제 그는 2차 시험과 졸업논문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위한 마지막 관문을 남겨두고 있다. 앞으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자격증을 따서 사회생활을 하며 일정 수준의 수입도 생기게 될 것이다. 십중팔구 결혼도 하고 가족도 만들 것이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기회로써 대학이라는 제도를 선택했으며 이제 첫 결실을 거두기를 고대하고 있다.

  만일 이 학생처럼 앞으로 대학 진학, 진로 선택, 좋은 직업의 삼박자가 결실을 거둔다면,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은 얼마나 될까? 치열한 취업 경쟁까지 겹쳐 이제는 어디든 취업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실정을 감안하면 그 수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맹목적인 대학 진학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이 꿈꾸는 삶이 무엇인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채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게다가 단지 사회적 및 경제적 가치가 높다는 이유 때문에 특정 학과에 진학한 학생들까지 감안하면 실제로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대학은 학생들의 진로 선택과 취업 문제를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 취업을 위한 취업, 혹은 단지 생존만을 위한 취업은 훗날 후회와 좌절감을 갖게 할 공산이 크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진지한 인생 설계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하면 대학의 존재 이유와 소명은 더욱 막중해진다. 대학은 교육과 공부를 통해서 모든 학생들에게 더 늦지 않게 자신의 삶과 꿈을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나아가 필요하다면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을 발견하고, 이에 알맞은 새로운 직업도 창조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야 하며, 종국에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대학은 시험만 잘 치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학생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또한 열심히 일해서 얻는 일정 수준의 소득을 위해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곳도 아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다만 너무 늦지 않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늦으면 다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만큼 좋은 공간도 없다. 대학은 그러한 가능성의 보고이어야 한다.

맹주만 교수

철학과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