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5년 동안 대기업의 트렌디한 광고 분야에서 일 한 경험이 있다. 늘 새로운 유행, 문화의 흐름, 첨단 매스미디어를 접하며 일해 왔지만 소통은 유행을 따라 잡기보다 진심에서 더 감동한다는 것을 배웠다.

  학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다 보니 이런 저런 자리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다. 어느 날 “노트필기를 잘 안하던데…”라고 말하자 한 학생이 “선생님,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봐요”라고 대답한다. 우리 공부할 때는 교수님 말씀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노트에 적었는데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옛날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이기가 주는 편리함과 문명의 정신들이 주는 질서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면 제일 많이 나오는 고민이 취업문제인 것 같다. “선생님 때도 취업이 어려웠어요? 고민이에요.” 이런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5년 후 모두 취업해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노력해”라고.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의 고민에 빠져 있다 보니 미래의 확신은 잘 보이지 않는다. 걱정과 근심은 정말 불필요한 단어고 국어사전에서 추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근심과 걱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보라. 아마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힘든데 마냥 웃는 얼굴만 하고 있으라는 건 더 힘들지 않겠는가. 작은 생활의 기쁨을 찾아보라. 그 시간과 사람들은 나의 표정과 마음을 기쁘게 한다. 이렇게 마음 속 기쁨의 나무를 가꾼다면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다. 일어나 걱정과 근심하지 말고 내가 기뻐할 수 있는 긍정적인 시간 속으로 주저하지 말고 풍덩 몸을 던져라.

  강의 첫날 학생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잘 깎아 놓은 연필이다. 이 연필로 하얀 종이 위에 사각사각 연필 소리를 들으며 글을 써보라고 권한다. 어떤 학생은 “이 바쁜 현대생활에 연필이라니요? 컴퓨터가 있는데” 하고 의아해 하는 학생도 있지만 학기가 끝나면 내 말의 의미를 알고 웃으며 몽당연필을 꺼내 보여주는 학생도 만난다. 기쁜 마음으로 연필을 쥐고 노트 위에 글을 쓰다 보면 우주와 만나는 느낌이 든다. 마음과 우주가 만나 춤을 추고 상상하고 창조한다. 혹시 우리는 깜빡이는 컴퓨터 커서에 갇혀 창조의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고 싶다.

  뉴욕에는 연필을 깎아 주는 직업이 있다. 데이비드 리스는 연필 깎기 장인이다. 연필 한 자루를 깎아주는데 받는 비용은 40달러 정도. 정말 비싼 편이다. 연필을 잘 깎아서 노트에 글을 쓰는 장면을 생각하면 행복해 진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의 자부심과 진심이기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집 앞에 연필로 쓴 메모가 있다면 그 집 안에 연필이 있다는 증거이고 그 사람 얼굴에 근심이 있다면 그 마음에 어둠이 있다는 증거다.” 슬로우 스터디. 만들 때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우리 몸에 좋은 슬로우 푸드처럼 천천히 연필로 쓰는 사이 나의 진심은 더 건강해질 것이다.

이창봉 교수
연극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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