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사진가(사진학과 73학번)
  • 이승재 기자
  • 승인 2014.09.2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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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포착해 사진에 자연스러움을 새기다
  매 순간 최고의 장면을 사진에 담아내는 사람이 있다. 박상훈 동문(사진학과 73학번)이 촬영한 사진은 톱스타들과 대통령들을 대표하는 사진으로 자리매김했다. 꾸밈없는 자연과 사람의 모습을 사랑하는 그.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나는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진가를 만나봤다.
 
 
 사진 한민규 동문(사진학과 01학번)
  
새벽이 갖는 신선함으로
세계인의 눈을
매혹시키다
 
장르를 넘나들며
실현하는
통섭의 정신
 
 
▲ 백건우 피아니스트.
   순수 예술이 아니면 예술로 쳐주지도 않던 시절, 통섭의 길을 묵묵히 개척해 나간 예술인이 있다. 풍경 사진을 넘어 패션, 광고, 인물 사진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마다하지 않았던 박상훈 동문. 그는 새벽 풍경에 패션을 접목시킨 아이디어로 세계 3대 광고제 가운데 하나인 <뉴욕 페스티벌>에서 한바탕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새벽을 여는 사진가 박상훈 동문을 찾았다.
-새벽이란 소재는 어떻게 접하게 됐나.
기존 사진의 소재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 덕분이었다. 덕수궁에서 열렸던 미술 대전에 간 적이 있는데 입상한다면 출세의 길이 보장될 정도로 큰 규모의 대회였다. 기대를 많이 했지만 설악산의 폭포, 내장산의 단풍, 동해의 일출처럼 평범한 주제를 다룬 작품들뿐이었다. 이름을 가리면 누가 찍었는지도 모르는 작품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내 주변에서부터 색다른 소재를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새벽과 눈이 맞아 버렸다.(웃음)”
-새벽 사진으로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건가.
풍경 사진과 패션 사진을 접목시킨 작품으로 1994<뉴욕 페스티벌>에서 금상을 받게 됐다. 제일모직의 패션 브랜드 런칭을 맡아 아르헨티나 산타페에서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 때의 사진을 <뉴욕 페스티벌>에 출품한 것이다.”
-한국의 새벽은 아니었는데.
산타페의 새벽을 촬영했지만 어딘지 한국 새벽의 정취가 살아 숨 쉬는 작품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준비해 온 새벽 여행시리즈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벽이 품고 있는 풍경, 한국의 정서가 물씬 담겨 있는 풍경을 찍으러 다니던 와중에 새벽이라는 그릇에 패션을 담아낸다면 좋은 작품이 탄생할 것 같다는 영감이 떠올랐다.”
-수상을 예상했나.
워낙 큰 무대이기에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와서 상에 대한 기대는 안하고 있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마음이 허공에 붕 떴다. 심사위원들이 한국 작가의 작품을 신선하다고 평가해준 듯 싶다. 요즘 새벽은 누구나 찍고 있는 흔한 주제지만 당시엔 새벽을 주제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두울수록 사진을 찍기 고생스러운 탓이다. 예술계는 자기 분야가 아니면 배척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한데 그간 통섭의 개념을 실천하려고 애썼던 일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예술관이 남달라 보인다.
요즘 말하는 콜라보레이션개념이 내 예술적 가치관과 일맥상통한다. 그간 한국 사람들은 예술에 있어서 다소 경직된 성향을 갖고 있었다. 다양한 예술 분야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야 비로소 창조적인 작품이 탄생하는 것인데 말이다. 구시대적 가치에 얽매여 순수 예술과 얼마든지 접목이 가능한 패션, 광고 사진을 상업적이라고 매도하는 경향은 촌스럽기까지 하다.”
-수상 후 일상에 변화가 있었는지.
개인 사진전을 하는 동시에 뉴욕 슈퍼모델 프로그램의 심사위원과 초대 작가를 맡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36명의 슈퍼모델 후보자들이 나올 때마다 내 얼굴과 이름이 화면에 떠서 종종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나를 알아봤다. 그 뒤로 예술가는 얼굴이 알려지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한동안 방송 노출을 자제했다.”
-바쁜 일정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기 힘들었을 텐데.
일이 많아지니까 오히려 슬럼프에 빠지게 됐다. 기존의 것보다 더 나은 파인 아트 작품을 창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는데 일이 끊이질 않으니 개인 작품에 투자할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94년부터 96년까지는 예술가로서 고민이 많았던 시간이다.”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예술에 대한 간절한 열망으로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재능이 있으니 이 재능을 마음껏 펼쳐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슬럼프를 넘겼다. 여기서 포기해 버린다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힘이 들 때마다 정신을 바로 잡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어려움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문제였다.”
 
▲ 故김대중 전 대통령.
  박상훈 동문이 사진가의 길을 걸어온 지도 벌써 38년이 흘렀다. 어린시절 집에 있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을 즐겼던 소년은 어느덧 세계에 한국을 알린 사진가로 성장했다. 자유분방한 성격답게 다양한 꿈을 가지고 있던 그의 학창시절을 들여다봤다.
-언제부터 예술에 관심이 있었나.
어릴 적부터 스스로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표현력이 풍부한 소년이었다. 조각이나 공예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조립에는 유난히 흥미가 없었다. 섬세한 편이긴 했어도 무언가를 꼼꼼하게 만드는 성격은 못되었다. 또한 어린 나이에 상당히 감상적이어서 종종 몽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사진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은 건가.
카메라는 귀한 물건이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집에 가족용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을 취미로 삼게 되면서 사진과 가까워졌다.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마다 내가 단체 사진을 담당했다.”
-어린시절 꿈이 궁금한데.
사진은 단순한 취미였고 직업적으로 고려했던 건 나중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부유한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 용돈을 여유 있게 받았던 편이라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호기심이 많아 세계를 순회하는 여행가가 꿈인 적도 있었다. 대통령이 해외에 갈 때마다 그를 따라 나가는 사진기자들의 존재를 알게 된 뒤에는 사진기자를 꿈꾸기도 했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좋아하는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사진기자가 딱 내 스타일이더라.”
-사진가로 전향하게 된 배경은.
대학생 때까지 사진기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한 언론사에서 인턴기자로 근무하는 동안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진기자에겐 생각보다 자기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사진가로 진로를 변경하게 됐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사진가가 되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갈피가 서지 않아 고생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부모님에게 손 벌리고 싶지 않다는 목표가 있었다. 누구보다 당당한 예술인이 되고 싶었다. 고민해보니 시간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개인 스튜디오를 꾸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개인 작업에 몰두하면서 전시회도 열고 책도 낼 수 있었다. 스튜디오는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기반이었다.”
-사진의 길을 걷는 것에 대해 부모님은 어떤 반응이었나.
사진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두 분 모두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니 좋은 것을 선택했다네 성격에 맞는 공부니까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주셨다.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시니 기뻤다. 지금까지도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박상훈 동문은 스스로 어떤 학생이었다고 생각하는지.
반전이 있는 학생이었다. 외향적인 성격 덕에 겉모습은 활동적으로 보였겠지만 혼자 문화생활을 즐기러 다니기도 하는 사색적인 청년이었다. 친구들이 있을 때는 까불까불한 모습만 보여줘서 대학 동기들도 내 안에 문학 소년이 잠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잘 노는 학생으로 유명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맞는 말이다.(웃음) 놀 때는 또 화끈하게 놀았다. 예술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열린 예술제에서 주연을 맡아 코믹한 꽁트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당시 관중석을 웃음바다로 만들 정도로 끼가 있었다. 평소 연극을 좋아해 자주 보러 다녔던 것이 요긴하게 쓰였던 것 같다.”
-공부는 잘 하는 편이었나.
성적은 괜찮았던 편이다. 오히려 질문 공세로 교수님들을 자주 귀찮게 했다. 그 방식대로 찍어야 할 필요는 없단 생각에 조금은 예민할 수 있는 질문을 교수님께 던지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방법을 정형화해서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에 대해 반발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임응식 교수님께서 질문 대장이었던 나를 많이 아껴주셨다.”
-학부시절 찍었던 사진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한 졸업 작품 인더 버스가 기억난다. 통학 시간마다 카메라를 들고 버스에 올라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찍고 내렸다. 버스에서 입을 벌린 채로 침을 흘리며 졸고 있던 아줌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조심스럽게라는 말은 몰래 찍었다는 의미인가.
졸업 작품의 기획의도 자체가 꾸밈없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는 것이어서 몰래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이를 마주하면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스스로 표정을 포장하기 마련인데 버스 안의 사람들은 무방비 상태라 표정에 꾸밈이 없다. 꾸밈이 없는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을 포착하고 싶었다. 다행히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다.(웃음)”
 
▲ 故서정주 시인.
  장난꾸러기와 모범생의 모습을 겸비한 두 얼굴의 사나이 박상훈 동문. 학부시절 교수님을 따라다니며 질문했던 내용은 그의 인생 전반에 녹아 유용한 피와 살이 됐다. 90년대 사진계를 휩쓸었던 그의 사진 이야기가 궁금했다.
-풍경 사진의 대가라고 불린다.
여행을 좋아해 자주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풍경 사진을 많이 찍게 된 것 같다. 여행을 가는 곳마다 풍경이 다 다르니 그 속에서 사색에 잠긴 채 자연의 겸허함을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어떤 풍경 사진이 좋은 사진인가.
드라마틱한 사진보다는 자연을 담은 따뜻한 느낌의 사진이 좋다. 인물 사진이라면 사람 냄새가 나는 사진이 좋다고 할까. 사진의 종류를 막론하고 과장되지 않고 편안한 것이어야 볼수록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생긴다. 특히 내 풍경 사진 중에는 다른 작가의 사진들과 감히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인물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문화일보에서 발행하는 무가지인 AM7에 스타들의 모습을 담은 스타갤러리를 연재하기도 했다. 신문 양쪽의 스프레드 페이지는 온전히 나만의 지면이었다. 사람들이 날마다 신문을 통해 내가 찍은 사진을 본다는 생각에 희열을 느꼈다. 당시 최고의 스타들이 다른 화보나 신문에는 나오지 않아도 내 지면에는 꼭 출현해서 인기가 상당했다. 안성기, 김혜수, 전도연 등의 스타를 내가 직접 섭외했다. 내 스튜디오에서 함께 광고 작업을 한 스타들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섭외가 수월했던 편이다. 광고 사진은 여러 번에 걸쳐 촬영해야 해서 절로 친분이 쌓이게 됐다.”
-지면을 채우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을 텐데.
일반 사진기자와 다르게 나는 인물 작품이라는 관점으로 사진에 접근했다. 매 컷마다 그 사람의 대표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찍은 김혜수의 사진이 그녀의 대표 사진이 되었고 안성기의 웃는 얼굴이 그의 대표 사진이 됐다. 언제나 최고의 사진을 찍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인물 사진을 찍는 노하우가 있다면.
사람의 특징이 담긴 표정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표정을 가졌는지 모른다. 눈은 모델의 모습을 보는 도구일 뿐 진짜 표정을 찾아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한 것 같다. 뭐라고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웃음)”
-사진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
다양한 문화·예술적인 부분에서 영감을 얻는다. 주로 연극이나 그림에서 영향을 받았던 내용이 축적되어 있다가 내 작품에 투영되는 것 같다. 평상시에 무엇을 보며 생각하고 사는 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광고와 사진의 연관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백문이 불여일컷(cut)이다.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사진 한 장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사람들은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먼저 보고 마음에 들어야 읽으려는 시도를 하는 심리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광고와 사진은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올해 초부터 준비하고 있는 작업이 있다. 어떠한 작업인지는 2년이 지난 후 훌륭한 작품으로 설명해 보이겠다.(웃음)”
 
▲ 안성기 배우.
  당신에게 중앙대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련한 시절과 같다. 중앙대는 나의 20대 추억이 담겨 있는 젊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중앙대에서 희열을 맛보았고 미래를 꿈꿨으며 결국 사진가로서의 내 모습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학생 박상훈을 사진가 박상훈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만들어 준 그리운 고향이다.”
 
  ■주요 개인전
2010 ‘torso’, 갤러리 그림손
2006 ‘Who are you’, 갤러리 인
2004 박상훈의 스타갤러리’, 문화일보 갤러리
2004 박상훈, 박상희 형제 초대전, 프랑스 파리주재 한국문화원
1994 3회 개인전 우리나라 새벽 여행, 예술의 전당
1986 2회 개인전 우리나라 새벽 여행’, 서울 갤러리
                                                     1982 1회 개인전 풍경 모음’, 파인힐 갤러리

 

▲ 박상훈 동문의 '새벽 여행' 시리즈 중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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