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야는 네모난 틀 안에만 고정된다.  사진 박가현 기자

빨라진 소통 관계에
숨겨졌던 이들의 고통

중독되지 않은 사람들은
차별받고 있었다

  중독되지 않아 ‘문제아’가 됐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에서 깨자마자 기지개를 켤 새도 없이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대중교통 속 풍경엔 하나같이 고개 숙여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로 가득하며, 어디를 가든 콘센트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들이 ‘비정상’취급을 받는다. 중독되지 않아 문제아가 된 것이다.
 

느린 게 죄인가요?
  스마트폰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며 주변인들의 불평을 달고 사는 처지다. 카톡을 보내도 답장이 오는 데까지 심하면 반나절씩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유지현 학생(사회학과 1)은 스마트폰을 세 시간에 한 번 정도 확인 할 정도로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기계를 잘 만지지도 못하고 스마트폰 화면이 피로하게 느껴져서 핸드폰을 거의 안 보는 편이에요.” 그녀에게 ‘핸드폰이 폼이냐’, ‘왜 안 읽느냐’ 등과 같은 눈총들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소리다. “친구들이 카톡을 늦게 확인하면 많이 서운해해요. 답장이 늦는다고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러한 눈총은 그나마 견딜 만하다. 때로 느린 답장이 대인관계를 궁지로 몰아가기도 한다. 주경민 학생(신문방송학부 3)은 친구들 사이에서 연락이 잘 안 되기로 유명하다. “원래 핸드폰을 잘 보지 않아요. 보통 답장하는 데 하루 정도 걸려서 주위 사람들이 답답해하죠.” 사람들은 연락이 잘되지 않는 그에게 점점 지쳐서 자연스럽게 그와의 연락을 포기했다. “예전에는 그 사람들과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들이 저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떨어져 나간 게 아닐까 싶어요.” 사라지지 않는 1이 주변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었다.
 

  칼같이 연락하는 것이 SNS에서의 새로운 매너가 되어가면서 연락을 재촉하는 것 또한 당연시되고 있다. 이진욱 학생(사회대·가명)은 “소통의 기본은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며 “카톡을 보채는 것은 다짜고짜 소리 지르며 나를 찾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1의 숫자와 조급해진 사람들의 독촉이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의 사생활을 침범하고 있다.
 

꼭꼭 숨어라. 공지·소식 놓칠라

  단체톡은 공지나 약속을 알리는 보편화된 수단이 됐다. 하지만 단체톡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일종의 ‘정보격차(Informa-tion gap)’를 겪고 있었다. 수백 개씩 쌓인 텍스트 속에서 필요한 공지나 약속을 찾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기 때문이다. 평소 단체톡을 잘 확인하지 않는 이진욱 학생은 공지를 놓쳐 동아리 사람들과 다툰 적이 있다. 자신의 임무가 자기도 모르게 단체톡에서 공지 된 것인데 메시지를 흘려 읽다가 이를 놓친 것이다. “300여 개가 되는 단체톡을 봐도 쓸데없는 내용이 많아서 잘 보지 않아요.” 이런 그에게 동아리 사람들은 무책임하다며 따가운 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이진욱 학생은 공지 같은 공적인 것은 개인적으로 전화나 문자로 알려야 된다는 태도다. “카톡과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공지를 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한두 개도 아니고 몇백 개가 되는 메시지들을 공지하나 때문에 어떻게 다 읽고 있나요?”
 

  단체톡을 읽지 않아 생기는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1모임 1단체톡’인 시대에 카톡을 읽지 않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이주희 학생(인문대·가명)은 단체톡을 잘 읽지 않아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 적이 많다. 내용이 궁금해 대화 중간에 끼어들면 흐름을 깬다는 친구들의 불만만 돌아올 뿐이다. “단체톡을 잘 읽지 않으면 친구들이 뒷북친다고 뭐라고 해요. 별것도 아닌 데 한소리 듣기 싫어 억지로 읽는 편이죠.” 몇백 개씩 쌓여 있는 카톡이 누군가에겐 읽어야 하는 과제 같은 존재였다. 
 

피처폰으로 도망간 사람들 
  스마트폰이 몸과 물아일체가 되면서 길을 다닐 때나 밥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을 만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중독이 자연스러워진 세상에서 임채현 학생(공주대 미술교육과·가명)은 삶이 점점 각박해졌음을 느꼈다. “SNS 알림이 떴는데 사정이 있어서 답장을 못해주면 불안했어요. 답장을 빨리 못 해주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저 또한 초조한 거죠.”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은 임채현 학생은 올해 초 피처폰으로 바꿨다. 주변 사람들이 피처폰을 쓰는 것을 알기에 연락을 보채는 사람도 없다. “피처폰을 쓰다 보니 사람들이 답장을 언제든지 기다려주는 자세가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알림만 뜨면 바로 연락했는데 이젠 빨리 연락을 해줘야 하는 의무감이 사라졌죠.”
 

  그녀는 피처폰으로 잠시나마 숨 쉴 공간을 찾았지만 그것은 정말 ‘잠시’뿐이었다. 교생실습 중 단체톡의 바뀐 공지내용을 확인하지 못해 실습을 따라가지 못하고 멀뚱히 앉아 있었던 해프닝도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단체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었다.
 

  24시간 내내 ‘연락 가능 상태’가 돼야 하는 오늘날 이들은 문자시대가 그립다 말한다. 조금은 느렸지만 빽빽이 차 있는 글자들에서 느껴지던 애틋함이 좋았다. 못 읽은 것인지 읽지 않은 것인지 조마조마했던 그때가 그립다. 하지만 문자시대가 끝났으니 사람들은 어서 속도를 내라고 했다. 답답하다는 사람들의 독촉이 문자시대의 후예들에게는 더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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