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대화창들
우리의 조급증은 늘어만 가

무탈한 사회생활 위해
차라리 중독되는 게 낫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에게 온 카카오톡(카톡) 알림음이 폰을 울린다. 설레는 마음이 메시지를 확인하라고 요동치지만 이를 열 수 없다. ‘1’이 바로 없어지면 할 일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대화창을 선뜻 열지 못하는 정영진 학생(사회대·가명)은 메시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전원버튼과 함께 꾹 눌렀다.
 

  어느 순간 카톡의 읽음 표시 1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때로는 관심의 표현으로, 때로는 무시의 표현으로 우리는 1에 울다 울었다. 하지만 현실은 ‘썸’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 폰과 내가 하나가 됐고, 우리는 도가의 물아일체(物我一體) 사상을 달관한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기계인지 기계가 나인지 모르는 이 혼란이 우리 삶을 마구 비틀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스마트 시대에 별 탈 없이 사는 방법
  스마트폰 유저들 사이에도 일명 ‘설국열차’가 있다. 몇 분마다 수시로 폰을 확인하는 사람들은 열차의 머리칸. 이와 반대로 폰을 멀리할수록 뒤 칸에 탑승하며, SNS를 하지 않거나 연락이 한나절씩 느린 사람들은 꼬리칸이다. 즉 스마트 시대에 요구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열차 칸이 분리되며 머리칸으로 갈수록 ‘별 탈 없이’ 살 수 있다. 이들은 카톡 알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누구보다 빠르고 연락에 능숙하다.  
 

  열댓 개의 카톡방들이 수다의 봇물을 뱉을 때면 수백 개의 메시지가 쌓이는 건 순식간, 배터리가 닳는 것도 순식간이지만 정예진 학생(사회대·가명)은 몇 분마다 한 번씩 카톡을 연다. 그는 스마트폰 열차의 머리칸에 살고 있다. “빨갛게 뜬 1 표시 때문에 답장을 바로바로 해줘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껴요.” 이러한 강박을 느끼는 것도 일종의 네티켓이라면 네티켓이다. ‘읽씹’, ‘안읽씹’이 판을 치다보니 서로 감정이 상하고, 심하면 싸움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열차 머리칸에 탑승한 만큼 그는 커뮤니케이션 매너를 충실히 다 하고 있었다. “단체톡에서 일부러 카톡 안 읽는 사람들도 많던데 그럴 거면 왜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요즘에 폰을 몇 시간씩 확인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또 다른 머리칸 승차자인 정영진 학생은 모종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루 종일 카톡만 붙들고 있긴 힘들잖아요. 근데 1을 없애면 바로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어 계속 대화하게 되죠.” 읽음과 동시에 상대방이 이 사실을 인지하게 되기 때문에 답장을 나중에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카톡을 읽었지만 답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혹여 오해가 생길까 안절부절못한다. 김영현 학생(서울대 지역시스템공학과 4)은 “잠적하는 것도 아닌데 바로바로 연락이 안 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짜증을 내더라”며 “연락이라는 게 한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야 하는 게 아닌데 사람들이 조급해지면서 피로해진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거부할 권리는 없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우리가 숨을 공간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특히 카톡과 페이스북(페북)을 함께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안읽씹에 대한 우리의 변명은 힘을 잃게 된 것이다. 정다현 학생(서울대 지역시스템공학과 2)은 답장하기 싫은 카톡 메시지를 두 페이지씩이나 쌓아두곤 했다. “1을 없애자니 답장해야 하고 그렇다고 쌓아두자니 신경이 쓰이죠. 사람들에게는 매번 폰을 늦게 봤다고 말해요.” 그러던 그에게 지인 한 명이 ‘페북 접속은 하면서 왜 내 카톡은 보지 않느냐’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카톡은 안읽씹했지만, 페이스북에서는 활동 중이라는 표시가 떴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감시당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뒤로 카톡을 안 보면 페북도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죠.” 피로하지만 서로를 위해 그는 새로운 매너를 길들여야 했다.
 

단체톡 느니 피로감도 는다
  때로는 영양가 없는 우스갯소리가 내 배터리와 데이터를 갉아먹고 있지만 눈치가 보여 쉽사리 나갈 수도 없다. “큰 맘 먹고 나갔지만 다시 초대됐죠.” 정다현 학생은 지금까지 대규모의 단체톡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신경쓰는 사람은 없다. 그가 하는 것은 오직 쌓인 빨간 표시를 정기적으로 없애기만 할 뿐.
 

  그나마 친목 위주의 단체톡은 나은 편이다. 업무수행을 하는 단체톡의 범람에 사람들은 숨이 막힌다. 강나루 학생(국어국문학과 4)의 폰에 단체톡이 울린다. ‘PPT는 누가 만드나요?’, ‘보고서는 언제까지죠?’, ‘대답 좀 해주세요.’ 쌓여가는 메시지들을 확인한 강나루 학생은 곧장 답을 한다. 그는 카톡방에서 활발히 대답하는 분 단위 활동가다. “팀플 같은 업무지향 카톡방은 욕먹기 싫고 책임감 때문에 자주 봐요. 답을 안 했다가 프리라이더로 비치긴 싫으니까요.”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면 스마트폰에 몰입돼야 하는 현실. 분 단위 활동가가 스마트폰 열차의 머리칸에 있을 수 있는 이유다. 조동균 학생(공공인재학부 2)은 “확실히 카톡방에서 빨리 응답할수록 좋은 이미지가 쌓이는 것 같다”며 “팀플이나 공적 모임에서 빨리 대답하면 여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단체생활
  터질 것 같은 단체톡에 압박을 느끼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카톡과 언제나 함께하게 되면서 우리는 ‘휴식시간’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폰 상단의 상태표시줄에 메시지가 있다는 표시가 뜨자 김지현 학생(사회대·가명)은 반가움보단 피로감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카톡이 생긴 이후로 연락이 오는 것은 대부분이 의미 없는 말이거나 업무용건이었다. 피곤해진 그가 선택한 방법은 미리 보기로만 확인하고 답장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 팀플이 일상생활에 틈틈이 스며든 탓이다.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사람들을 만나다가도 우린 ‘워커홀릭(wor-kaholic)’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프리라이더가 된다. “학교 다닐 때 피곤했던 것 중 하나가 일할 때와 쉴 때가 구분이 안 되는 부분이었죠.”
 

  얼마 전부터 회사에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그는 이러한 피로감을 더 깊이 체감하고 있었다. 퇴근 후 저녁 식사 중에도 눈치 없이 카톡은 울린다. ‘빠트린 부분이 있으니 다시 올리도록 해라.’ 일은 회사에서만, 팀플은 정해진 시간에만 하고 싶다. 집에서의 시간만은 방해받고 싶지 않다.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다음날 가서 혼나고 말 일인데 요즘은 저만의 일상생활이 침해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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