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만큼 아쉬운 것이 있을까요. 말하지 못한 고백만큼 아픈 것이 있을까요. 우리가 독심술을 익히지 않은 이상 내색하지 않은 본심, 말하지 않은 진실은 알 턱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뜻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는 여간 어렵지 않죠.


  기자도 이번에 외국인 유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을 취재하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취재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누군가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입니다. 통성명 한번 해 본 적 없는 낯선 이들에게 ‘취재에 응해주실 수 있나요’라는 본심은 무거운 짐이 되어 내뱉는 것조차 힘이 부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신문사에서 안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눈 질끈 감고 학생회실과 기숙사를 돌아다니며 조심스레 던진 말이 단칼에 거절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을 꾹 삼켰습니다. 기사에 필요한 취재는 더뎠지만 뒤로 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비단 외국인 유학생과 한국 학생들의 소원한 관계가 민족과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 본 사람들끼리 말 붙이는 것. 그것은 국가와 문화를 막론하고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학생에게 관심 없다’란 한국 학생들의 말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기 싫다’ 대신 ‘관심 없다’란 말로써 부정의 의미를 퇴색시킵니다. 하지만 관심 없다는 말은 결국 보이지 않는다는 말로써 현상을 미시적으로 만들 뿐입니다.


  제가 만나본 외국인 유학생들은 하나같이 한국 학생들과 친해지고 싶어했습니다. 단지 그것이 오가며 이뤄지는 요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우리의 문화를 느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앙대에 있는 1,100여 명의 외국 유학생들. 전체 재학생 규모로 볼 때 결코 적은 수는 아닙니다. 관심 없다는 말, 알지 못한다는 말. 국제화 강의를 듣고, 외국 연수와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세계적 인재로 거듭나고자 하는 현 대학생들에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기자는 여전히 질문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다가가기도 어렵고 말 붙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앞으로 그만둘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적어도 ‘취재’란 요인이 있고 명분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일반 학우들에겐 ‘관심 없다’보다는 ‘나는 왜 관심 없을까?’라는 질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관심은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죠. 보이지 않는다는 말 대신 왜 그럴까라는 의문, 낯선이에게 하는 질문만큼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왜 관심이 없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외국 유학생들과 우리들의 관계 사이에서 또 다른 실마리와 돌파구를 찾을지도 모릅니다. 부치지 못한 편지, 말하지 못한 고백, 내가 왜 하려고 했는지부터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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