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뚜껑 없는 박물관
 
요즘 같은 시대에 대장장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서울 대조동엔 직접 쇠를 두드려 도구를 만드는 불광대장간이 있다. 아버지 대장장이와 아들 대장장이가 수천, 수만 번을 두드려 만든 무쇠 도끼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보통의 쇠도끼와는 급이 다르다. 유쾌한 부자 대장장이는 계속해서 불광대장간을 지키기 위해 쇠망치질을 멈추지 않는다.
 
 
대장간에서 들려오는
쇠의 마찰음
 
유쾌한 대장장이를 찾아
전국에서 모여들다
 
 
  잠에서 깬 사람들이 일터로 돌아오는 시간인 아침 9시, 골목 어귀에서 깡 깡 깡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경쾌한 소리에 맞춰 부동산이 문을 열고 옷가게의 셔터도 올라간다. 저 멀리 불광산의 불광사 스님들도 아침 불공을 드린다. 대조동의 아침은 불광대장간 두 남자의 쇠망치질 소리에 깨어난다.
 
▲ 불광대장간의 2대 사장인 박상범씨가 손님을 맞고 있다.
  60년 넘게 서울 대조동에서 명맥을 이어온 불광대장간의 주인은 박경원(77)씨와 아들 상범(46)씨. 아버지 대장장이가 불에 쇳덩이를 달구면 아들 대장장이가 매로 힘껏 내리치는 일을 한다. 기계식으로 도구를 찍어내는 공장들 가운데 손으로 쇠를 매질하는 대장간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불광대장간은 전통방식 그대로를 따른다.
 
  700~800℃까지 온도가 올라간 화로에 쇳덩이를 넣고 달구면 얼마 뒤 빨갛게 쇠가 달아오른다. 아버지 박경원 사장은 쇳덩이를 무쇠로 만든 밥상에 올려 놓는다. 여기서 밥상은 밥그릇이 올라가는 밥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쇠를 올려놓는 모루를 뜻한다. 대장장이들에게 밥상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곤 아들 상범씨가 달궈진 쇠를 매로 내리친다. “때리면 때릴수록 조밀해져 쇠가 강해져요. 이때 쇳덩이 속에 불순물이 나오는데 이렇게 까만 껍질이 벗겨져 나오죠.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공장제 도구들은 손으로 만든 도구를 따라올 수 없어요.”
 
▲ 외제와 비교해도 질이 떨어지지 않는 식칼. 투박한 생김새가 불광대장간의 매력포인트다.
  질 좋은 도구를 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든다. 석공이 많은 문경에서도 찾아오고 연탄공장이 많은 제천과 조치원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저기 잘사는 동네 아줌마들도 한 번에 식칼 여러 개를 사서 친구들에게 쓰라고 나눠준대요. 학생들도 어머니한테 사다드리면 엄청 좋아할 걸요.”
 
  대장장이 부자는 인생의 대부분을 대장간에서 보냈다. 박경원 사장은 10살 무렵부터 대장장이 일을 배웠다. 그는 10년간 리어카에 간이 대장간을 만들어 대조동을 전전하다 1965년 불광대장간이란 간판을 내걸고 정착했다. 아들 상범씨는 군에서 제대한 이후 아버지가 하던 대장장이 일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일을 물려받던 당시 워낙 대장장이 일이 힘들어 직원들은 일주일을 못 견디고 나가던 상황이었다. “군대에 다녀오니 그 자리를 어머니가 대신하고 있더라고요. 뜨겁고 무거운 쇠를 만지며 힘들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제가 하기로 결심했어요. 아버지도 굉장히 좋아하셔서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손발이 잘 맞는 부자는 두런두런 얘기도 하며 일을 한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훈훈한 이 부자를 두고 칭찬이 자자하다. 부자가 함께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일부러 이곳에서 물건을 사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돌아갈 법도 한데 동네 사람들은 불광대장간을 가로질러 난 통로로 스스럼없이 잘 지나다닌다. 상범씨는 여기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다.
 
▲ 낫이나 나대 같은 기본적인 연장은 물론 특수 제작한 도구들도 즐비하다.
  불 앞에서 도구를 만드는 고된 작업이 끝나면 아까 다듬은 쇠를 자루에 끼우는 일을 한다. 오후부터는 만든 도구들을 진열하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가게 앞엔 호미나 낫, 도끼, 식칼 등 누구에게나 익숙한 기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간혹 ‘불광’이라는 음각이 새겨진 도구는 더 많은 손이 간 프리미엄급 도구다. 특별히 주문제작을 부탁받은 기구들도 대장간 한켠에 준비되어 있다. 무용을 가르치는 어떤 교수는 찰랑찰랑 유쾌한 소리가 나도록 견고하게 엿가위를 만들어 달라며 부탁하기도 한다. 어떤 심마니는 곡괭이와 작살이 합쳐진 도구를 원했다. 정년퇴직을 한 후 취미삼아 심마니로 전직한 한 남성은 “심마니의 길로 들어선 지 얼마 안 돼 꾼들에게 도구들을 모조리 빼앗겼다”며 “다시 도구를 맞추려고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잘 팔리는 도구들도 시절에 따라 다르다. 연탄을 많이 때던 시기엔 한번에 여러 장을 들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연탄집게가 전국적으로 많이 나갔다고 한다. “연탄을 많이 피우는 겨울철엔 온종일 연탄집게만 만들어서 힘들었다”고 상범씨는 회상했다. 요즘은 주말농장이나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 손도끼나 나대(나무 가치지기에 유용한 연장), 호미 같은 도구들이 많이 나간다. 아이들과 캠핑을 계획한 한 회사원도 잠시 짬을 내어 대장간에 들렀다. “추석연휴 동안 아이들과 캠핑도 가고 조개 캐러 갯벌에도 갈 계획이에요.” 도구들이 크게 비싼 편도 아니어서 그는 모종삽이며 손도끼를 한 보따리 사갔다.
 
  아침엔 부자가 쇠를 매질하고 저녁에는 아들 내외가 각지에서 오는 손님을 맞는다. 다섯 평도 안 돼 보이는 작업공간이 좁아 보이기도 하지만 상범씨는 아직까지 가게를 확장하거나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사진작가며 글쟁이들도 우리 대장간을 찾아온단 말이에요. 우리는 계속 이 자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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