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귀를 고수하겠다
  • 이승재 기자
  • 승인 2014.09.07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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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가 얇다는 말의 의미를 다들 아실 테지요. 남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관용적으로 나타낸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귀가 얇다는 소리를 들으면 왠지 기분이 상쾌하지 않습니다. 줏대 없이 흔들리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같으니까요. 기자도 지인들에게 귀가 얇다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머릿속에 갖고 있던 생각이 있다가도 더 좋은 의견이 있다 싶으면 다시 고민을 시작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3일 가까운 극장을 찾았습니다. 3주 전부터 고대하던 영화가 개봉하는 날, 극장을 향하는 기자의 발걸음은 가벼울 수밖에 없었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고 싶었던 영화의 티켓을 끊지 못했습니다. 친구들 중 하나가 재미있을 법한 다른 영화를 제안했고 고민하던 기자는 친구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2시간이 지난 후 씁쓸한 발걸음으로 극장을 나서는 기자에게 또 다른 친구가 말을 건넸습니다. “너는 귀가 얇아서 탈이라고. 친구의 평을 감히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얇은 귀가 마냥 부정적인 기능만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자에게 얇은 귀는 양면의 동전 같습니다. 때에 따라 치명적인 독약 또는 효과만점의 묘약으로 둔갑하기도 하지요. 1년 반 동안 중대신문 기자로 생활하며 매주 두 종류의 약들을 맛보았습니다.

  한 번은 문제를 고발하자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채 관련 부서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원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그의 사정에 푹 빠져 버렸지요. 문제를 제기하려 펜을 들었던 기자는 수첩에 해명식 멘트를 받아 적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반면 특정 인물에 대한 인터뷰의 경우에는 오히려 득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인터뷰이가 동문서답을 한다고 그의 말을 멈추는 것은 금물입니다. 눈앞의 노다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이의 의식을 쫓아가다 보면 기자가 알지 못했던 내용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도 하거든요. 인터뷰 시간이 두 배로 껑충 뛰는 것은 감수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얇은 귀에 적절한 호응이 더해지면 상승효과를 일으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상대방을 경계하는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취재원과 웃으며 즐겁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자만의 비법입니다. 지난 7월 노웅래 동문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 뜻 깊은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고맙네. 늘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중앙 정신으로 새정치를 하겠네.” 취재량이 넘쳐 기사를 쓸 때 어떤 이야기를 넣어야 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은 덤이었습니다.

  이번학기에도 기자의 귀는 어김없이 얇을 계획입니다. 주관 없는 기자가 되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취재원들의 사소한 이야기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는 기자로 남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대신 얇은 귀에 조밀한 망을 하나 설치할까 합니다. 얇지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조밀한 귀. 그 보물을 십분 활용하자는 것이 이번학기 중앙대의 여론을 맡게 된 기자의 다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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