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뛸 준비 완료
 
 
 
학생들에게 광고사진을 30여 년간 가르치고 학교 밖에서는 광고사진가로 활동하며 누구보다 바삐 생활한 사진전공 김영수 교수. 우연히 접한 마라톤은 이제 그의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어쩌다 달리기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빗방울이 떨어지던 8월의 여름, 한강변으로 찾아갔다.
 
 
 
  따끔한 빗방울이 조금씩 피부를 적신다. 하지만 우산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의 목표를 함께 다짐한 두 다리만 있다면 운동 준비는 끝난다. 집 근처 뚝섬 한강공원은 즐겨 찾는 달리기 장소. 볕이 너무 뜨겁거나 강바람이 추울 때에는 서울숲으로 가면 그만이다. 드넓은 한강의 물결을 따라 조금씩 달려본다. 그렇게 일주일에 240km씩 거르지 않고 달려왔다. 
 
어느날 그에게 
마라톤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뛴 거리가 지구를 한 바퀴(40,000km) 돌고도 모자라 두 바퀴째 향해 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영수 교수(사진전공)의 이야기다. “사람이 밥을 안 먹을 수 없듯이 나는 며칠만 달리지 않으면 소화가 안 돼요.” 내리는 비가 밉지 않고 꽁꽁 언 빙판길은 약간의 푸념 한마디면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된다. 사시사철 어떤 날씨가 창밖에 펼쳐지든 그에게 달리지 못할 이유란 없다. 
 
  풀코스 완주만 276회. 그의 이름은 100회 마라톤 완주기록 비석에 국내에서 43번째로 새겨지게 됐다. 100km가 넘는 울트라마라톤대회 완주는 10여 회에 달한다. 참가만으로도 마라톤계에서 인정받는 보스턴마라톤대회에는 50세의 나이에 도전했다. 밤을 홀딱 새고 34시간을 달린 끝에 200km거리의 제주 국제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도 결승선을 밟았다. 그런데도 앞으로 뛰어야 할 날들이 많이 남았단다.
 
  김영수 교수가 처음 달리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목욕탕 거울에 적나라하게 비친 몸매와 술로 채워진 볼록한 배는 지금껏 건강관리와 멀었던 자신의 일상을 대변하는 듯했다. “옆에 러닝머신이 있길래 조금 뛰어 보았습니다. 500m쯤 달렸을까, 숨이 차고 힘이 들어 더 이상은 걷지도 달리지도 못할 지경이 됐어요. 그대로 뻗었지요.” 남들 같으면 가볍게 여기고 지나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건강관리를 제대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운동 중에서도 그가 선택했던 것은 바로 마라톤이었다. “그전까지는 골프나 스키를 즐겨왔지만 삶이 너무 바빠서 일상에 치이다 보니 쉽게 할 수 없게 됐어요.” 달리기를 시작한 결정적인 이유다. 따로 운동 기구를 사지 않아도 되고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골프처럼 운동을 즐기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모을 필요가 없다. 내 시간만 있다면 새벽이건 점심을 먹기 전이건 언제나 혼자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병상에서 일어나 
풀코스 완주의 꿈을 이루다
 
  하프코스를 일 년에 한두 번 완주하는 정도였던 그에게 2000년은 마라톤 인생에 있어 터닝 포인트가 된다. “아프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간암이 발병했어요.” 당시 환자의 10명 중 9명이 살아남지 못했던 병이 간암이었다. 그의 나이 46세, 수술대에 올라 간의 1/3을 잘라냈다. 병상에 있으니 평소에 목표해두었던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마라톤에 있어서는 ‘수술 후에는 풀코스 완주를 해봐야겠다’는 다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다짐은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완주에 도전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 단계가 있습니다. 단계를 밟으면서 내가 좀 더 나아갈 수 있는 목표를 세우게 되죠.” 달리는 거리를 늘려가며 매일 같이 연습을 한 후에야 처음으로 42.195km라는 거리를 완주할 수 있었다. 
 
  마음 다스리기의 중요성도 깨달을 수 있었다. 죽었다 살아난 그에게는 어떤 어려움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 목숨을 걸만큼 중요한 것인지 비교를 했어요. 따지고 보니 목숨을 걸만한 일들이 많지가 않았던 겁니다. 골치가 아픈 일이 있으면 꼭 나 자신에게 물어봐요. 이 일이 내 생명을 걸 정도로 스트레스를 주는지.” 간암 수술 후 재발 확률도 있었으나 다행히 꾸준히 관리를 한 덕분에 누구보다 건강한 모습을 한 김영수 교수다. 어쩌면 그는 마라톤으로 심신단련을 하며 병을 이겨냈을지도 모른다.
 
  그는 차츰 달리기에 중독되어갔다. 시간이 없어 취미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몸만 준비되면 언제든 달릴 수 있기에 마라톤을 시작했던 초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한창 바쁠 땐 출퇴근하다가도 한강 변에 내려요. 그리곤 마라톤 옷과 신발이 든 배낭을 멘 후 짬을 내서 한 시간 정도 달리지요. 얼굴에 맺힌 땀방울은 화장실에서 깨끗이 씻으면 걱정이 없어집니다.” 퇴근 시간, 밀리는 차 대신 두 다리를 이용해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교통비 절약에 건강까지 챙기는 그의 시간 활용법이다. “자고 먹고 일하는 시간을 빼고도 남는 시간이 충분히 많거든요. 핸드폰 보는 시간에 취미를 즐기면 돼요”며 따끔한 이야기도 건넨다.
 
 
두 다리로 
달리는 인생
 
  뛰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의 대답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였다. “달리기는 선(禪)과 같습니다.” 선은 불교에서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을 뜻한다. 명상할 때 숨만 계속 쉬다 보면 생각이 멈춘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처음 달릴 때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지만 골치 아픈 생각도 1시간만 하다 보면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계속 뛰다 보면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며 바람 부는 것이 느껴지고 매미 소리가 귀에 들려와요. 몸 움직임과 호흡에만 충실해지다 보니 무엇을 생각할 겨를이 없지요. 근육도 피로를 덜 느끼게 되고요.”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복잡한 일들을 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독해지는 성격도 덤으로 얻었다. “마라톤은 육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시키는 하나의 일입니다. 죽기 직전까지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 되죠. 웬만큼 실현 가능한 목표는 어떤 난관이 있어도 이뤄요.” 달리기는 취미생활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취미는 단순한 여가생활을 넘어 일상 속 한 부분으로 깊이 뿌리 잡고 있었다. 그 덕분에 아내 역시 일주일에 4~50km를 달리는 달리기 애호가가 되었다고 한다. “여행을 갈 때엔 항상 아침 7시에 눈을 떠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나갑니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도 그 시간대엔 청소부밖에 없지요. 천천히 10km 정도만 뛰면 차를 타고는 볼 수 없고, 걷기엔 먼 곳들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죠.” 마라톤을 통해 가진 여행의 기술이다. 
 
  달리는 즐거움을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 교수의 마음이었다. 그는 MT에 가서 학생들과 마라톤을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보통 술만 마시다 돌아오는 것이 MT인데 건전하게 즐겨보고자 시작을 했어요. 학생들의 호응도 꽤 좋은 편이랍니다.” 광고사진전공 MT에서 학생들은 능력껏 10km 혹은 5km를 선택해 뛰거나 걸어서 완주한다.
 
  달리는 두 시간여 동안 먹구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자전거보다도 여유로워 보이는 것은 오랜 기간 단련된 심신 덕분일까. 이제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달리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다. 매일같이 연습하는 것은 실력 향상을 위해서가 아닌 체력 유지를 위함이라고 한다. “늙어 죽을 때까지. 뛸 수 있을 때까지 뛰고 싶다”는 그는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했다. “달리기는 규율이 없는 단순무식한 운동입니다. 출발지점에서 시작해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골인 지점까지 들어가는 것만이 하나의 규칙이지요. 단 1m라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달려줄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이 곧
인생이며 마라톤입니다.”
 
 
김영수 교수님이 알려주는 
마라톤 십계명
 
* 마라톤은 자세가 나쁘면 부상을 당할 확률이 높다. 고개를 똑바로 들고 몸이 똑바로 서게 하라. 몸은 좌우가 대칭이 되어야 한다. 양 어깨를 일자로 맞춰라. 
* 가슴을 넓게 펴라. 폐활량이 늘어나고 숨을 깊게 들이쉴 수 있다. 산소를 많이 마시지 못하면 근육이 쉽게 피로가 쌓인다. 혈액에 산소를 많이 모아라. 호흡을 한 번 할 때 크게 쉬어라. 폐활량이 커진다. 
* 다리와 팔을 일자로 만들어라. 8자로 뛰면 몸의 운동 중심이 양쪽으로 오가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크고 무릎에 부상이 갈 수 있다. 팔 역시 마찬가지다.
* 다리처럼 팔 역시 11자로 모아서 뛰어라. 그 이유도 3번과 같다.
* 팔을 뒤로 오가게 하라. 뒤로 가야 밀어 줄 수 있어 몸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뒤로 적당히 빼주라. 
* 숨을 쉴 땐 코로 숨을 쉬라. 뱉을 땐 코와 입으로 함께 뱉는 것이 좋다. 들이마시는 횟수는 자유롭게 하라. 
* 발이 닿을 땐 온 발바닥이 바닥에 함께 닿도록 뛰어라. 선수들은 거의 뒷꿈치를 들고 뛴다. 
* 적당한 운동화를 신어라. 시합용은 얇은 것 운동용은 조금 두껍게, 산으로 뛸 때는 더 편하고 단단하고 미끄러지지 않는 운동화를 신어라. 운동화의 수명은 보통 1000km이다. 겉은 멀쩡해도 그 정도 신었으면 수명이 다 된 것이니 과감히 버려라
* 장시간 피부를 보호해주기 위해 꼼꼼히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껴라. 단, 선크림을 바를 땐 눈 아래로 발라 주도록. 그렇지 않으면 땀이 흘러 눈으로 들어가 따가울 수 있다. 
 가벼운 시계를 꼭 하나 착용하도록 하라. km표지판이 없을 땐 시간을 정해 목표를 정하고 뛰어야 한다. 
 
글·사진 하예슬 기자 yesul@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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