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가 될 수 없어 
인사이더를 선택했다

이미지에 집착하는 ‘피상’ 사회가
인사이더의 고독감 가중시킨다
 
  혹자는 아웃사이더에 대해 우려의 안색을 내비치는가 하면 혹자는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빛나는 청춘들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웃사이더가 아니라고 해서 안심할 이야기가 아니다. 인사이더라 말하는 우리들의 모습도 그리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인사이더가 되려고 할까. 인사이더에 대한 열망을 분석하기 전에 우리는 아웃사이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사실 아웃사이더가 지칭하는 이들은 과거부터 존재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의 저자 오찬호 교수는 “90년대까지만 해도 아웃사이더는 자기만의 영역이 완고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더 강했다”며 “비아냥거림이 들어가 있는 오늘의 시선과 달리 그때는 놀림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즉, 아웃사이더에 투영된 이미지가 달라졌고 이는 곧 어떠한 결핍상태를 상징해 버리게 된 것이다. 
 
  인사이더가 되고자 하는 욕구는 이 결핍상태에 대한 이미지에서 오게 됐다. 오찬호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개인을 상품으로 포장해야만 하는 취업시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상품화 작업은 잘 한 것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부족한 것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인사이더가 되고자 하는 것은 전자를 취득함과 동시에 후자를 성취하려는 의도에서 발현된 것. 오교수는 “아웃사이더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동반하며 온갖 오해의 상징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압박이 생긴 것”이라 말했다.  
 
  이 탓에 우리들의 모습은 그리 건강하지 않았다. 혹여 빈축을 살까 학과생활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개인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은 술잔과 함께 들이켰다. 어느 순간 SNS까지 가세해 피곤함을 증가시켰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SNS상의 관계 맺기에 대해 부정적인 속내를 드러냈는데, 주로 피상적인 이미지 관리와 도구적인 인간관계에 관한 것들이었다. 우리는 점차 SNS에서 불편한 감정을 숨기는 과정에 적응해가야만 한 것이다.
 
  온라인 상에서 증가하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이민영 교수(신문방송학부)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민감함은 그 이전에서부터 있어왔다”며 “다만 최근 들어 이러한 일이 가중된 것은 오프라인의 인간관계가 온라인에까지 연장됨에 따라 익명성이 옅어진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온라인에서 내가 누구이고, 또 누가 나를 보고 있는지를 보다 쉽게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SNS까지 가세해 그 어느 때보다 폭넓은 인간관계의 속에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인사이더의 모습은 유독 심상치 않다. 오찬호 교수는 인사이더의 ‘인’을 사회학적인 맥락에서 분석했다. 사회 내에 존재하는 소외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피로감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집단 내에서는 비상식적인 지점들이 성찰, 개선되기보다 오히려 강화되기 때문에 인사이더의 ‘인’이 괴물이 되어버릴 수 있다”며 “그 괴물에 장단을 맞추게 되니 당연히 개인은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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