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더의 속을 파헤치다
 
져버리기 힘든 남들의 기대 
마음 터놓을 친구는 드물어

금전적 부담도 만만치 않아
SNS에서도 불필요한 감정 노동
 
▲ 인사이더는 남 챙기느라 머리가 터진다. 일러스트 권민주씨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말처럼,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더욱 강렬하게 확인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가 ‘나’이기 위해서 타인과의 관계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일까. 대학사회에서 타인과의 관계에 서투르거나 무관심한 이들은 ‘아웃사이더’라 불리며 사회적 문제로 진단받았다. 과도한 경쟁 사회가 만들어낸 존재라는 부연설명과 함께 그들에게 뒤따른 건 대인관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처방전이었다. 하지만 대학생활의 모범답안으로 여겨졌던 ‘인사이더(인싸)’들은 오히려 수많은 인간관계에 치여 고통받고 있었다.
 
 ‘만인의 연인’으로 사는 괴로움
  학과, 동아리 할 것 없이 인싸들은 해당 모임의 ‘연예인’ 같은 존재다. 인싸가 참여해야 학과 행사가 진정 ‘흥’할 수 있고 인싸없는 뒤풀이 자리는 김빠진 콜라다. 인싸는 모임에서 활발함의 대명사로 통한다.
박동우 학생(가명·사회대)은 각종 학과 행사, 동아리 등을 종횡무진하던 대표적인 인싸였다. 그는 새내기 시절 고등학생 때 기대했던 대학생활을 온몸으로 즐기고 싶었다. MT, 주점은 물론 농활까지 학과행사라면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했다. 
 
  차츰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싸로 각인된 그는 각종 과 행사, 술자리에서 ‘부르기 쉬운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밥 먹자는 후배부터 시작해서 곤히 자고 있던 새벽에 난데없이 불러내는 선배들의 술자리까지. 그를 향한 러브콜은 쉴 틈 없이 몰아쳤다. “원치 않는 자리라도 의무감에 참석하다 보니 정작 제 시간이 없더라고요.” 즐거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임했던 과생활이 나중에는 그에게 ‘의무’라는 족쇄로 돌아왔다.
 
  자타가 공인하는 인싸 이현근 학생(가명·사회대)은 활발한 이미지 때문에 겪는 괴로움을 호소했다. 재수해서 다른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는 유쾌한 행동으로 사람들이 찾는 분위기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곧 그에게 항상 남들을 재미있게 해줘야 할 것 같은 강박으로 작용했다. “굉장히 기분이 안 좋은 날에도 술자리에 참석하면 분위기를 띄워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항상 유쾌해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그는 문득 스스로가 ‘광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분위기메이커였지만 그 이면에는 유쾌하지 못한 속내가 감춰져 있었다.
 
 만두피처럼 얇은, 영혼 없는 인간관계
  인싸로 ‘활약’하던 박동우 학생에게 어느 날 짙은 고독감이 찾아왔다. 누군가 그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 아는 사람은 많지만 진짜 내 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의 고독감을 심화시켰다.
 
  그에게 관계의 얕음이 피부에 따갑게 와 닿았던 순간은 대학에서 사귄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났던 자리였다. 그는 군대 휴가를 나온 친구를 만났을 때 자주 만나던 때와는 달리 눈을 마주치기 힘든 어색함에 진땀을 뺐다. 자주 볼 때는 꽤 친하다 생각했으나 막상 오랜만에 만나보니 그전에 쌓아놨던 친분이 모두 희석돼 버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색함을 없애보려고 괜히 더 친한척하며 애써 노력했어요.”  
 
  대학생활을 알차고 재밌게 보냈겠다는 말을 들으면 씁쓸한 웃음이 난다는 그는 최근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인싸로 생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바쁘고 피상적인 인간관계에 지치거든요.” 
 
 인싸도 돈이 있어야 인싸다
  인싸들은 의무감에 힘들고, 피상적인 관계에 괴로운 철학적 고민 외에 금전적 문제라는 현실적 고민도 고백했다. 김민석 학생(전자전기공학부 2)은 여느 인싸들처럼 학생회, 수시 전형 모임, 소모임 등 5개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모임이라면 으레 갖게 되는 뒤풀이 자리들은 그에게 즐거움과 함께 금전적 부담까지 안겨줬다. “한 번은 돈이 없어서 다른 이유를 대고 뒤풀이 자리를 빠진 적도 있어요.”
 
  김채희 학생(가명·사회대) 또한 돈이 너무 많이 ‘깨진다’며 인싸 생활의 고충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개강총회 회식비만 해도 1차, 2차 옮길 때마다 2만 원씩 걷는데 추가로 후배들 밥 사주고 하면 돈이 남아나질 않아요. 특히 밥만 얻어먹고 ‘먹튀’하는 애들은 밉기까지 하죠.”
 
  모임의 핵심인 인싸들에게 뒤풀이는 안 갈래야 안가기 힘든 자리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3회 뒤풀이를 갖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뒤풀이 비용은 장소마다 보통 1만 원에서 2만 원 선. 2차까지만 참석한다고 치더라도 뒤풀이 한 번에 2~4만 원가량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한 달(4주)로 계산하면 최대 48만 원까지 뒤풀이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 대학생 월평균 용돈은 2012년을 기준으로 41만 2,775원(출처: 동아일보). 웃자고 갖는 뒤풀이 자리가 인싸들의 지갑 사정을 울게 만들고 있다. 
 
 가상현실에서 인싸의 덕목
  진정 인싸라면 현실에서는 물론 SNS상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야 한다. 페이스북에서 선배들을 친구 추가하고 안부 인사를 돌리는 건 기본이다. 선배나 아는 사람의 게시글에는 눈도장을 찍기 위해 ‘좋아요’ 조공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좋지 않아도 ‘좋아요’를 누르는 심정은 사랑하지 않음에도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치는 상담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이 하나도 없는데 괜히 페이스북에 사람들을 태그하고 댓글을 남기곤 해요.” 이지수 학생(가명·사회대)은 의무적으로 글을 달아줘야 할 것 같은 SNS의 귀찮음을 지적했다. 이지수 학생의 친구 목록에는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록돼 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올라오는 사람들의 글에 호응해주고 댓글을 달아주다 보면 SNS는 그 자체로 피곤한 ‘업무’다. “모두가 보는 공간이다 보니 쓸데없는 글이라도 맞장구쳐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녀에게 SNS는 가식적인 표현들의 집합체였다. 솔직하기 힘든 SNS는 그녀에게 씁쓸함만을 가져다준다.  
 
  이준규 학생(가명·사회대)은 SNS에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라서 고민이다. 그는 SNS상이더라도 선배가 친구 수락을 하면 선배에게 인사글을 남기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상식은 선배마다 다르게 통했다. SNS상에서 인사글을 남기면 ‘민망하게 무슨 글까지 올려?’라고 타박을 하는 선배가 있는 반면 인사글을 올리지 않으면 섭섭하다는 선배도 있었던 것. “선배마다 특성이 달라서 맞추기가 힘들었어요.” 선배의 게시글을 보면 그냥 지나쳐야 할지 짧게나마 댓글이라도 적어야 할지 고민되는 그에게 SNS에서 인싸로 살아남기란 아직 너무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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