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학기 시작 바로 전, 흑석동 캠퍼스 내 어느 화단에서 목 부위에 부상이 심한 어린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 날은 고양이를 구조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가 없어서 구조를 못 하고, 그 다음 날부터 3일 정도 구조준비를 하고 몇 시간씩 기다렸지만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구조를 포기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가 없어서 마지막 날 화단 옆 건물의 관리자 선생님께 여쭤본 결과, 그 어린 고양이는 제가 봤던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타났었다는 말씀과 더불어 저를 충격에 몰아넣은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졸업시즌이 되면 키우던 반려동물을 캠퍼스에 버리고 가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로 연극학과가 위치한 동숭동(대학로)에서 수업을 하기 때문에 그런 사정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네가 길들인 것에 넌 언제나 책임이 있어’라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은 대학생이면 거의 다 알고 있을 법한데,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나 책임감도 없는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다니…. 상아탑이니, 지성인이니 하는 그런 말들이 더없이 공허하게만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사람으로서 뭔가 잘못했다는, 일종의 죄책감과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마음의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신 후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는데, 사실 딱히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내에 동물보호동아리 같은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학내외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나 교직원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되고, 무엇보다도 주인 없는 길고양이나 개를 구조하는 것이 뜻과 의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은 애초에 끝까지 책임질 자신과 결심도 없이 반려동물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감을 이야기하면 늘, “부모도 자식을 버리고, 그보다 더 흉한 일도 허다하게 일어나는 세상에서 동물을 책임지는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인지” 또는 “세계적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을 먼저 구제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은 아닌지”의 논지를 가진 논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문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고자 합니다. 또다시 졸업시즌이 된 지금,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있거나 반려동물과의 삶을 그려보는 분들께 자그마한 울림이 되었으면 합니다.
 
  “True human goodness, in all its purity and freedom, can come to the fore only when its recipient has no power. Mankind's true moral test, its fun damental test (which is deeply buried from view), consists of its attitude towards those who are at its mercy: animals. And in this respect humankind has suffered a fundamental debacle, a debacle so fundamental that all others stem from it.”
 
민병은 교수
연극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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