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렵다. 이정하 시인은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고 사랑을 말했지만 막상 사랑이 덮쳐올 때면 두려움부터 앞선다. 이제까지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릴까 봐 그 물살에 몸을 맡기기 힘들게 된다. 야심한 시각, 중앙마루에서 홀로 맥주를 마시는 여학생 역시 사랑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수심에 젖은 그녀는 어떤 사랑의 파도를 만난 것일까.

  -본인은 어느 학과의 학생인가.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무섭다. 서라벌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긴 한데 그냥 한밤의 맥주녀 정도로만 해달라.”
  -사람들이 몰랐으면 하는 고민이 있나 보다.
  “말하기 힘든 고민이다. 안 그래도 어제오늘 청룡연못만 뱅뱅 돌면서 속으로 삭이고 있었다.”
  -어렵겠지만 이번 기회에 속 시원히 얘기해 달라.
  “사실 나에게는 1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있다. 여태까지 남자관계가 잘 풀린 적이 드물어 남자친구가 없다시피 지냈는데 이번에는 정말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자친구는 어떻게 만났나.
  “같은 동아리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었다. 남자친구가 고백을 해서 결국 커플이 됐다.”
  -어떤 사람인가.
  “안정적이고 듬직한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뭐 엄청나게 재밌고 고민을 잘 들어주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속정이 깊은 사람이다.”
  -그런데 뭐가 고민이 되는 것인지.
  “계절학기를 듣다가 수업에서 한 남자(계절남)를 알게 됐다. 일부러 접근한 것이 아니고 물어볼 게 있어서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됐는데 찰나의 순간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그전에는 관심도 없었다가 이야기를 하면서 반했다고 해야 하나. 나도 모르게 평소 고민을 다 말해버렸다.”
  -원래 충동적인 성격인가.
  “나도 잘 이해가 안 된다. 남자친구가 있기 때문에 여태까지 다른 남자들이 대쉬해도 다 거절했었다. 그런데 그땐 뭔가에 홀린 듯이 ‘이것도 인연인데…’라고 말하며 번호를 물어보게 됐다.”
  -남자친구와의 권태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다. 남자친구와는 서로 잘 싸우지도 않고 싸우더라도 바로바로 화해를 한다. 그냥 오롯이 나에 대한 문제다. 괜히 흔들려서….”
  -계절남은 어떤 스타일인가.
  “지금 남자친구와는 정반대다. 약간 가벼워 보이면서도 웃기고 재치가 있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대화가 잘 통해서 좋아하는 건가.
  “말이 잘 통하기도 하지만 개성 있는 이미지가 매력적인 남자다. 느낌이 있는 외모의 소유자다. 약간 권상우를 닮았는데 선이 좀 더 곱상한 편이다.”
  -미남인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잘생긴 것 같기도 하다.(웃음)”
  -좋아하는 마음인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인가.
  “명확하지 않다. 많은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잠깐 만난 것뿐이다. 처음 느끼는 생소한 감정에 나 스스로도 충격을 받은 상태다. 그래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계속 알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영화에 나올법한 사랑이 온 것 같다.
  “그런 것 같으면서도 또 확신을 못하겠다. 어제 느꼈던 감정이랑 오늘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첫날은 너무 격정적인 상태여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는데 오늘은 한결 차분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 감정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감정이 사라지면 아쉽지 않겠나.
  “아쉬울 것 같다. 지금은 고민이 깊어서 힘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뒤늦게 이 감정을 놓치고 후회하긴 싫다.”
  -적극적으로 다가가 볼 생각은 없는지.
  “가볍게 커피나 한 잔 하자고 말을 걸어보고 싶다. 한편으론 그 제안을 하는 순간 계절남에 대한 내 마음을 확신하는 것 같아 부담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남자친구에 대한 죄책감에 망설여진다. 우연히 마주쳐서 이야기라도 다시 해보면 좋겠다.”
  -계절남은 본인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나.
  “짐작도 못하겠다. 카카오톡 대화명에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게 나에 대한 건지 그냥 써 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서로 잠깐 이야기만 한 사이니까 계절남은 나를 수업 같이 듣는 사람 정도로 여길 것 같다.”
  -확신도 없는데 위험 부담이 너무 커 보인다.
  “맞다. 이제껏 가장 안정적이었던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제일 걸린다. 또 하루 종일 취업에 매달려도 부족한 시기에 이 고민 때문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친구들이 스터디 하자고 연락이 와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태다.”
  -정말 쉽게 터놓을 만한 고민이 아닌 것 같다.
  “평소에는 이런 순간적인 감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가벼운 관계일 뿐이고 외모만을 보고 사귀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번 일로 가치관에 혼란이 생겨버렸다. 내 자신을 이해하기 힘들고 너무 부끄럽다.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다들 나를 욕할 것 같다.”
  -앞으로 계속 고민할 것인가.
  “이 감정이 어떻게 변할지 더 지켜보려 한다. 시간이 지나면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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