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없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작곡가가 있다. 그에게 있어 음악성을 저버리고 결과만을 좇는 기능적인 음악은 거짓을 흩뿌리는 소리일 뿐이다. 사람들을 현혹하는 음악이 아닌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 스스로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영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황상준 동문.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인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 사진 박가현 기자
 

노래를 사랑했던 소년
음악감독이
되다
 
음악이 가진 힘으로
영화에 살을
더하다
 
 
  시나리오를 받고 신의 한 수를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은 오선지 위에 옮겨져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된다. 영화 <천군>, <식객>, <댄싱퀸>에서부터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 <무신>까지. 그의 음악이 더해진 영상은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명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달 6일 개봉한 영화 <해적>의 흥행에 돛을 달아준 황상준 동문을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7월 말까지 <해적> 음악 작업을 하느라 바쁜 여름을 보냈다. 지금은 다음달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맨홀> 음악 작업 중에 있다. <맨홀>은 실종사건이 발생하자 주인공들이 그 실체를 밝히기 위해 맨홀에 들어가며 겪는 일화를 담은 영화다.”
-<해적> 흥행을 예상했나.
“<해적>은 작업하면서 흥행에 성공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작품성, 상업성 모든 면에서 대중이 좋아할 만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빨리 개봉한 <명량>이 선방하면서 아직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웃음)”
-<해적>의 음악 성향이 궁금한데.
“<해적>은 사극이면서도 한편으로 판타지적 요소가 내재돼 있어 현대물의 느낌이 난다. 순수 사극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꽹과리를 활용해 현대 음악에 한국의 정서를 가미했다. 일반적인 할리우드식 액션 음악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일부 곡들에는 한국적인 분위기가 배어 있다.”
-한국의 정서가 담긴 음악이라면.
메인테마 액션 음악 중에 뱃노래가 있다. 영화가 시작하고 거센 풍랑을 헤치는 배와 함께 어이야 디야 어이야 디야하는 노 젓는 노래가 나온다. 이 노래를 만들 때에는 옛날 뱃노래들을 귀에 달고 다녔다. 합창단과 국립 창극단에서 창을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을 섭외해 녹음을 했다.”
-뱃노래가 중요한 역할은 했나.
단언컨대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끔 라이트 모티브라는 영화적 장치를 사용했다. 적대자들에 의해 주인공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아군의 지원군이 등장한다. 바로 그때 노 젓는 노래가 나오는 것이다. 전세가 역전되는 상황을 보며 관객들은 뱃노래의 한 구절만 들어도 등줄기가 오싹하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특히 주의를 기울였던 부분이 있다면.
고래가 등장하는 매 장면마다 음악에 신경을 썼다. 고래는 후반 작업에서 100%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오로지 시나리오와 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동물이었다. 이석훈 감독님이 고래를 잘 부탁한다고 당부도 하셨는데 실체가 없는 동물을 대상으로 음악 작업을 하려니까 손이 많이 갔다. 고래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황상준 동문은 배우 황정민의 동생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영화 음악을 대표하는 음악감독으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의 그는 형과 함께 사고를 치고 다녔던 해맑은 장난꾸러기였다.
-형제 간 우애가 돈독한 것 같다.
둘도 없는 형제 사이다. 한 번은 초등학생 때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고학년 형들에게 쫓겨난 적이 있었다. 형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형이 운동장에 와서 누가 내 동생에게 뭐라고 그랬냐고 편을 들어줬다. 운동장으로 걸어오는 형을 보고 있는데 북적였던 운동장이 홍해 갈리듯 양쪽으로 나뉘면서 조용해졌다. 체격이 좋았던 형을 아이들이 무서워했던 것 같다.(웃음)”
-장난꾸러기 형제였나.
말썽꾸러기 아들들이었다. 주말이면 어머니는 동네 극장에 가서 놀다 오라고 우리 손에 500원짜리 지폐 1장을 쥐어주셨다. 교육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 말썽꾸러기들이 집에서 2배로 말썽을 피우니까 내놓으신 묘책이었다.(웃음) 2편을 동시 상영하는 영화관에 가서 <사형도수>, <취권>과 같은 쿵푸영화를 보고 나면 금세 대여섯 시간이 흘렀다. 영화를 보고 출출해진 배를 소라과자로 채우며 집에 돌아가곤 했다. 자연스럽게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
-형제가 영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예술적인 기질이 다분한 집안이었던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다양한 음악을 듣고 자랐다. 어머니는 늘 집에서 라디오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으셨다. 아버지 앞에서 피아노로 재즈곡 연습을 하다가 듣게 된 사실이지만 젊은 시절 아버지는 재즈 연주가로 활동하신 경력이 있었다. 우리 형제가 사고를 칠 때마다 어머니가 들었던 나무 회초리도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드럼 스틱이었다. 형과 합심해서 회초리를 몇 번 내다 버린 적이 있었는데 어쩐지 자꾸 우리 앞에 나타났다.(웃음)”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있나.
바이올린, 기타, 피아노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안다. KBS 어린이 합창단으로 활동했던 형을 자주 따라 다녔는데 어린이 합창대회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또래아이를 목격했다. 생전 처음 보는 악기와 그 소리에 반해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버렸다. 유복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에게 부탁드려 6살 무렵 처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바이올린이 적성에 맞던가.
“1년을 배우니 싫증이 났다. 그만두고 싶다며 보름 이상을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욕심을 갖고 시작한 일인데 쉽게 포기하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바이올린을 배웠다.”
-노래를 해보지는 않았나.
중학생 때부터 밴드에서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고등학생이 돼서야 제대로 된 밴드를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인 작은 밴드로 공연할 때 폼이 나는 락이나 메탈 음악을 선호했다. 그 시절엔 내가 노래를 정말 잘하는 줄 알았다.(웃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는지.
집안에 난리가 났다. 부모님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셨나 보다. 처음에는 절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내가 한 고집하는 성격인 걸 알고 계셨기에 타협안을 내놓으셨다. 음악을 하는 건 허락해주겠으나 체계적으로 공부해서 음악으로 대학에 진학하라는 조건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음악 공부를 시작한 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작곡 공부와 화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피아노도 늦은 나이에 배우느라 고생을 했다. 매일 3~4시간을 피아노 연습에 투자했다. 학교 공부와 음악 공부를 병행하며 입시를 준비하려니 몸에 부담이 와서 병을 얻었다. 천식은 물론이고 얼굴이 마비되는 구안와사도 앓았다.”
 
▲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 미소짓고 있는 황상준 동문. 이 피아노로 자녀들을 지도하곤 한다.
  황상준 동문은 중앙대 음대 진학에 성공한다. 그는 작곡과 학생이면서도 연극영화학과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며 음악감독의 꿈을 키워 나갔다. 첨단영상대학원에도 진학하여 영화적 관점에서 작품을 분석하는 안목을 갖출 수 있었다.
-원하던 음대에 입학했는데.
음악을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했지만 직접 학교를 다녀 보니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대학에 오기만 하면 음악적인 배움의 욕구가 뻥 뚫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학문적 성취에 대한 상실감을 느껴서 현장으로 눈을 돌리게 됐던 것 같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작업을 하는 것이 좋았다.”
-당시 현장을 기억하나.
연극영화학과 워크샵 작품으로 <Fame>이라는 뮤지컬이 있었다. 원래 음악감독을 맡았던 사람이 군대에 가는 바람에 내가 대신 음악감독을 하게 됐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뮤지컬 전곡을 편곡하고 중간에 들어가는 스코아 음악과 백그라운드 음악을 작곡했다. <Fame>은 음악감독으로서 내 인생에 가장 큰 기회였다. 이 때 사귄 연극영화학과 친구들의 단편영화부터 시작해 뮤지컬, 졸업영화를 책임지며 음악감독으로서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여행 동아리 유스호스텔에도 가입했다. 아내와 나를 이어준, 애정이 깊은 동아리다. 요즘도 동아리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휴가를 다녀왔다. 내가 <해적> 작업이 밀려서 시간이 도저히 안 된다고 하니까 친구와 후배 한 놈이 집에 쳐들어와서 아내와 아이들을 싣고 떠나 버렸다. 새벽에 가까스로 일을 끝내 놓고 바로 가족들을 따라갔다.(웃음)”
-1999년 영화 <쉬리>의 트레일러 음악에 참여했는데.
작곡가로서 영화 <쉬리>의 일부분에 참여했던 것이다. 트레일러 영상에 내 음악이 삽입됐다. 학부생 시절 함께 작업했던 연극영화학과 선배들에게 나눠 줬던 액션 음악 데모 CD가 빛을 발했다. 당시에는 현장 편집이 불가능해서 제작진도 영화 중간에 제작되는 가편집 영상으로 자신의 작품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PD를 맡았던 친한 선배가 가편집 영상을 만들면서 내 음악을 넣었다. 영상을 보고 제작진의 반응이 엄청났다고 들었다. 다들 좋아하니까 강제규 감독님이 이 음악을 트레일러에 쓰자고 하셨다. 본인들의 영화를 처음 봐서 들떠 있었던 덕을 본 것 같다. 비록 예고편이었지만 극장에서 들었던 나의 첫 번째 노래라 잊히지가 않는다.”
-음악감독으로서 첫 작품은 무엇이었나.
“2000년 개봉한 영화 <은행나무 침대 2-단적비연수>가 내 첫 작품이었다. 흥행에 성공한 편은 아니었지만 제38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안겨준 고마운 영화다. 영화제 당일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워낙 신인이었기 때문에 수상은 생각도 못했다. 내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듣고 놀라서 벙쪄 있다가 타이밍을 놓쳐 직접 상을 받지 못했다. 뒤늦게 무대로 나가려 했는데 레드 카펫을 밟고 나가기 부담이 돼서 다른 길을 찾다가 결국 늦어버렸다. 무대에 도착한 순간 영화제 1부가 끝나고 초청 가수의 공연이 시작됐다.(웃음)”
-<단적비연수>의 음악감독을 어떻게 맡게 됐나.
“<쉬리> 제작진에 있었던 박제현 감독님의 감독 데뷔작이 <단적비연수>. 박제현 감독님은 <쉬리> 트레일러 음악을 만들었던 나와 작업하고 싶다는 입장이었는데 강제규 감독님이 반대하셨다고 들었다. 신인에게 큰 프로젝트를 맡기기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강제규 감독님이 추천한 후보 1명과 내가 경합을 하게 됐다. 데모판을 받아 더 나은 사람의 음악을 쓰기로 한 것이다.”
-경합에서 승리한 건가.
그렇다. 다행히 정식 공고가 내려오기 전 <단적비연수> 연출부에 있었던 친구들이 데모판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을 미리 귀띔해줬다. 덕분에 메인테마 음악 작업을 철저하게 해둘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곡 작업에 임했다. 내가 만든 메인테마가 실제 <단적비연수>의 메인 음악이 됐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가 뭔가.
음악감독으로서의 감과 기술은 있었지만 영화를 체계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2005년 첨단영상대학원 영화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원에서 수학하며 음악감독으로서의 자만심과 부담감을 덜 수 있었다. 29살이라는 나이에 가르쳐주는 사수 없이 3,40대 쟁쟁한 선배들과 경쟁을 하다 보니 실전에선 무엇 하나 실수하면 안 되고, 남에게 쉬워 보이면 안 된다는 자격지심이 있었다. 대학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작품을 함께 하면서 많이 반성을 했다.”
-영화를 배움으로써 본인의 음악관에도 발전이 있었나.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내 음악이 한 단계 발전했다는 것을 체감했다. 영화감독과 음악 작업을 상의할 때 모호하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연출의 의도에 맞는 음악에 대해 의견을 정확하게 나눌 수 있게 됐다.”
-존경하는 뮤지션이 있다면.
이탈리아의 작곡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들으며 영화 음악감독에 대한 꿈을 키웠다.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 <The Mission>의 음악을 담당했던 분이다. 존경하는 음악가가 한 분 더 있다. 바로 내 은사이신 조인선 교수님이다. 내가 영화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셨고 현대 음악이나 클래식 공부에도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영화 음악을 깊이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다양한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조언해주셨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황상준의 처음과 끝이다. 처음 시작한 음악 생활도 중앙대를 통해서였고 중앙대에서 강의를 하며 음악 선생님이라는 미래의 꿈도 꾸게 됐다. 나의 음악적인 면들 중에서 겸임교수로서의 모습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다. 권위적이지 않으며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선생님으로서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다. 우리 딸아이와 두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분교의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하다. 언젠가는 학생들을 포근히 감싸주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주요 참여 영화
2014 해적 : 음악감독
2014 조선미녀삼총사 : 음악감독
2012 댄싱퀸 : 음악감독
2009 그림자 살인 : 음악감독
2008 미인도 : 음악감독
2007 궁녀 : 음악감독
2006 식객 : 음악감독
2005 천군 : 음악감독
2002 울랄라 시스터즈 : 음악감독
2000 단적비연수 : 음악감독
1993 쉬리 : 트레일러 음악 작곡
1993 굿바이 서울 신파 : 음악감독
 
  ■주요 참여 드라마
2012 무신 : 음악감독
2010 로드 넘버원 : 공동 음악감독
2010 추노 : 작곡 참여
2008 달콤한 인생 : 공동 음악감독
2008 과거를 묻지 마세요 : 음악감독
2007 개와 늑대의 시간 : 음악감독
2006 그 집엔 누가 사나요? : 음악감독
2005 신돈 :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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