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 대해 생각조차 못하게 만드는 현실

‘공부하는 운동선수’ 가능성 보이기 시작해

  지난 2009년 체육과학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교 2학년에 운동을 포기하는 선수의 비율이 44.9%다. 보통 운동선수가 운동을 시작하는 시기가 초등학생이라고 잡는다면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시절까지 약 십여 년간 운동을 한다.

  하지만 십여 년간 해왔던 것들을 놓아야 했을 때, 선수들이 느끼는 막막함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운동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선수들.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진로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과연 이들의 불안한 미래는 무엇이 만들었는가? 

  생각을 못 하게 만드는 현실
  우리나라의 운동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주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준다. 언제 밥을 먹는지, 언제 훈련을 할 것인지, 어느 학교에 갈 것인지 등 선수 개인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름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대학교나 프로에 올라가게 되면 선수들은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된다. 또한 운동이 아니라 공부로 전향하더라도 운동선수들은 학생의 자율성에 따라 운영되는 대학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의 최익성 대표는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을 하는 현실을 보다 못해 직접 맞춤형 교육을 하는 기관을 설립하게 됐다. 최익성 대표는 “우리나라는 선수들이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자체도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면 야구에 대한 선택이나 야구선수 이후의 삶에 대한 선택도 쉬워진다”고 말했다. 
 
  사회적 인식의 문제

  스포츠 팀을 가지고 있는 학교가 스포츠를 바라보는 인식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스포츠가 해당 학교에 가져다주는 영향력에 대해 학교가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익성 대표는 “학교들이 의대나 법대만 신경을 쓸 뿐이지 과연 다른 학과에 비해 스포츠에 대해서 신경을 써봤는지는 의문이다”며 “학교 측에서 스포츠에 신경을 써서 학업과 스포츠를 병행하는 선진국의 학교들이 어떻게 스포츠를 운영하는지 보고, 배워서 직접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선진국의 교육방법이나 스포츠 팀 운영방법들을 들여와서 운동선수들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인식도 운동선수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운동선수 출신이 무엇을 알겠느냐?’라는 인식이 운동선수들이 다른 길을 찾는데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주위의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적 인식을 바꿔달라고 하기보단 운동선수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며 “스스로가 바뀌어야지 사회적 인식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좁은 선택의 폭
  선수 출신으로 직업을 구하려고 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넓지 않은 것도 하나의 문제다. 스포츠에도 스포츠마케팅, 스포츠심리학, 스포츠행정 등 여러 분야가 있지만 정작 운동선수 출신들이 해당 분야에 많이 진출하고 있지는 않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운동선수 출신으로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사람들이 나타나 롤모델이 돼야 운동선수들도 새로운 꿈을 가질 수 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지도자들이 선수들이 운동만 바라보게 만들어 새로운 꿈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해소할 방안은?
  약 10년 전부터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단어가 매스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유소년 선수들이 주중에는 공부만 할 수 있게 주말에만 경기를 치르도록 하는 ‘주말리그’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이런 제도들이 도입됨에 따라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키우기 위한 대표적 제도인 주말리그도 갑작스럽게 학생들에게 선택권도 없이 도입되다 보니 선수들이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이다. 축구부 조정호 감독은 “우리나라 공교육을 보면 일반학생들도 수업시간에 다 자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운동선수한테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부하는 운동선수에 대해서 제도적으로 미흡한 부분만 보완한다면 선수들의 장래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제도적인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현재 이 공부하는 운동선수에 대한 성과들이 나타나고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며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을 고쳐서 계속 공부하는 운동선수에 대한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운동선수 출신이 새로운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호주의 ACE(Athlete Career and Education) 프로그램은 운동선수가 진로를 전환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운동선수들이 쉽게 제2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호주뿐만 아니라 현재 영국, 미국, 아일랜드 등 은퇴선수나 운동을 그만둔 선수들을 위해 정부의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대한체육회 등에서 은퇴선수들이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나 업적이 높은 선수들을 선호하기 때문에 중간에 전향한 선수들의 경우에는 기회를 잡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들을 더 많이 도입하고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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