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한 줌에 감성의 숨결을 불어넣다
  • 조가희 기자
  • 승인 2014.06.08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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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대생이 사는 법 - 백은규 학생(공예학과 4)

▲ 자신이 직접 만든 <NO.567> 을 안고 작업실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백은규 학생.
▲ <균열의 시작> -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내 마음 속 상처만이 내 감정을 대변한다.
▲<Medusa> - 점점 개인주의적 성격을 띠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판했다.

  도자기에 감정을 불어넣는 예대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짜고짜 공예학과 작업실을 찾아갔다. 뿌연 흙가루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아우라를 내뿜는 아이언맨이 보였다. 어째서 아이언맨을 만들었냐고 물으니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했단다. 감정에 충실한 백은규 학생(공예학과 4)의 섬세한 손길을 거쳐 자잘한 흙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변모했다. 그가 작품에 감정을 실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에서만 보던 아이언맨을 본인만의 느낌으로 만들어냈다.
“도자 조형으로 만들어봤다. 아이언맨의 눈과 가슴에 LED 조명을 장착해서 불빛도 나온다. 실제 아이언맨과 너무 똑같으면 재미없어서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만들었다. 영화 <아이언맨>의 초기 모델부터 시작해서 시즌별로 만들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아직 진행 중이다.”

-조명까지 넣어서 아이언맨을 만들었다는 점이 독특한데.
“사실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아이언맨 외부에 칠해진 금속 색깔은 차가운 느낌이지만 내부에 장착된 전구는 따스한 느낌을 준다.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생기가 돌며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 감정이 없어 보이는 차가운 아이언맨 안에 조명의 불빛으로 생기를 불어넣어서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기분을 표현했다.”

-유독 화난 표정의 도자 조형이 인상적이다.
“애매한 표정보다는 강렬한 표정이 좋다. <균열의 시작>이나 <진격의 균열> 제작 당시 작품에 금박을 입힌 것도 힘든 시기에 받은 상처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힘들었던 시기라서 작품에 감정이입이 더 잘된 것 같다.”

-힘들었던 시기라면.
“1년 동안 나쁜 일들이 겹쳤다. 예술을 하면서 앞으로 먹고 살 수 있는지, 내가 재능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친구와의 다툼도 있었고 여자친구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화난 표정을 가진 작품을 만들 때 더욱 분노가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내가 겪어온 힘들었던 경험이 작품에 담겨있다.”

-감정을 실어서 작품을 만들 때 특별한 표현 기법이 있는지.
“작품을 만들 때마다 느꼈던 감정이 작품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감정에 따라 작품에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만약 연애를 했다면 상처를 표현하려고 금박을 입히기보다는 다른 표현기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작품에 감정을 투영시키면서 좋았던 점은.
“사람의 순수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악감정이 생기거나 성적으로 매력을 느낀다고 그 감정을 직접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서라면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마음껏 작품에 반영시킬 수 있다.”

-공예학과의 전공들을 모두 활용해서 작업한다고 들었다.
“공예학과는 도자·염색·목공·금속의 총 4가지 전공으로 나뉜다. 4가지 세부 전공을 전부 배우려고 목공·금속 전공에서 도자·염색 전공으로 바꿨다. 전공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다 배워서 그런지 모든 전공의 장점을 살려서 작업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들이 주로 도자 조형이다. 도자공예로 만든 작품의 제작과정은.
“얼굴의 기둥은 물레를 돌려서 만들고 머리 부분은 따로 조각한 뒤에 속을 팠다. 머리를 얼굴 기둥에 부착하고 열흘 정도 말리다가 가마에 굽는다. 보통 도자기를 보면 겉면이 코팅한 것처럼 반질반질하게 빛나는데 유약을 발라주기 때문이다. 금박 흉터는 접착제를 발라서 붙였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겠다.
“작품을 만들 때 변수가 많다. 신경쓸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자기 같은 경우는 흙의 두께에 따라서 가마에서 굽다가 갈라지고 터지기도 한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짧으면 이틀, 길게는 2주 정도 걸린다.”

-작품에 얽힌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은데.
“공모전에 <진격의 균열> 작품을 내고 1차 심사를 통과한 후의 일이다. 작품을 제출하기 이틀 전에 친구가 가운데에 위치한 작품을 깨고 말았다. 작품의 중심에 위치해서 공을 많이 들였던 작품이었다. 속으로 막 욕을 하면서 이틀 밤을 꼬박 새워 다시 그 작품을 만들었다. 막상 만들고 나니 처음에 만들었던 것보다 화난 표정이 더 강조됐더라.(웃음)”

-감정이 녹아든 작품을 계속 만들게 되는 이유는 뭔가.
“내 작품을 보는 대중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다 보니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아서 개인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가는 이유도 있다. 작업성애자라고 불릴 정도로 학교에서 살다시피 한다.(웃음)”

   감정이 표현된 작품엔 백은규 학생의 열정도 살아 숨쉬었다. 그의 열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중과 작품이 만나는 전시회에서 그의 예술품들은 확연하게 빛을 발한다. 다양한 전시회를 다니면서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기려는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작품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나.
“이미지 조사를 많이 한다. 괜찮은 이미지를 찾으면 작품에 응용해도 되겠다는 영감을 받으면서 작품 제작을 시작하게 된다. 끌리는 데로 이미지를 고른다고 보면 된다.”

-손수 만든 작품을 주로 어떻게 선보이는지.
“전시회에 전시하거나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한다. 언제는 작가가 아닌 척하고 내 작품이 전시된 전시회에 가서 관찰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작품을 보고 가더라. 궁금증을 자아내는 짧은 한 줄의 작품 설명을 비치해 놨더니 작품이 어떤 느낌인지 짐작하면서 다시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각 작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 이유는.
“전시회를 많이 가보니깐 알게 되었다. 전시회에서 사람들은 작품과 제목만 보고 바로 지나치더라. 전공자가 아니면 작품 설명을 잘 안 읽게 된다. 우연히 의문문 형태로된 한 줄 작품 설명을 보게 됐는데 작가가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또 보게 됐다. 내 작품도 사람들이 한 번 더 보도록 짧은 설명 한 줄만 비치했다.”

-기억에 남더라도 한 줄의 설명만 보고는 작품을 이해하긴 어렵겠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작품을 남기고 싶었다.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는 나만 알고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며 물어봐도 일부러 말을 안 한다. 작품의 제목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도 있다.(웃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팔기도 했다던데.
“소속된 회사에서 팔아주는 경우도 있고 지인들이 사가고 싶다고 하는 경우에 판다. 작가의 작품은 팔려야 먹고산다. 그래도 정말 아끼는 작품은 집에 고이 모셔둔다.”

-작업한 작품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는지.
“항상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순간의 감정에도 충실했으면 한다.”

   한창 방황했던 고등학생 시절을 거쳐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가로 거듭난 백은규 학생. 독특한 작품이 주목받으면서 현재는 신인 패턴 디자이너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앞으로 사랑스러운 감정을 작품에 담아보고 싶다는 그는 또다시 어떤 작품을 빚어낼까.

-처음부터 예술가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나.
“사실 고등학교 땐 공부도 못하는 문제아였다. 다른 수업시간에는 친구들과 떠들고 장난쳤지만 미술 시간만큼은 조용히 수업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학교 미술 선생님께서 미술을 해보자고 하셔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중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땐 다른 친구들보다 미술을 잘했었나 보다.”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공예를 선택한 이유는.
“가족 중에 순수미술을 전공한 분이 많기도 했고 원래부터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선 그 분야에서 먹고 살기 힘든 것을 알고 반대하셨다. 그러다가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공예학과를 지원해서 오게 되었다. 막상 왔는데 적성과 잘 맞아서 다행이다. 사실 공예과가 뭔지도 모르고 왔다.(웃음)”

-공예 예술의 매력을 꼽자면.
“굉장히 무한하다. 나는 공예 자체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도자기나 그릇에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못하는 게 없다. 건물까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나.
“현재 에이로그라는 회사의 신진 작가 발굴 프로젝트에 발탁돼서 패턴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올여름에는 제품 디자이너랑 콜라보레이션을 해서 제품을 만들 예정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멀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다음에 작품에 담아보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
“작품을 만드는 순간마다 감정이 달라져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소망이 한 가지 있는데 연애를 하면서 사랑스러운 감정을 담아보련다.(웃음)”


사진 박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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