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진 지난달 27일 화요일 10시경, 기자는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시민K를 찾아 서울캠 교정을 나섰다. 특히 이날 서울캠은 늦은 시간에도 주점에서 동기들,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음주가무의 분위기 속에서도 도서관을 찾는 학생들이 있을까 궁금했다. 중앙도서관 앞에 다다른 기자는 키스로드 벤치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통화를 하고 있는 한 남학생과 마주했다. 늦은 시간 전화통화를 하던 깔끔한 옷차림과 수려한 외모의 남학생은 기자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밤늦게까지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가.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다가 동기들이 불러서 장독대에서 술 한 잔 하고 왔다. 술 냄새를 풍기며 도서관에 들어가긴 미안해서 밖에서 잠시 쉬었다가 들어가려 했다.”
 
-몇 학번인가.
“기계공학부 14학번이다.”
 
-현역인가.
“재수한 14학번이다…”
 
-주점 시즌에 중도에서 공부하는 새내기는 보기 힘든데.
“과제도 과제지만 항상 술자리를 자제하려고 하는 편이다. 물론 노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성격이라 술자리에 많이 참석한다. 대신 1차만 가고 2차에서 빠지는 식으로 조절하고 있다. 새내기로선 나름의 절제 아닌가.(웃음)”
 
-대학에서의 첫 시험인 중간고사는 잘 치렀나.
“그냥저냥 잘 본 편이다. 엄청 잘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한 동기들과 거의 가깝게 잘한 것 같다.”
 
-기계공학부는 성적경쟁이 치열한 편인가.
“13학번 선배님들은 자유분방한 편이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내 동기들은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다. 동기들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다보니까 나도 덩달아 열심히 하게 된다.(웃음)”
 
-동기들이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한다는 말인가.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항상 뒷자리에 앉아 공부는 뒷전인 친구들도 있다. 잘하는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앞자리에 앉아서 강의를 경청하더라.”
 
-본인은 보통 몇 번째 자리에 앉는가.
“나도 무조건 첫 번째 자리에 앉는다. 지각은 절대 안하고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는 게 대학생으로서 내 철칙이다.”
 
-학업에 대한 본인만의 철칙이 확고해 보인다.
“재수할 때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했다. 재수할 때 들였던 공부 습관을 대학에서도 이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 어렵더라. 어려워도 나름대로 수업이나 과제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는 게 내 또 다른 철칙이다.”
 
-본인에게 재수가 인생의 큰 경험이었나 보다.
“재수를 하면서 인생관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 이 순간 하는 공부가 당장 좋은 결과를 낳을 순 없지만 그 노력이 언젠가 내 뼈와 살이 될 것이라는 것. 고3때 체대 입시를 준비하다가 이과로 전향하고 고된 재수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이다.”
 
-체대를 준비하던 학생이 이과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고1, 고2 때까지 이과공부를 하다가 고3때 체대 입시생으로 전향했다. 중학교 때 배드민턴 선수를 준비했던 게 고3때 돼서야 체대를 가고 싶은 마음으로 승화됐던 것 같다. 그런데 고3 12월 실기를 보름 남겨두고 배드민턴을 치다가 어깨가 탈골됐다. 수술까지 했지만 결국엔 체대 입시를 포기해야 했다.”
 
-배드민턴 선수였다면 프로선수까지 준비했단 것인가.
“중학교 때 대전 선수권 대회에서 은상을 타기도 했다. 그런데 항공과학과 박사까지 하셨던 아버지는 내가 체육을 하는 걸 심하게 반대하셨다.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체육인의 꿈을 잠시 접고 이과로 가게 됐다. 그래도 체육을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게 남아 고3에 올라갈 때 아버지께 체육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고3 막판에 어깨 부상으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재수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체대 실기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엉덩이 붙이고 공부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너무 힘들었다. 매일 운동하다가 갑자기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하려니까 좀이 쑤시더라.(웃음) 재수학원 근처에 운동할 곳은 한 군데도 없고, 그토록 좋아하던 배드민턴 라켓도 없고.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과장이 아니라 한 번은 4일 동안 햇빛을 안보고 공부만 한 적도 있었다.”
 
-재수 끝에 입학한 대학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눈물이 나더라.(웃음)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내가 중앙대에 들어올 실력은 못됐다. 수시전형에서 다 불합격하고 정시에서 마지막으로 붙은 대학이 중앙대 기계공학부다. 이건 자랑은 아니지만 서울대 출신이신 아버지는 내가 중앙대에 간 걸 탐탁치 않아 하셨다. 그래도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셔서 기분은 좋았다.”
 
-재수를 하면서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은 없었나.
“학기 초엔 다른 대학 주점에 가서 합석도 하고 술도 많이 마시면서 대학생활을 즐겼다. 그런데 요즘은 크루저보드를 타는데 재미를 붙였다. 대학에 들어오면 캠퍼스에서 보드를 타는 게 로망이었다. 기계공학부에 입학하니까 마침 보드를 타는 동기가 있더라. 나를 포함하여 보드를 타는 동기들 셋이서 학교 안팎에서 보드를 타고 다닌다. 가끔은 보드를 타고 한강까지 가서 맥주를 마시는데 진짜 행복하더라.”
 
-곧 대학에서의 첫 방학을 맞이하는데, 방중계획은 있나.
“고향인 대전에서 고3 학생들의 과외를 맡을 예정이다. 첫 한 달은 과외생들을 가르치면서 바짝 돈을 벌 생각이다. 나머지 한 달은 동기들끼리 전국 자전거 여행을 가려고 한다.”
 
-오늘은 몇 시까지 도서관에 있을 계획인가.
“과제를 다 할 때까지 있을 생각이다. 아마 밤을 샐 것 같다.”
 
 
 
 
 과제를 위해 밤을 새는 새내기가 있는가 하면 해방광장 벤치에선 애완고양이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학생을 볼 수 있었다. 중앙대 학생인지도 긴가민가했지만 흥미로운 시민K를 발견한 것 같아 기자는 바로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중문에서 자취를 하는데 고양이를 산책시키러 학교에 데리고 나왔다.”
 
-고양이는 언제부터 키웠나.
“올해 3월 말에 분양받았다.”
 
-고양이의 이름은 무엇인가.
“김처선이다.”
 
-김처선?
“친구가 지어줬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임금인 연산군을 모시는 환관의 이름이 김처선이다. 내 고양이도 환관과 비슷하게 중성화 수술이 된 채로 내게 분양됐다. 내가 다른 이름을 지어보기도 전에 친구가 고양이에게 김처선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실제 역사 속의 환관 김처선과 지금 내 애완고양이의 처지가 안타깝게도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한테 환관의 이름이라니.
“다른 이름을 지어줄까 하다가 친구가 계속 고양이한테 ‘처선아 처선아’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김처선으로 이름을 확정지었다. 환관도 원래 남자인데 불운한 사건을 통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 처선이도 원래 수컷이었는데 중성화 수술을 거쳤다. 그리고 내가 조선왕조의 성씨인 전주 이씨라서 나와 고양이와의 관계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웃음)”
 
-처선이와 사이가 좋아 보인다.
“전주 이씨였던 조선의 임금들은 환관들과 주종관계를 이뤘는데 나는 지금 주객이 전도됐다. 내가 처선이를 모시고 있는 상황이다.”
 
-주인으로서 처선이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떠한가.
“커뮤니케이션? 그런 건 없다. 그냥 처선이 밥 챙겨주고, 물 챙겨주고. 키운 지는 얼마 안됐지만 정말 예쁘게 키우고 있다.”
 
-이전에도 애완동물을 키워봤나.
“처선이가 내 첫 애완동물이다. 고양이를 좋아해 키우고 싶던 찰나에 우연찮게 들고양이를 분양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접하게 됐다. 페이지 관리자는 버려진 들고양이들을 모아서 보살피다가 새 주인들에게 고양이를 분양하시는 분이다. 나도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처선이를 분양받았다.”
 
-실례지만 소속이 궁금하다.
“전자전기공학부 08학번이다. 지금은 4학년 1학기를 다니고 있다.”
 
-08학번이면 상당히 고학번인데, 언제 전역했나.
“2012년 3월에 전역했으니 전역한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전역 이후에 본인의 생활에 있어 변화된 점이 있다면.
“입대하기 전에 1,2학년 때는 공부를 너무 안 해서 학점이 정말 안 좋았다. 전역하자마자 복학하고 3학년을 나름 열심히 다니다가 작년에 1년을 휴학했다.”
 
-전역한 남학생은 보통 미래를 준비할 만한데.
“원래는 전공보다 방송제작 분야로 진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동아리 ‘판’을 하면서 이게 내 진로와는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생각보다 방송계열에 열정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전공 쪽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이공계 학생이 방송쪽에 관심을 가지는 건 드문일인데.
“어렸을 적부터 방송제작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흥미는 있었지만 단순한 취미가 내게 더 잘 맞을 것 같다. 그렇게 결심하고 작년 휴학기간 1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나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회생활을 했던 게 휴학기간의 최고 수확이다.”
 
-08학번이면 학교에서 거의 최고학번이다. 2008년도의 중앙대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사실 내 새내기 시절은 너무 오래전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확실한 건 그때보다 지금의 신입생들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요즘은 1학년 때부터 취업 걱정을 하는 학생들이 있더라. 취업에 대한 걱정을 일찍부터 하고 동아리를 하려는 친구들도 좀 줄어든 것 같다.”
 
-08학번의 학내 인간관계가 궁금하다.
“졸업한 동기들도 많고 이제 선배들은 거의 보기 힘들다. 요새는 동아리 후배들이랑 잘 지내는 편이다. 동아리 신입생들과도 친해지려고 노력 중이다.(웃음)”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산책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매일 밤 10시에 나와서 1시간 정도 돌아다니다가 11시쯤에 집에 들어간다. 오늘도 처선이와 함께 산책을 조금만 더 하다가 집으로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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