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

여행자들은 보통 여행을 준비할 때 '어디로 여행을 가지?'라는 고민을 자주한다. 하지만 최근 일부 여행자들 사이에선 '어떻게 가지?'라는 새로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고민을 깔끔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여행이 등장했다. 바로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는' 여행인 공정여행이 그것이다.

 

▲ 공정여행가 한영준씨가 첫 공정여행으로 방문한 인도에서 아이들을 목마 태우며 놀고 있다. 사진제공 한영준씨

공정여행가들이 말하는

여행자의 참된 마음가짐

지역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여행

여행자가 쓴 돈이 현지인에게 돌아가는 정당한 구조
 
  여행의 시작은 대개 밟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 낯선 잠자리에 대한 설렘, 처음 먹어보는 음식의 향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결국 여행은 같은 하늘 아래 새로울 것 없는 돈의 규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본은 절대 가는 것 없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우리는 꼭 쓴 만큼 받길 원한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얻고 싶었던 것은 현지의 문화와 사람들이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지불한 액수에 합당한가라는 속물적 생각으로 뒤바뀐다. 이것에서 벗어나 참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길은 공정여행에 있다.
 
우리 동네에서 비롯된 소중한 시작 
  평범한 직장을 다니던 공정여행가 설재우씨는 그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서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북촌의 어깨 꽤나 하는 기와집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내뿜는 곳 서촌. 실개천처럼 이어진 골목과 옛스러운 분위기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설재우씨가 사랑하는 진짜 서촌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서촌과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서촌에는 결코 접합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사람들은 오래된 동네, 옛스런 장소,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관심 두지 않았다. 붐비는 사람들 틈으로 새로 생긴 카페, 음식점에만 관심 갖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서촌을 위협하는 파도였다. 그는 그것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설재우씨는 여행을 좋아했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를 넘나들던 그에게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며 하는 여행들은 서촌의 상황만큼이나 불공정해 보였다. “유럽을 갔을 때 실컷 유적지를 본 다음 대기업 프렌차이즈를 즐겨 찾으면 관광객이 많아서도 그 지역의 가게들은 계속 밀려나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이 새것과 편한 것에만 관심을 가지면 결국 방문지 특유의 매력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여행의 본질은 새것이 아닌 특별한 경험에 있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획일화된 상품과 서비스가 아니라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에요.” 여행자 스스로가 여행지의 날것과 불편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면 그것을 감내한 것보다 더 큰 수준의 행복을 모두가 누릴 수 있다. “유럽의 벼룩시장, 야시장, 재래시장을 보세요. 정말 그 나라의 문화를 느끼기에 좋은 곳이에요.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곳에 가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와 경제사정까지 풍성하게 만들죠.”
 
  특히 공정여행은 태도가 중요하다.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면 여행에는 공수가 없어진다. 단지 낯설지만 기쁜 마음으로 누군가의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를 뿐이다. 주인은 여행자가 아니라 우리를 맞아주는 현지인이다. 내가 주인이 돼서 떠들고 훼손하는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불어넣는 일이에요. 우리가 불편해하고 지저분해한다면 그들은 더욱 위축됩니다.” 그곳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지인들에게 이곳이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설재우씨의 말대로 겸손함에서 출발할 수 있다. 
 
  서촌과 유럽은 거리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설재우씨의 마음과 생각은 좁은 골목보다 더 가까워 보였다.  
 
재주부린 사람이 이득보는 여행
  말끝마다 ‘간지’를 유독 중요시하는 이 사람의 별명은 꽃거지다. 꽃거지 한영준씨는 거지긴 한데 폼나는 거지다. 돈과 자본에 구애받지 않는 자발적 거지인 데다 멋진 여행도 하니 폼까지 난다. 그는 돈에서 자유롭지만 마땅히 받아야 할 돈에 대해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태국에 갔는데 여자가 너무 예쁘고 영어도 잘하는 거예요. 그런데 젠장 몸을 팔고 있었어요. 왜 여행지에서 저런 예쁜 여자가 몸을 팔까 생각하다 여행구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태국은 ‘곰이 재주를 부리면 곰이 돈을 가져가는 것’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곳이었다. 태국의 매춘여성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에서 멀어진 현실에 처해 있었다. 그는 여행자들의 돈이 현지인들에게 돌아가지 않는 구조를 목격하고 본격적으로 멋진 여행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여행은 남을 위하면서 나를 위하기에 그의 말대로 진짜 ‘간지’ 났다. 
 
  한영준씨가 하고 있는 폼나는 여행은 몰디브의 풀빌라에서 즐기는 하룻밤이 아니라 현지인과 살 맞대고 부대끼는 것이다. “과테말라를 여행하다 ‘마리아’라는 6살 어린 아이 집에 가게 되었어요. 거기서 지내면서 많은걸 알게 됐죠.” 그는 마리아 집안의 고민이 무엇인지 숟가락은 몇 개 쓰는지 마리아가 무슨 옷을 입고 언제 등교 하는지까지 진짜 과테말라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현지인들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미학교짓기 프로젝트’, ‘주요도시 프리허그’, ‘빈민구제사업’ 등을 하기 시작했다. “별 노력 안 했어요. 내가 가진 게 3개이길래 1개를 옆 친구에게 준 것뿐이에요.”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그는 마리아에게 새 집을 지어주었다. “마리아의 집에 처음 갔는데 집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그래서 함께 집을 지어 선물했어요. 이제 마리아 집안에서 저를 아들로 불러요.” 그는 단순히 여행을 하면서 지불한 나의 가치가 그들에게 가길 바라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뛰고 있었다. 남미학교짓기 프로젝트도 남미 마을의 가난과 죽음을 보면서 계획한 프로젝트다. 공사비 역시 그만의 방식으로 모은다. “작은 것들이 모여 기적이 이루어진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100원씩 달라고 합니다.” 누구나 가능하고, 어떤 이에게도 부담되지 않는 액수 100원이 모여 학교를 만들고 있다. “돈으로 세워진 학교는 결국 성공과 결과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 방식대로 세우고 있죠. 아이들이 학교에서 위생과 성에 대해서 공부해 작은 병 때문에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한영준씨는 공정여행을 ‘양심에 따라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심의 양태는 제각각이다. 모두가 그처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양심 앞에서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공정여행을 실천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다. 한영준씨는 공정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은 곧 양심을 지키면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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