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박스 프로젝트
  • 김영화 기자
  • 승인 2014.05.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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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소프트웨어 제작업체인 어도비(Adobe)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원천에는 ‘빨간박스’가 있었습니다. 직원 60여 명에게 제공된 빨간박스 안에 들어있던 것은 다름 아닌 천 달러 상당의 신용카드였죠. “천 달러로 어떤 것을 해도 좋으니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라”고 빨간박스는 말합니다. 단계를 거처 최종 채택이 되면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하는 ‘블루박스’로 넘어가게 됩니다.
 
  빨간박스는 어도비 회사가 직원들에게 주는 자유이자 신뢰의 증표입니다. 누군가는 천 달러로 회사 몰래 술을 진탕 마실 수도 있고, 여행을 갈 수도 있죠. 어도비 회사는 다만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혁신적이 아이디어를 내는 환경을 조성해 줍니다. 일단 믿고 보는 것인데, 혹시 6만 달러 상당의 제작비를 모두 잃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듭니다.
 
  물음을 잠시 접어두고, 조금은 분위기가 다른 공간으로 옮겨보겠습니다. 지금 중앙대는 대학본부와 교수가 다시 평행선을 달리게 됐는데요. 올해부터 본격 실시되기로 했던 정년보장심사제도 개정안이 공표 없이 수정되면서 그 절차와 내용상의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전보다 Peer Re-view(동료평가제) 심사 기준이 강화됐습니다. 교무처에 따르면 교수들의 연구력 향상을 위해 유보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교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답답한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무엇보다 연구를 하는 데 자유로운 분위기가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취재 중 한 교수는 “우리도 학교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향에 동의를 하고 또 교수로서 노력하고 있다”며 “기준을 높여 압박감을 조성하는 것은 교수들에 대해 신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개정안에 따르면 Peer Review의 심사위원 선정을 교무처에서 담당하게 됐습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특정 교수에 대해 불공정한 심사가 진행될 여지가 있다며 비판했는데요. 이에 교무처에서 역시 답답한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교무처 이찬규 처장은 “객관적으로 검증을 하려는 의도일 뿐이지 특정 개인에게 불공정한 심사를 한다는 것은 위험한 얘기”라며 “본부에 대한 강한 불신이 본 의도를 왜곡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들의 입장 차는 한 군데서 비롯됐습니다. 상호 간의 불신이 깊게 파고 든 것입니다. ‘신뢰’라는 기반이 약하니 정년보장제를 두고 이토록 삐걱거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보입니다. 모래바닥에 성을 쌓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이 다음에 지어지는 성이 그 아무리 완벽해도 쓰러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다시 어도비 회사로 돌아 가볼까요. 어도비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빨간박스를 통해 100여 개의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 중 20개가 블루박스로 넘어갔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믿음은 길을 잃었던 그들의 열정과 목적을 연결시키며 그들을 혁신가들로 변화시켰죠. 물론 직원들 역시 경영진의 철학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입니다. 학교에 기업운영 방식을 논하는 게 민감한 일이지만 어도비의 경영철학은 어느 때보다 이 학교에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29일 교무처와 교수들 간의 협의를 위해 공청회가 열릴 예정인데요. 그곳에서는 서로에게 빨간박스를 건네줄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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