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무분별하고 저속한 언어를 구사하여 개인이나 집단을 적대적으로 공격하는 일들을 우리는 수많은 선거‘전’(戰)에서 지겹도록 경험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의 ‘품격’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잘못된 언어 사용에 따른 폐해는 단지 정치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대립적 관계를 심화시키고 비생산적 논쟁을 양산한다. 절제된 언어의 사용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상호이해와 협동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언어 사용에 있어서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올바르고 참된 것’을 말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왜곡되어진 수사학(rhetoric)은 ‘말만 잘하는 인간’이 아니라, 퀸틸리아누스(Quin tilian)의 유명한 말을 빌면 ‘말을 잘하는 선인(善人)’을 지향한다. 이 인간상은 실천적이고 공공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칸트(I. Kant)도 자신의 의도를 위해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는 말재주는 그것이 제아무리 훌륭한 뜻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단언한다.

  언어 사용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주장의 한계 설정’이다. 블루멘베르크(H. Blumenberg)는 ‘수사학적 인간학’이라는 관점에서 ‘불충분한 근거의 원칙’을 제시한다. 그는 수사학을 ‘불완전한 자연’으로서의 삶을 다루는 학문으로 바라본다. 이때 강조되는 것은 ‘이성의 한계’와 ‘삶의 불완전성’이라는 근본 전제이다. 이것은 누구도 대화와 소통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배경에서 ‘말하는 능력’을 다루는 수사학과 ‘이해하는 능력’을 다루는 해석학(hermen eutics)은 공통의 목적을 설정하게 된다. 표현(설득)과 이해(수용)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인간들 사이의 ‘연대와 공존’이다. ‘표현과 이해의 변증법’은 서로의 고유성과 차이에 기초하면서도 지평 확장을 통해 편협한 자기 세계에 매몰되지 않는 ‘책임있는 자유’를 향유하게끔 한다. 그 반대로 일방적으로 강요된 주장과 결정은 갈등의 불씨가 되고 상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 불신은, 경우에 따라서는, 공동체 내에서 최소한 역할로 만족하는 체념으로 귀착된다.

  가다머(H.-G. Gadamer)에 따르면 진솔하고 절제된 언어의 교환은 인간 정신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길이다. 그는 목소리 너머로 내적 숙고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동물과 다른 인간의 가장 고유한 특징이라고 간주한다. 내적 숙고는 우리에게 제공된 견해를 서로 저울질하고 그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게 한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본능 혹은 허공에 사라지는 소리에 희망 없이 내맡겨져 있다면 ‘인간’이 될 수 없다. 내적 언어(verbum interius)를 향해 나아가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해방된 자신을 경험할 수 있다. 결국 인간다움의 길은 ‘생각하면서 말하고’, ‘말하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말의 향연’이 아니라 ‘생각의 향연’이 인간세계를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철학과

최성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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