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에도 학교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중앙대의 핫 플레이스인 중앙마루는 밤이 찾아와도 대낮처럼 흥겨웠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무리가 중앙마루 앞을 종횡무진 하는가 하면 중앙마루 계단에 걸터앉아 옛정을 기리는 직장인 동문들도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시민K들은 무슨 이야기를 그토록 하고 있었던 걸까.

 
 
스트레스는
크루져보드로 날리자

이직 고민도
맥주 한 캔으로 훌훌
 
 
  PM10:00 
  연일 포근한 날씨에 밀린 과제는 잠시 밀어두고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든다. 기분을 이기지 못한 학생들은 청룡연못에 삼삼오오 둘러 앉아 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청룡연못의 흥은 이내 아랫동네인 중앙마루에도 전해졌나 보다. 중앙마루의 숱한 술자리를 지나 다다른 곳에서 기자는 중앙대 학생들이라면 캠퍼스에서 한번쯤 보았을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무리를 발견했다.
 
 
 
-보드가 아담한 게 귀엽다.
이건 크루져보드에요. 컬러풀한 색이 눈에 확 띄죠?
 
-일반적인 보드와는 다른 것 같은데.
크루져보드는 스탠다드 스케이트보드와 달라요. 스탠다드 스케이트보드에서 변형돼 나온 건데, 주행하기에 적합하도록 개량됐죠. 스탠다드 스케이트보드는 바퀴도 작거든요. 데크(Deck)의 폭은 조금 넓어지고 길이는 짧아져 휴대성이 좋아요.
 
-크루져보드는 언제부터 타기 시작했나.
크루져보드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인 일 년 전쯤 저도 멋있어 보여서 샀어요. 가수 권지용이 공항패션으로 크루저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나와 붐이 일었죠. 패션아이템으로도 많이 쓰여요. 요즘 크루져보드를 들고 다니는 사람 되게 많이 볼 수 있어요.
 
-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들 누군가.
제가 창립한 크루의 회원들이에요. 흑석동 스케이트 보더 모임이죠. 저기 있는 형이랑 같이 만들었는데, 저 형이 회장이에요.
 
-중앙대 소속 동아리 같은 것인가.
아니요. 우리는 흑석동을 넘어 수도권까지 뻗어있는 광범위한 크루에요. 사당, 이수에서 온 회원도 있고 인천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흑석동 사람 둘이서 만든 크루이기 때문에 흑석동에 적이 있다고는 할 수 있죠. 
 
-크루 회원들이 다 자유분방해 보인다.
보드는 스트릿 문화잖아요. 동아리나 동호회라는 말보단 크루라고 칭한 것도 이 때문이죠. 처음엔 흑석동에 베이스를 두고 있다는 의미로 크루 이름을 흑석크루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약간 밋밋해 보여서 일 년 전쯤 <크루블랙>이라고 바꿨죠.(웃음)
 
-기자도 중앙인 홈페이지에서 크루 홍보글을 본 적 있는 것 같다.
맞아요. 페이스북에 <크루블랙> 공식 클럽이 있어요. 한창 시험기간에 학생들이 공부에 지쳐있을 때를 노려봤죠.
 
-학생들도 혹할 만큼 크루져보드에 매력이 있다는 건데.
한강이 흑석동이랑 가깝잖아요. 주로 밤에 학교에서 모여 보드를 타고 다 같이 한강으로 빠져나가죠. 사람들이랑 야경을 보면서 한강 변을 달리는 걸 크루징이라고 해요. 크루징 하는 순간엔 너무 신이 나서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어요. 여럿이 타는 그 느낌이 진짜 최고에요.
 
-한강에서는 어디가 제일 타기 좋은가.
보더들이 모이는 곳을 스팟이라고 해요. 유명한 보드 스팟으로 여의나루가 있죠. 여의나루 한강 변에 수상택시 승강장이 있는데 거기 자주 가요. 크루징 해서 여의나루에 갔다가 거기서 기술 연습하고, 맥주도 한 잔 한 후에 다시 흑석으로 돌아와요.
 
-중앙대의 스팟은 어디인가.
원래 R&D센터 앞에서 많이 탔어요. 바닥도 평평하고 밤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거든요. 그런데 언제 한번 낮에 탔더니 그 곳 카페 직원들이 내쫓아서 이쪽으로 올라왔어요.(웃음) 여기 교양학관 앞에는 사람이 좀 많아서 보행자들한테 피해를 줄 수 있어 걱정이네요. 아직까진 보드를 탄다고 하면 어른들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볼 때가 가끔 있죠.
 
-부모님도 별로 안 좋아하시나 보다.
그런 건 아니고 신기해하세요. 좋아하시죠. 심지어 제 친구의 아버지는 친구 보드를 뺏어서 타세요. 굉장히 수준급이더라고요. 우리네 아버지 같은 사람인데 깜짝 놀랐어요.
 
-<크루블랙>에도 놀러 오신 적 있나.
아뇨. 그런 적은 없는데 친구가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준 거예요.
 
-아버지한테 권해드린 적은 없나.
그러진 않았어요. 넘어지면 큰일 나실까봐.
 
-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기술은 무엇인가.
알리라는 기술이에요. 스탠다드 스케이트보드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인데, 장애물을 뛰어넘는 기술이죠. 원래는 가다가 뛰어넘는 것이 정석인데 처음엔 어려우니까 제자리에서 뛰는 것부터 연습해요. 제자리에서 뛰는 게 어느 정도 되면 주행하면서 알리 연습을 해요. 어려운 기술이라 빨리 깨우치면 3개월 정도, 최대 1년까지도 걸려요. 저도 요즘 여러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스탠다드 스케이트보드의 매력에 빠져 한 달째 연습 중이에요.
 
-크루져보드를 늙어서도 계속 탈 건지.
마음 같아선 그렇죠. 되게 재밌어요. 그리고 보드를 타면 도전이라는 게 항상 따라오는 것 같아요. 왜냐면 기술이 많거든요. (이때 한 회원이 넘어진다) 저렇게 넘어지는 경우도 많고, 저러면서도 다시 일어나서 다시 타죠. 연습할 때마다 ‘내가 이렇게 도전정신이 있었나’하고 느껴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기술도 진짜 열심히 하면 결국에 되더라고요. 또 하나 자랑하자면 크루져보드를 타면서 좋은 인연도 많이 만났어요.
 
-여자친구라도 생긴 건가.
네, 일 년 전쯤 이 크루 안에서 여자친구를 만났어요. 얼마 전에 일주년이었죠.
 
-그땐 크루를 창립하던 시기가 아닌가.
크루블랙을 만든 지 얼마 안 돼 여자친구를 만났죠. 크루 회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좋은 인연을 만들어주신 크루블랙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어요. 여자친구에게는 늙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될 때까지 타자고 말했죠. 여자친구 외에도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지속하고 싶어요.
 
 
 
 
  PM11:00 
  중앙마루 위의 맥주 캔은 산처럼 쌓여만 갔다. 학생들은 기자의 빈손이 민망할 정도로   너도 나도 맥주를 한 캔씩 들고 있었다. 그 때 학생들의 틈에 살짝 섞여 맥주를 먹고 있는 남자 셋이 보였다. 자유분방한 차림의 다른 학생들과는 대조되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그들. 요즘 졸업앨범 촬영 시즌이라는 것을 참작하고 기자는 그들에게 말을 건네 보았다.
 
 
 
-오늘 졸업사진을 찍은 건가.
농협 아뇨. 저희 다 취업한 사람들이에요.
 
-그럼 이미 졸업 했겠다.
농협 네. 졸업한 지 1년밖에 안됐죠.
전경련 졸업한 사람들이 왜 학교에 와서 이 시간까지 이러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하다. 저 지금 역취재당하는 건가.
전경련 어우 저 인터뷰할 시간 많으니 어서하세요.
 
-무슨 학과인가.
전경련 경영학부입니다. 저희 셋 다 경영 05학번이에요.
 
-취업한 지 어느 정도 됐나.
전경련 다들 취직한지는 1,2년 정도 됐어요. 전 되게 애매한데, 이직을 한번 해서요. 첫 취업은 한지 2년 정도 됐죠. 2012년에 했어요.
 
-첫 직장은 어디였나.
전경련 전경련 연구직이었어요.
농협 전경련 아세요? 기업인들끼리 모여 회의하는 곳이에요. 삼성 이건희, 현대 정몽준 이런 사람들이 대통령 좌우에 앉아 회의를 하는 경제단체죠.
 
-직장은 세 분이 모두 다른가.
전경련 네, 다 다르죠.
캐논 저는 캐논에서 일해요. 마케팅 부서에 있어요.
농협 전 저기 여의도에 있는 농협에서 근무하죠.
 
-캐논 마케팅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나.
캐논 사람들은 마케팅이 자칫 홍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아니에요. 마케팅이란 원가관리를 하는 활동이에요. 본사에서 가격단가를 맞춰서 대리점에 유통시키는데 수익성이 나올 만큼 단가조정을 하는 거죠.
전경련 갑질 하는 거죠. 이 친구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진정한 갑질을 하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농협에서 무슨 일을 하나.
농협 은행원이 하는 일은 어딜 가든 다 똑같아요. 수신이요. 쉽게 말해 예금하는 거라고 해두죠. 책상에 앉아서 고객들에게 “오세요”하는 사람이 저예요. 위치가 여의도라 기업들을 많이 상대하는 편이긴 하죠.
 
-실례지만 05학번이면 나이가 어떻게 되나.
농협 29,30살 정도 됐어요.
 
-취업을 늦게 한 것 아닌가.
농협 전 취업한 지 1년 됐어요. 취직할 시기는 됐는데 해놓은 게 없더라고요. 너무 많이 놀아서.(웃음) 이러지 말고 우리 맥주나 한 캔 더 하면서 해요. 안내면 술래 가위바위보!(X5) 보! 보!
(캐논 분이 맥주를 사러 가신다)
 
-이 시간에 왜 학교에 있나.
전경련 학교 친구들 만나려고요. 여기가 제일 편하잖아요. 친구들이 서울 곳곳에 흩어져있어요. 삼성동에서 두 명 일하고, 테헤란로에서 두 명 일하고, 전 여의도에서 일하고 있으니 만나기 적절한 곳이 별로 없네요. 동기모임 비슷한 걸 하는 거죠.
 
-맥주와 함께 굉장히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있던데.
전경련 우린 취업은 했지만 하하호호 하진 않아요. 저희의 전체적인 고민은 이직에 거의 집중돼 있어요.
 
-좋은 직장을 가지고서도 이직을 고민한다니.
전경련 전경련이 첫 직장이었고 지금은 현대라이프에 있어요. 보험회사죠. 솔직히 말해서 저는 지금의 일이 좋아요. 하지만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좋아하진 않아요.
 
-그런데도 이직을 감행한 이유는.
전경련 지금 회사에서는 재무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어요. 정해진 월급을 받는 건 아니에요. 제 능력대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좋죠, 자신 있으니까. 일이 잘되면 탄력도 받고 동기부여도 돼요. 전경련에서 이직한 것도 이 때문이에요. 답답한 사무실에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게다가 정해진 월급만 바라보면서 하는 건 더더욱 싫었죠. 저는 현재의 직업에 대해 굉장히 만족하는 편인데 워낙에 주변에서 반대가 심하네요.
 
-부모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반대하나.
전경련 이유는 하나에요. 안정적이지 못하다. 부모님들은 보통 그러시잖아요. “공무원 하라.”
(캐논 분이 맥주를 사들고 등장)
 
-농협 분은 어디 은행으로 이직하고 싶은가.
농협 확실히 정한 건 아니지만, 산업은행? 이 은행은 채권과 증권을 다루면서 대기업의 M&A에도 깊이 관여하죠. 지금 농협에서 하는 일이 제가 원하는 방향이나 공부했던 방향과 달라요. 저는 채권과 증권을 다루거나 대기업을 많이 상대하는 회사로 가고 싶은데 농협은 이런 업무와는 멀죠.
 
-이직을 하더라도 지금의 회사에 다니며 준비해야 하는 건가.
농협 그렇죠. 사회가 각박하잖아요. 회사 나왔는데 이직에 실패하면 어떡해요.
 
-세 분 죽이 굉장히 잘 맞으시다.
캐논 그런가요? 야구동아리 친구들이에요. 오랜만에 학교 오니까 후배들도 만나고 아주 그냥 다 만났죠. 너무 좋아요.
 
-다들 가정은 꾸리셨나.
아무도 없어요.
 
그날의 청룡연못과 중앙마루는 늦은 시간까지 좀처럼 흥이 가라앉지 않았다. 시민K들은 마치 오늘만 사는 사람들처럼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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