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세기의 어느 순간부터 유물론(materialism)을 경계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였다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그리고 지하운동에서 젊은이들이 유물론에 심취하지 않으면 진보적 대열에서 열외당하는 풍조마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이념갈등으로 이끌게 한 한국의 유물론자들은 과연 유물론을 제대로 이해하기나 한 걸까?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지만 그들이 신봉해왔던 경전은 유물론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만들어낸 러시아인들도 속으로 비웃는 상투적이고 작위적인 관제 선전선동책자였다. 진짜 유물론이 있다면 우스워서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유물론의 본질은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한참 왜곡되어버린 서양의 근본사상이다. 유물론이란 사물의 이치를 구체적으로 증명해내기 전까지 인정하지 않는 실증적 과학주의이다. 이 점에서 인류 최초의 유물론자는 우주의 원리를 가장 신뢰할 만한 수(數)로서 입증하려했던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라 할 수 있다.  
 
  알고 있는가? 피타고라스가 토대를 닦아놓은 수학적·기하학적 공식에 의거해 축조된 거대한 건물에서 우리가 안전하게 거주한다는 사실을? 그는 수(digit)와 기하학적 원리를 통해 우주의 이치를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아날로그적 가치관에 젖어있는 세계관을 디지털적 개념으로 탈바꿈시키려고 시도했던 최초의 디지털주의자이기도 했다. 피타고라스의 시도는  인간의 주관적 감정을 배제시키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과학적 시도이기도 하다. 수십세기 동안 이루어진 그러한 시도의 결과가 현재의 서구문명이다. 
 
  근대에 들어서 보다 구체적으로 유물론적 방법론을 제시한 대표적 사상가로 프랑스의 데카르트를 들 수 있다. 그는 사유하는 방법에 있어서 명확하게 알기까지 그 어떤 것이든 진실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그의 주장과 방법론은 서양 과학정신의 근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일상적 삶의 원칙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실증주의적 철학자 사상가들이 있어왔다. 마르크스주의는 그러한 근간의 극히 사적인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레닌주의자들은 그 사적인 것을 더욱 사적인 것으로 훼손시켰다. 북한과 남한의 사이비 유물론자들은 그렇게 일그러진 유물론을 더욱 엉뚱한 정치적 운동으로 변질시켜버렸다. 마치 유물론의 가장 저급한 형태인 물질주의(materialism) 또는 배금주의가 유물론으로 둔갑하는 것처럼 말이다. 
 
  학연, 혈연, 파벌로 얽히고설켜 있고, 뜬금없는 선동과 소문으로 날마다 열병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를 진정시킬 수 있는 처방은 진정한 의미의 유물론적인 냉정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근식 교수
러시아어문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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