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동의 가장 작은 땅에서 가장 큰 빛을 품다
  • 심우삼 기자
  • 승인 2014.05.1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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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박가현 기자
  모든 아이들에게 이층침대는 꿈일 것이다. 높은 침대 위에서 보면 무엇이든 그렇게 멋지고 거대해 보일 수가 없다. 이층을 차지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변을 돌아보면 천장에 붙어있는 야광 스티커는 하늘의 별이다. 창 밖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 깜빡깜빡 거리는 멀티탭의 불빛은 네온사인이고 책상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들은 나름의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이층침대에 막 누운 어린아이에게 그것은 자신만의 야경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반짝이는 풍경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준다. 
 
  경사가 급한 흑석동은 반짝이는 야경을 보기에 제격인 동네다. 동네 곳곳에 솟은 언덕들은 자연이 제공해준 이층침대다. 먹자골목이 위치한 언덕을 올라가면 야경이 아름다운 용봉정 근린공원이 나온다. 
용봉정 근린공원은 서울의 우수 조망명소로 지정된 곳인 만큼 멋진 전망을 자랑하지만 외진 곳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풍광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길도 매력적인 곳이다. 먹자골목이 위치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면 높은 담을 두른 고택부터 낮은 담이 앙증맞은 작은 집까지 제각기 다른 모양의 집들이 나온다.
 
  집을 구경하며 직진하다 보면 그림에 나올 것 같은 하얀 돌담 집을 가운데 두고 양갈래길이 나온다.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으면 지금까지 봤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경사길을 볼 수 있다. 용봉정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이다. 초입에 위치한 집의 담벼락을 장미꽃이 가득 메워 꽃향기가 그윽하게 퍼져온다. 청룡열차의 시작처럼 가파른 계단과 그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옛 정취를 풍긴다. 오밀조밀 서로 친밀하게 붙어 있는 집들에도 불구하고 용봉정 가는 길의 계단 끝에서는 탁 트인 느낌이 든다. 마치 도로 하나를 넘으면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가 나올 듯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하늘과 가까워지는 것 같다.
 
  그렇게 정상에 올라서면 벤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순간적으로 초라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앞에는 값으로 매길수 없는 야경이 펼쳐진다. 이층침대 위에서 신기하게 바라보던 어린아이의 방처럼 20대 우리들의 방이라 할 수 있는 흑석동에서 서울을 가득 안아보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매일 지하철을 타고 오며 보던 회색 한강철교는 거북이의 등딱지처럼 검은 강물 위를 빛으로 수놓는다. 밤에도 불 꺼지지 않는 금융가와 높은 스카이라인이 인상적인 여의도, 동작구와 마주하고 있는 용산구의 한강변 고층 빌딩은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다가온다. 별보다 더 반짝이는 야경은 뒤집힌 하늘과도 같았다. 옹기종기 모여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주택가를 사이에 두고 번화한 대학가와 멋진 야경이 대치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들의 이층침대는 기억 한구석에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춘의 앞마당에서 새로운 낭만을 느낄 수 있다. 이층침대의 사다리를 설레는 맘으로 차곡차곡 밟고 올라서듯이 용봉정 가는 길을 밟아보자. 가는 길이 힘들어 더 아름다운 야경이 아니라 가는 길이 아름답기 때문에 더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융봉정의 야경은 20대의 또 다른 이층침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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