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찾아온 파리
  • 심우삼 기자
  • 승인 2014.05.1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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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오르세의 그림을 보며 
 
잠에 들지 않고도 
꿈을 꿀 수 있다
 
  소설 <테레즈라켕>의 여주인공 테레즈의 얼굴은 책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파리의 잡화상에서 턱을 괴며 생기 없는 얼굴로 손님을 맞던 그녀의 얼굴을, 라켕과 몸을 뒤섞으며 육체를 집어삼키던 악마적인 모습을, 모든 것이 차갑게 식은 후 찾아온 혐오와 죄책감이 섞인 그 병리적인 얼굴을 머릿속으로만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획특별전 ‘근대 도시 파리의 삶과 예술, 오르세미술관展’ 중반부에 있었던 툴루즈 로트렉의 <검은 모피 목도리를 두른 여인>을 보았을 때 파리 잡화상에 있는 테레즈가 떠올랐다. 그림 속 그녀는 분명 테레즈였다. 테레즈는 파리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그림을 보는 것은 참 흥미롭다. 그림을 보는 것의 매력은 화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세계와 내가 보고자 하는 세계에서 발생하는 묘한 균열이다. 그 균열에서는 사람마다 다른 해석과 힘이 발생한다. 근대화의 물결이 휩쓴 파리와 인상주의를 주제로 하는 오르세미술관전은 파리와 엮이는 모든 예술을 그림과 관객 사이 그 짧은 공간의 균열로 이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오르세미술관전에는 오르세 미술관 소장의 회화, 조각, 사진, 드로잉, 공예품 등 175점이 전시된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밤 9시까지 야간개장을 해 직장인이나 학생들도 충분히 미술관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수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전시설명 프로그램 ‘큐레이터와의 대화’를 실시해 늦은 밤까지 파리와 인상주의에 흠뻑 젖을 수 있다. 별이 빛나는 밤에도 우리가 볼 수 있는 파리는 무한하다.
 
근대 파리와 미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오르세미술관전의 시작은 파리의 도시를 조망하면서 시작된다. 이번 전시의 배경이 되는 1848년부터 1914년은 파리가 근대화의 옷을 입으며 세계의 런웨이에 당당히 섰던 시기이다. 입구의 드로잉 작품들은 나폴레옹 3세 재임기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한 파리의 모습을 한눈에 보여준다. 소리유의 <백화점>은 그런 면에서 당시 파리의 변화를 보여주기에 적절한 작품이다. 파리 시내 대로변에 생긴 커다란 백화점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은 당시 파리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백화점뿐만 아니라 오페라극장, 보드빌 극장 등 파리 재정비사업을 통해 탄생한 새로운 문화거점들의 드로잉도 그 당시 파리를 휘감던 최신의 문화와 그 경향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파리는 그야말로 첨단과 최신의 변화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는 치열한 경주의 장이었다.
 
  근대 파리의 상징이자 변화의 조류를 가장 뜨겁게 맞받아쳤던 것은 에펠탑이었다. 에펠탑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 사이에서 중반부에 위치한 리비에르의 석판화는 에펠탑이 건설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조르주 가랑의 채색판화 <1889년 만국박람회 당시 조명을 밝힌 에펠탑>은 붉은 야경위에 서 있는 에펠탑을 묘사하고 있다. 당시의 그림에서 드러난 에펠탑은 파리의 불시착한 우주선과도 같은 인상을 내뿜고 있다. 붉은 조명과 함께 에펠탑은 온 파리의 근대성을 집어삼켜 하늘로 발산 시키는 것 같았다.    
▲ 왼쪽부터 로트렉 <검은 모피 목도리를 두른 여인>, 오딜롱 르동 <감은 눈>, 루소 <뱀을 부리는 여인>, 조르주 가랑 <1889년 만국박람회 당시 조명을 밝힌 에펠탑>
 
예술의 근대화, 파리와 인상파 화가들
  19세기 근대화의 옷을 입은 것은 파리뿐만 아니었다. 당시 예술의 근대화는 인상주의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고전 회화방식을 버리고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대상과 자연을 묘사한 인상파작가들은 당시 예술계의 근대적 움직임이었다. 인상파의 대표적 작가로 불리는 끌로드 모네는 인상주의 작품의 시작 지점에서 조용하게 압도적이었다. 그의 대표작 <양산을 쓴 여인>은 따뜻한 햇볕 아래 언덕 위를 산책하고 있는 한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대상과 모델, 배경의 경계가 흐릿하다. 여인의 표정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인상파 작품답게 빛에 의해 변하는 인간의 모습이 배경과 어떻게 조화되는가에 집중했다. 
 
  모네가 인상주의의 시작을 조용하면서도 묵직하게 알렸다면 드가는 인상주의에 몸짓을 표현한다. 오르세미술관전에 있는 드가의 작품은 발레리나의 움직임 같이 대상의 순간적 움직임을 관찰한 작품들이 많다. 드가는 무용수에 집착했던 작가이다. 당시 무용수들은 브루주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서 그들을 묘사한 그림은 음란하다며 환영받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드가는 예술가로서의 무용수가 아닌 생계를 위해 춤을 춰야 했던 노동자의 형상, 그들의 기묘한 평행을 화폭에 녹여 내고 싶어 했다. 미술관 한편에 걸려있는 드가의 작품 속 무용수들은 대부분 무대가 아니라 무대 뒤편에 있다. 뒤편에서 신발을 벗는 그들의 모습에서 표정은 흐릿하게 묘사되었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과 고단함이 느껴진다. 그가 무용수를 그리기 위해 본떠 만들었던 조각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도시와 실재를 벗어나 새로운 인상주의를 꿈꾸다. 
  기존의 인상주의 작품들이 근대 파리와 도시의 사람들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그것에게서 벗어난 그림들이 있다. 바로 고갱과 세잔의 작품들이다. 폴 고갱은 근대화된 파리를 뒤로하고 자연의 원시성에 매료되었다. 퐁타방이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한 뒤 도시화되지 않은 소박한 삶에 반해 그들을 묘사했다. 고갱의 <퐁타방의 빨래하는 여인들>은 인상파작가들의 작품과는 다르게 시골을 배경으로 순수한 색채와 굵은 윤곽선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현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도 자신의 고향에 위치한 생 빅투아르 산의 전경을 묘사하면서 자연을 원뿔과 원기둥과 같이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구조로 환원시키고 있다. 그는 자연을 견고한 구조로서 표현하고 싶어했다. 앞선 작품을 비롯해 정물화 등 폴 세잔의 작품은 단 3점만이 전시되고 있지만 그의 미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세잔의 작품 옆에는 한 남자의 초상화가 쓸쓸히 놓여있다. 반 고흐가 그린 초상화다. 그의 작품 <외젠보흐의 초상>은 친구였던 시인 외젠보흐를 그린 것이다. 그의 초상화는 모델을 기념하거나 그것의 실재를 담기 위한 화폭이 아니다. 인물이 아니라 그것의 내면과 주관을 표현하고 싶었던 그림의 배경은 별이 빛나는 밤이다. 반고흐가 표현하고 싶었던 영원한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절친했던 친구의 초상화와  영원한 세계는 해석의 폭을 넓혀준다.    
 
  현실세계가 아닌 꿈의 세계와 비물질적인 상징체계 등을 묘사하는 상징주의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아리스티드 마욜의 <가난한 어부묘사>, 오딜롱 르동의 <감은 눈> 에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보이는 실재가 아니라 느껴진 실재를 암시적으로 표현한 상징주의 작품답게 관객들은 눈을 감은 인물의 모습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 
 
나가는 길목, 상상의 작품
  미술관을 나가기 전 마지막에 위치한 그림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중요하게 전시 중인 작품이다. 큐레이터의 설명이 유독 길었던 이 작품은 앙리 루소의 <뱀을 부리는 여인>이다. 이국적 풍경의 정글 속에서 한 여인이 피리를 불고 뱀들이 기어오른다. 루소는 파리를 벗어나 본적이 한 번도 없는 작가이다. 파리의 식물원을 관찰하고 만국박람회를 관람하면서 그는 열대 야생을 공부해 그만의 상상속 밀림을 창조해냈다. 꼼꼼하고 디테일한 그의 그림은 진한 색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명함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며 머릿속에 강한 잔상을 남긴다. 마운드에 승기를 꽂은 승리투수처럼 오르세미술관전의 관람을 성공적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입장료(일반) 12,000원
-관람 시간 
  화, 목, 금요일 : 09:00 - 18:00
  수, 토요일 : 09:00 -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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