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단 하나의 붓으로 덧칠해가는 이가 있었다. 그 세상을 보고 있자면 눈부시게 환한 색에 한 번, 현란한 점들의 연속에 또 한 번 눈길이 간다. 어떤 곳이냐고 물어보니 그만의 세계가 있단다. 그는 왜 유토피아를 그리게 됐을까.

▲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판타지한 기운이 감도는 유토피아. 그가 유토피아에 첫발을 내딛게 해준 작품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나라 ‘유토피아’.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꿔본 적이 있는가. 그곳에선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느끼는 대로 상상력을 통해 재탄생된다. 여기,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 영화 <아바타>를 연상시키는 그의 유토피아는 다채로운 형광색으로 단숨에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는다. 고유한 느낌으로 빚어낸 유토피아에서 살고 싶은 박태훈 학생(서양화전공 2)의 세상 속으로 따라가 보자.

-모든 작품에 주로 화려한 색을 사용했다.
“영화 <아바타> 속 세상처럼 화려하고 빛나게 하고 싶어서 형광색을 사용했다. 형광색은 에너지가 이동하면서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원리를 갖고 있다. 스스로 빛을 낸다는 점에서 형광색은 판타지적 느낌을 주는 색이다.”

-그림 속에서 보이는 물체들이 의미하는 것은.
“의미를 찾기보다는 각자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제작 과정이 궁금한데.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서 그렸다.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풍경 사진으로 화면의 전체적인 구성을 잡는다. 작품 안의 요소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 나무나 잎을 보고 드로잉을 많이 해보는 편이다.”

-표현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판타지 세계처럼 최대한 이국적으로 보이는 것이 목적이다. 그동안 드로잉 해둔 그림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생기면 그때 작품으로 옮긴다.”

-세세하게 표현하려면 표현기법이 따로 있을 것 같다.
“표현기법을 따로 개발하거나 연구하진 않았다. 사람들에게 정신 사납고 강한 인상을 남기려고 점을 많이 찍어서 화려하게 그리고 있다.”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환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못 본다. 그림에 수많은 점이 찍혀있을 때 주는 느낌이 좋은데. 대다수 사람은 예쁘다고 한다.”

▲ 촘촘하게 화면을 채워나가는 무수히 많은 점을 보면 그의 그림을 잊을 수 없다.

-이 작업만의 매력이 뭔가.
“작업의 매력이라.(웃음) 굳이 말하자면 보기에 예쁘다. 하나 더 꼽자면 작업을 하면서 강박감을 풀 수 있다는 거다.”

-강박감이라니.
“무슨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모르는데도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다. 결국 심해져서 스트레스까지 생기더라. 그러다가 내가 느낀 강박감을 판타지한 느낌의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림으로 그려 놓고 나니 강박감이 없어졌다. 그릴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작업하는 시간대가 따로 있는지.
“늘 작품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따로 작업시간이 정해져 있진 않다. 실기실이 빈 밤중에 주로 그림을 그린다.”

-작품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나.
“꿈속에서 무서운 일이나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고 난 후 느낀 감정들이 모티브다. 작품 자체가 비현실적인 판타지 세계라서 꿈꾸는 게 많은 도움이 된다.”

-작품을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게 있다면.
“판타지 세계를 그린 그림을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찾으려고 공부를 많이 했다. 미학 공부를 하면 본인의 작품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림 그리는 것 외에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있나.
“연애다.(웃음) 연애하고 싶다.”

▲ 촘촘하게 화면을 채워나가는 무수히 많은 점을 보면 그의 그림을 잊을 수 없다.

  씨실과 날실이 모여 하나의 직물을 이루듯 캔버스 위에 펼쳐진 세상 역시 정교하게 짜여있다. 유토피아를 통해 박태훈 학생이 이루고 싶은 것은 뭘까. 작품을 찬찬히 봐도 역시 어렵다. 그를 붙잡고 작품 하나하나를 열심히 눈으로 좇아가며 유토피아 속 세상을 좀 더 파고들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처음 시작한 작품이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던 작품에 애정이 간다. 판타지 세계에 대해 고민을 하게 해준 출발점이다.”

-첫 작품과 지금의 작품에 달라진 점이 있는가.
“첫 작품은 별 생각 없이 좋아서 했지만, 작품을 하나씩 그려 나가면서 어떤 판타지를 그릴까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게 되더라.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내용과 형식 면에서 조금씩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어떤 판타지를 그릴지, 더 나아가서 판타지 요소 자체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고민했다. 형식적인 부분으로는 단순히 페인팅만이 아닌 설치나 입체 조형까지 생각하고 있다.”

-유토피아를 주제로 그리게 된 계기는.
“미술을 전공한다고 하니까 뭐 먹고 살거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든지 공부를 잘해야 한다든지. 그러한 현실이 추하고 각박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와중에 유토피아로 구체적인 작품의 틀이 잡힌 것은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부터다. 평상시 생각나는 것을 많이 그리고 있었는데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유토피아적 그림까지 그리게 됐다.”

-모든 개인 작업의 주제가 유토피아인가.
“모든 작품의 주제가 유토피아로 확정된 건 아니다. 작품들의 주제가 놀이동산, 마약,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작품 속 세상에 대해서 듣고 싶다.
“작품 속 유토피아는 나만의 유토피아다. 내가 좋아서 만든 나만의 세계다. 유토피아를 보통 가상의 세계라고 하는데, 가상으로만 남겨두고 싶지 않다. 작품들을 그려 나가면서 유토피아를 어떻게 현실로 끌어올지 고민 중이다. 최종적인 목표는 유토피아의 현실화다.”

▲ 선명했던 유토피아는 점차 과감하게 표현된다.

-유토피아를 현실로 끌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수많은 반복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지속해서 사람들이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불러왔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도 수많은 반복을 통해서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유토피아가 실현되었다고 보나.
“아직은 아니다. 현재는 캔버스 위에만 유토피아를 표현했지만 3차원적으로 눈에 더욱 잘 띄게 현실 세계처럼 표현하고 싶다.”

▲ 박태훈 학생이 생각하는 가상 속 뇌.

-눈이나 뇌를 그린 그림도 보인다.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다. 신체 이미지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건 화면에 표현한 가상의 물체를 현실화시키려는 시도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별도의 설명 없이 작품만 보면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대중들이 내 세계를 이해해주길 바라지는 않는다. 유토피아로 느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만의 유토피아지 모두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없나.
“한 가지 당부하자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본인의 꿈이나 이상을 단지 이상으로만 가지지 말고 현실화 했으면 좋겠다. 유토피아를 현실화하려는 내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 가상이라는 말도 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를 계속 그려나가는 이유는.
“재밌으니까 한다. 모든 예술 활동이 마찬가지일 거다. 재미없으면 못한다.”

 

  사람들의 꿈이 가상이 아닌 현실이 됐으면 하는 그의 바람은 쉽게 꿈을 놓아버리는 우리에게 위안으로 다가온다. 유토피아는 머나먼 얘기가 아닌 우리 일상 속에서 이미 ‘꿈’이나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유토피아를 현실로 끌어오려는 그가 앞으로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지 주목된다.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인 만큼 작업하면서 아쉬웠던 적도 있었겠다.
“미국 드라마 <CSI>에는 깜깜한 곳에서 핏자국에 분무기로 뭔가를 뿌리면 형광으로 빛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평상시 그런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약품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없어서 아쉽다.”

-다른 주제로도 그림을 그릴 계획이 있나.
“내 안에 갇혀서 한 가지 주제를 잡고 빠져 있는 거 같다. 이제 막 2학년이라 여러 가지를 해봐야 하는데. 우선은 여기에 꽂혔으니 뽕을 빼야겠다.(웃음)”

-손수 작업한 그림들이 자신에게 준 영향이 있다면.
“판타지 세계에 대해 탐구하려다 보니 머리가 아프다. 너무 유토피아에 빠져들었나 보다.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서 예전보다 좀 더 진지해진 것 같기도 하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성이다. 유토피아를 그려도 나 자신이 유토피아가 되지 않으면 그 작업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이 있나.
“사람들은 놀이동산에 들어가면 놀이동산 속에 푹 빠져서 논다. 그러나 놀이동산에서 나오면 그 느낌이 사라져 버린다. 나는 그것을 밖으로도 끌어내고 싶었다. 놀이동산에 들어왔을 때의 느낌을 놀이동산을 나와서도 받을 수 있게끔. 아직은 작품 안에 내 세계가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확장하기 위해 앞으로도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싶다.”

-완벽할 때까지 하겠다는 건가.
“마음에 들 때까지 할 거다.”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렵다. 그래도 ‘꿈꾸는 사람’이라고 해두고 싶다. 내 작업과도 잘 어울리고 괜찮지 않나. 어떤 꿈인지는 정의를 내리지 않겠다.(웃음)”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나.
“현실이 추하고 각박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싶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촉매가 되어서 대한민국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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